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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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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쏟아지는 날 다사히 볼이라도 부벼줄 한 모금의 볼따귀도 시간마다 가슴 아모려 기다려질 한 올의 바래움도 당장 육신채 마음채 내어던져 바치고 싶은 우러러볼 아무것도 없이 남의 집 뒷골방에 누워 다 사위어가는 냉화로를 뒤적이며 있노라면, 눈송이는 펑펑히 상흔을 두드리며 쏟아져오고 대지는 만 근같이 침묵하여 사람 소리조차 낯이 설었다 가는 곳마다 걸레쪽처럼 누데기가 된 생활은 낡은 횃대에 걸려 나부끼고, 세기말의 마지막 행렬은 안간힘 쓰며 눈물겨운 갈등을 저지르는 구슬픈 만가 소리 무엇이 무엇을 잡아먹고 무역이 백성을 팔아먹고 아가씨들이 사태를 이뤄 매음을 흉내내고······. 함박눈은 펄펄이 쏟아져오고 송이마다 피묻은 기억들이 되살아 매자근한 체온 위에 말없이 쌓여가도 발자욱 소리 하나 매혹스런 노랫가락 하나 들려오질 ..
말의 사기사님네께 한 천년 졸아나보시지요 일제히 고개들을 끄덕대며 무슨 싸롱이라든가에 들어앉아 별들이 왜 별입니까 그것은 땅덩이지요. 아 그 유명한 설계사 피카소씨라시죠 아니, 저, 뭣이냐 그 입체파 가수들이라시던가요 멋쟁이시던데요 새파란 제자들을 대장처럼 데리구 앉아. 농사나 지시면 한 백석직은. 품도 한창 아쉴 땐데. 염체 좋은 사람들 그래, 멀쩡한 정신들 가지구서 병신 노릇 하기가 그렇게나 장한가요 마음껏 흉물 쓰구 뒤나 자주 드나드시죠 양식은, 피땀 흘려 철마다 꼭 꼭 보내올릴께요 뽕먹는 누에처럼 그 괴상한 소리나 부지런히 뽑아서 봄에 자꾸 감아보세요 「어떻게 되나」 참 훌륭도 하시던데요 어쩌면 그렇게도 꼭 같을까 미국사람을 참 훌륭히도 닮으셨어 조끔만 더 있으면 우리말 같은 건······. 「원체 일등국언자는 양..
피로 지킨 NLL, 더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 게 해법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신동엽(1930~1969)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자다가 재미난 꿈을 꾸었지. 나비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다가 발 아래 아시아의 반도 삼면에 흰 물거품 철썩이는 아름다운 반도를 보았지.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 리의 완충지대, 이른바 북쪽 권력도 남쪽 권력도 아니 미친다는 평화로운 논밭.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자다가 참 재미난 꿈을 꾸었어. 그 중립지대가 요술을 부리데. 너구리새끼 사람새끼 곰새끼 노루새끼들 발가벗고 뛰어노는 폭 십 리의 중립지대가 점점 팽창되는데 그 평화지대 양쪽에서 총부리 마주 겨누고 있던 탱크들이 일백팔십 도 뒤로 돌데.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 물방개처럼 한 떼는 서귀포 밖 한 떼는 두만강 밖 거기서 제각..
이 땅의 아사달 아사녀에게 바치는 시 아사녀/신동엽(1930년~1969년) 모질게도 높운 城돌 모질게도 악랄한 채찍 모질게도 음흉한 술책으로 죄없는 월급쟁이 가난한 백성 平和한 마음을 뒤보채어쌓더니 산에서 바다 邑에서 邑 學園에서 도시, 도시 너머 궁궐 아래. 봄 따라 왁자히 피어나는 꽃보라 돌팔매, 젊어진 가슴 물결에 헐려 잔재주 부려쌓던 해늙은 餓鬼들은 그혀 도망쳐갔구나. -애인의 가슴을 뚫었지? 아니면 조국의 旗幅을 쏘았나? 그것도 아니라면, 너의 아들의 학교 가는 눈동자 속에 銃알을 박아보았나?-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우리들의 피는 대지와 함께 숨쉬고 우리들의 눈동자는 강물과 함께 빛나 있었구나. 四月十九日, 그것은 우리들의 조상이 우랄 高原에서 풀을 뜯으며 양달진 동남아 하늘 고운 半島에 移住 오던 그날부터 삼한으로 백제로 고려..
한국사람이 '어뢴지' 하면 미국사람 되나요 말의 사기사님네께/신동엽(1930년~1969년) 한 천년 졸아나보시지요 일제히 고개들을 끄덕대며 무슨 싸롱이라든가에 들어앉아 별들이 왜 별입니까 그것은 땅덩이지요. 아 그 유명한 설계사 피카소씨라시죠 아니, 저, 뭣이냐 그 입체파 가수들이라시던가요. 멋쟁이시던데요 새파란 제자들을 대장처럼 데리구 앉아. 농사나 지시면 한 백석직은. 품도 한창 아쉴 땐데. 염체 좋은 사람들 그래, 멀쩡한 정신들 가지구서 병신 노릇 하기가 그렇게나 장한가요 마음껏 흉물 쓰구 뒤나 자주 드나드시죠 양식은, 피땀 흘려 철마다 꼭 꼭 보내올릴께요. 뽕먹는 누에처럼 그 괴상한 소리나 부지런히 뽑아서 몸에 자꾸 감아보세요 「어떻게 되나」 참 훌륭도 하시던데요 어쩌면 그렇게도 꼭 같을까 미국사람을 참 훌륭히도 닮으셨어 조끔만 더 있으면..
껍데기로 가득 찬 반도, 제발 가주렴 껍데기는 가라/신동엽/1967년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지난 3일 개성공단에 체류중이던 7명의 남측 관계자들이 전원 귀환하면서 2003년 착공한 지 10년만에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 남쪽 입주 기업들의 경제적 손실과 개성 공단에 근무했던 북쪽 5만 여 노동자들의 생활고는 물론이거니와 남북 대결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개성 공단의 폐쇄는 한반도가 언제든 화약고가 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