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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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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알기나 할까 여우와 가시나무 선거가 다가오긴 다가오는 모양이다. 어디에 처박혔는지 바람에 먼지 하나 실어 보내지 않던 빈 수레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천지를 뒤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취임 1주년이랍시고 대통령은 느닷없이 국민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임기 내에 잠재성장률 4%, 고용율 70%,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일명 ‘474 비전’이라는데 명박산성 너머에서 눈물을 흘렸다던 그 분의 ‘747(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하기야 그 밥에 그 나물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마는 어릴 적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며 배웠던 ‘경제개발 5개년 개혁’의 짝퉁을 대면하고는 이내 실소가 터지고 만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의 초석을..
일흔둘 노인의 자살과 농촌 경제의 현실 장곡리 고욤나무/이문구/1991년 한 대학교수가 2002년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한 경기도 평택에 배나무 밭과 일대 논 4필지, 2만7천여 제곱미터를 동생 2명과 함께 매입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운영하는 친환경농산물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대학교수가 공동으로 매입했다는 평택 과수원에서는 9년 동안 연평균 3억원씩 총 27억원의 수입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이 대학교수는 동생에게 3억원의 채무를 졌는데 특이한 점은 형제의 거래가 현금보관증 형태로 이뤄졌고, 이 현금보관증에는 '상기 금액(3억원)을 성실히 보관하고 요청에 따라 반환할 것을 약속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한편 이 대학교수는 매입한 논에서 쌀 직불금을 타가기도 했다. 장관 후보자 청문회때면 이런 비슷한 내용들이 어..
불혹, 스노비즘, 구제역 그리고 살처분 윤대녕(1962년~)의 /2011년 오늘 아침 조간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중 절반 이상이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폭력과 입시압박으로 자살한 청소년들의 뉴스가 신문을 장식한다. 4대강이 완공되면 가뭄이 사라진다던 공사 관계자의 말 뒤에는 쩍쩍 갈라지는 땅을 바라보고 있는 농부의 심장은 깊게 패인 주름의 깊이로 타들어 간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연애도 결혼도 포기해야만 하는 그리스 청년의 한숨이 들려온다. 오늘 아침을 여는 소리가 온통 신음뿐이고 한숨뿐이다. 그러나 어제 아침까지 나는 부끄럽게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어쩌면 들으려 하지도 보려 하지도 않았다는 말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철이가 찾아가는 안드로메다 얘기도 아니고 별..
자살을 보는 삐딱한 시선, 과연 바람직한가 정미경의 /2012년 작년은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작년 이맘때 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물류센타에서 배송기사 한 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입기사로 들어온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을 때였다.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 어딘지 모르게 거리감을 느끼게 했고 눈에는 늘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 맺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랬을까? 삶의 끈을 잡을 힘조차 없을 정도로 그렇게 힘들었을까? 이래저래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또 한 번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늘 나와 출퇴근을 같이 하던 동료였다. 가끔씩 자신을 둘러싼 힘겨운 삶의 얘기들을 털어놓긴 했지만 그럴수록 더 웃고 누군가에게 더 살갑게 다가서려고 노력하던 친구였는데…. 한동안 직장 내에서는 두 건의 자살 사건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친구야, 사는 게 그렇게 힘들었니? 이봉구의 /1958년 블로그를 멀리 한지 벌써 넉달이 다 되어간다. '일일 일포스팅'이라는 나름의 원칙을 지켜오다 5월 중순 정확히 말하면 5월19일 이후로 포스팅도 건너뛰는 날이 많아졌고 내 블로그를 찾아준 이웃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 포스팅을 해보지만 안그래도 허접한 글에 먹물만 더 번지게 할 뿐이었다. 5월19일.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토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밝게 인사하고 헤어졌던 직장동료, 이 친구가 일요일부터 연락을 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결근이나 지각에 대해서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철두철미한 친구였던 터라 며칠 동안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전신을 파고들었다. 마침내 수요일 저녁 이 친구를 찾았다는 소식으로 찰나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어제(화요일) 한 ..
새까맣게 탄 예수만 있을 뿐 기적은 없었다 송상옥(1938~2010)의 /「현대문학」128호(1965.8) 작가 송상옥이 궁금했다. 라는 파격적인 제목만큼이나 분열된 현대인의 심리묘사가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송상옥', '흑색 그리스도'를 몇번이고 조합해서 검색창에 입력해 봤지만 언론인 출신에 재미작가라는 이력 외엔 눈에 띌만한 작가 소개글을 찾기가 어려웠다. 작가 송상옥은 195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로 입선한 후 이 사상계의 추천을 받으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69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송상옥은 , , 등 단편소설과 , , 등의 장편소설을 집필했는데 그 중에서도 는 작가 송상옥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는 종교색 짙은 제목과 달리 주제는 자신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산업..
추악한 세상을 허우적대는 우리의 자화상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의 여기 세 장의 사진이 있다. 귀엽게 생긴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의 사진이지만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뜯어보면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불길한 것이 느껴진다. 또 하나의 사진은 어엿한 청년이 된 그 아이의 사진이나 어쩐지 괴담같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마지막 사진은 어른이 된 그 아이가 분명한데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화로에 손을 쬐고 있는데 그대로 죽어버린 듯한 음산하고 불길한 인상을 풍기는 사진이다. 전후 일본문학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1909~1948)가 본 이 세 장의 사진 주인공은 다름아닌 '요조'라는 사람이다. 은 이 세 장의 사진에 얽힌 요조의 에피소드를 모은 액자소설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친절하게도 후기를 통해 이 수기를 쓴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