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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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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편쟁이 지기미 영감을 좋아하는 이유 김사량의 /1941년 지기미의 시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인 '지게미'의 경상도 지방 방언이라고 한다. 또 경북 지방에서는 '주근깨'를 지기미라고 한단다. 이런 사전적 의미 말고도 지기미는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의미가 있다. 일상에서 자주 듣는, 누구나 한번쯤은 사용해봤을 욕설이 그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보다는 습관적으로 말끝마다 '지기미'를 연발하곤 한다. 1941년 《삼천리》에 발표된 김사량의 소설 의 주인공 지기미 영감이 그랬다. 소설 전체를 보건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부두 노동자의 궁핍했던 삶과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편견에 대한 울분의 토로가 '지기미'였음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 '나'도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고향에는 슬픈 신작로가 있었다 현진건의 /1926년 우리네 길은 꼬불꼬불 지루함이 없다. 굽이돌아 해가 드는 모퉁이에는 느티나무를 그늘삼은 큼직한 돌멩이가 있어 나그네의 쉼터가 되었다. 불쑥 튀어나온 어릴 적 벗이 더없이 반가웠다. 모퉁이를 돌아 마주친 낯선 이와도 엷은 미소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런 길이 어느 날 논을 가로지른 아지랑이 너머로 끝이 가물가물한 지루한 길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길을 ‘신작로’라 불렀다. 누구나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고향에는 신작로 하나쯤은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신작로를 60,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생겨난 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신작로는 그 이전부터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수탈한 식량을 원활하고 신속하게 운송하기 위해 우리네 꼬불꼬불했던 길을 쭉 잡아 늘어뜨린 길이 신작로였다. 신작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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