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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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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의 정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애천(愛泉)/김채원/1984년 이 한 장의 사진을 기억하는가! 얼마나 다급한 상황이었으면 젓가락을 채 놓을 새도 없이 쓰러진 엄마, 쓰러진 엄마 품에는 어린 딸이 안겨있었다. 무너지는 건물로부터 딸을 보호하려는 듯 엄마는 자신의 머리로 대신 충격과 고통을 감내하였나 보다. 2008년 중국 쓰촨 대지진 당시 공개된 이 사진은 모성애의 실체를 확인한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었다. 도대체 모성애가 뭐길래. 쓰촨성 대지진 당시 이 사진 말고도 모성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연은 또 있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대는 한 아이가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구조대를 놀라게 더 놀라게 했던 것은 아이의 생존만이 아니었다. 발견 당시 아기 엄마는 무릎을 꿇고 두 팔로..
아버지의 가부장적 폭력과 딸의 충격적 일탈 저녁의 게임/오정희/1979년 악보를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 성재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해 귀가 멀어버린 여자다. 어느 날 트럭의 경적소리를 듣지 못한 채 앞서 가다가 트럭 운전수로부터 뺨을 맞고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떠올리며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된다. 술만 취하면 폭력을 행사하곤 했던 아버지 때문에 오빠와 어머니가 죽었지만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만 있을 뿐 지금은 치매에 걸려있는 아버지를 떠나지 못한다. 제정신이 아닌 아버지이지만 자신의 건강에 욕망에는 무한한 집착을 보인다. 어느 날 탈주범이 그녀의 집을 침입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잊었던 과거를 생각해 내고는 잃어버렸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저녁 습관처럼 반복되는 아버지와의 화투놀이, 그날 밤 그녀는 다시 시작된..
김명학씨가 현관에 발돋움길을 만든 이유 김광식(1921~2002년)의 /1956년 김명학씨는 길가에서 현관으로 들어오는 뜰길에 발자국을 내고 그 발자국 하나하나를 파낸 다음 벽돌 두 장씩을 홈에 넣어 발돋움길을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다.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나와서는 현관문 손잡이 근방을 미친듯이 파내고는 눈을 감고 손잡이 부근을 쓸어보고 있다. 돌았냐는 아내의 핀잔에 김명학씨는 가엾은 대답만 할 뿐이다. "돌아? 누가…… 돌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해놓는 거야" 그리고는 길가로 나가 현관 발돋움길을 눈을 감고 걸어가 문의 손잡이 부근을 쓸어보고는 문을 열어보는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남편의 이런 행동을 지켜보는 아내의 눈에서는 서러운 눈물이 흐른다. 김명학씨의 기이한 행동으로 결말을 맺는 김광식의 소설 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1936..
도시도 농촌도 아닌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다 박영한의 /1989년 시골 제비족으로 한때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쿠웨이트 박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MBC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순박한 만수 아빠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최주봉이다. 1989년 방영되었던 KBS 드라마 '왕룽일가'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쿠웨이트 박의 강렬한 인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도시와 농촌의 어정쩡한 중간지대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당시의 표현)의 삶을 그린 '왕룽일가'는 당시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로 박영한의 소설 (1988년작)가 원작이다. 박영한의 소설 은 전작 의 연작이다. 1978년 으로 제2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기도 했던 박영한은 여러 중편들을 모아 와 을 표제로 한 두 권의 연작소설을 발표했다. 각각 세 개의 중편소..
내 청춘의 갈증을 채워줬던 장편소설 5선 요즘 대학생들에게도 낭만이라는 게 있을까 궁금하다.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부모 등골 휘게 만드는 등록금, 사회에 나오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 오히려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가 더 쉬워 보이는 취업전쟁. 청춘의 대명사처럼 통용되던 낭만이 사치로 전락해 버린 현실에 낭만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괜한 미안함에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자기 계발서가 범람하는 현실도 아픈 청춘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면 내 대학시절은 그나마 낭만의 흔적들이 남아있었지 싶다. 당시 낭만이란 단순히 젊은 날의 만끽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현실과 미래의 고민을 유토피아적 상상으로 채워갔던 것도 낭만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장장 12년을 새장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청춘에게 새장 바깥에 존재하는..
그들은 왜 평화극장을 무너뜨려야만 했나 박태순의 /1968년 1960년 4월 26일 오전 11시. 라디오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로 시작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은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월 혁명의 승리를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는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고, 3.15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고, 만일 국민들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이 있기 하루 전인 4월 25일에는 전국대학교수단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평화 시위를..
508호 남자가 쓰레기봉투를 뒤지게 된 사연 하성란의 /1998년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된 것은 1995년 1월 1일이었다. 쓰레기의 배출량에 따라 수수료를 다르게 부과하는 쓰레기 종량제는 지정된 규격 쓰레기봉투를 판매하고 그 봉투에만 쓰레기를 버리도록 한 것이며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는 제외하여 쓰레기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시행되었다. 쓰레기 종량제가 처음 시작되던 당시에는 웃지못할 일들도 많이 있었다. 검정 봉다리(봉지)에 넣어 그냥 버리는 게 일쑤였고 동사무소에서는 검정 봉다리 속 내용물을 확인해서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고 규격 봉투가 아니면 수거해 가지 않는 바람에 골목 여기저기에는 쾨쾨한 냄새가 진동하기도 했다. 거의 정착단계인 요즘에도 이런 풍경은 종종 목격된다. 나도 가끔, 아주 가끔 검정 봉다리채 버린 적도 있다. 680원 하는 쓰..
그들이 분노하고 목적없는 질주를 계속하는 이유 최인호의 /1982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있는 백호빈은 조국의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미국 영주권이 필요하다. 그는 재미교포인 제인과 위장결혼을 한다. 제인도 백호빈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흑인과 결혼해 미국에 와서 지금은 이혼한 상태다. 제인은 백호빈과의 위장결혼으로 영주권을 얻어주는 대신 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둘은 이민국의 감시를 피해 위장된 동거생활을 시작하지만 남녀 사이에 움트는 사랑은 어쩔 수 없나보다. 제인은 백호빈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고...그들의 결말은 제인의 "당신이 갖는 꿈은 이 사막과도 같은 거예요"라는 한마디에 함축되고 만다. 안성기(백호빈), 장미희(제인) 주연의 (1985년)은 두 젊은 남녀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전개되는 희망과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