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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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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보일러 때문에 불효자의 겨울은 더디더디 김종광의 /2011년 어느 시골 농가 주름이 깊게 패인 아버지가 소를 몰고 들어온다. 어머니는 맨손으로 두껍게 언 얼음을 깨느라 분주하다. 방에 들어온 노부부는 아랫목에 손을 녹이고는 짧은 대화를 나눈다. “에이그, 방이 왜 이래” “이 추운데 애들 고생이나 안하는지, 원” 다시 눈쌓인 농가가 화면에 잡히고 자막과 함께 며느리로 보이는 어느 여인의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여보, 아버님 댁에 XX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1990년대 어느 보일러 전문기업의 TV광고는 이렇게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카피로 인기를 끌었다. 이 광고는 ‘따뜻한 사회 만들기’라는 공익적 성격을 띠면서 다양하게 진화해갔다. 자사 제품의 홍보 대신 전통적 윤리의식을 강조한 카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광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
대(大)를 위해 소(小)는 희생되어야만 하는가 곽학송의 /1953년 역사는 자기희생을 무릎쓴 영웅들의 피로 전진한다고들 한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대(국가, 민족...)을 위해 소(개인)를 희생한 영웅들의 삶은 늘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들의 삶은 교과서 속에서 추앙의 대상이 되고 개인의 삶은 그들의 그것으로 개조되기를 강요받기도 한다. 물론 교육적 차원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한 사람의 영웅을 만들기 위해 쓰러져간 수없이 많은 개인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소수의 영웅들이 교과서를 점령하는 사이 이름없는 개인들의 삶은 그 가치마저 왜곡되기도 하고 폄하되기 일쑤다. 특히 거대한 국가적 담론 앞에서 늘 개인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지만 결코 숭고한 희생에 대..
단 5분간의 회담이 결렬된 이유 김성한의 /1955년 "저걸 좀 내려다보아라. 과거는 잊어버리자. 저걸 수습해야 할 거 아니냐? 요컨대 너와 나의 싸움이니 적절히 타협하잔 말이다. " "그게 역사죠. 역사는 당신과 나의 투쟁의 기록이니까." "그러나 이건 진전이 아니라 말세다." "당신의 종말이 가까웠으니까……" "내 종말은 즉 세상의 종말이 아니야?" "흥, 그거 또 괴상한 얘기로군." - 중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신이 구름 위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며 단 5분간의 짧은 회담을 하고 있다. 그 사이 인간세상에서는 프로메테우스와 신을 대리하는 자들이 열변을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회담의 아름다운 결정체가 타협이거늘 프로메테우스와 신 사이에는 접점이 보이지않는 평행선만 존재할 뿐이다. "지나치게 자기 재주를 믿는 것도 사고야. 이제 막다른..
젊은 박경리를 슬프게 한 것들 박경리의 /1957년 전쟁이 남기는 상처 중에 가장 치유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사회적 관계로 묶어 주었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다. 특히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일컫는 한국전쟁은 수천년 동안 이어내려온 민족적 동질감을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이 침투해 철저히 파괴해 버린 경우다. 결코 우선일 수 없는 이념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비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영화 '만무방'에서 어느 깊은 산골에 사는 촌부가 낮에는 태극기를 걸고 밤에는 인공기를 걸어야 했던 것처럼 생존을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덫에 스스로 갖혀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게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한국문학의 거목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경리의 소설 는 이처럼 전쟁이 허물어버린 신뢰의 벽을 일..
고향을 버려야 하지만 버릴 수 없는 사람들 이호철의 /1955년 작가 이호철은 원산이 고향인 실향민이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으로 동원되었다가 국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단신으로 월남해 부산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때 그는 부산항 부두 노동자로 일하면서 김동리의 소설 배경이 된 밀다원 다방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호철의 데뷔작 은 당시 부산항 부두 노동자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 이호철의 단편소설 은 전쟁의 충격으로 허무주의와 패배주의로 점철된 당시 전후소설들과는 사뭇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이는 실향민으로서 낯선 타향에서 홀로 서야만 했던 저자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고..
분지필화사건과 미국을 보는 또 하나의 시선 남정현의 /1965년 1965년 5월8일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조국통일》에 한 편의 소설이 실렸다.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는 부랴부랴 이 소설의 저자를 긴급체포했다.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저자에게 이 소설이 북한이 보내준 원고가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졌다. 며칠 후 구속적부심에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석방되었지만 1년 후 반공법 위반혐의로 다시 기소되었다. 한승헌 변호사 등이 무료변론에 나섰고 안수길과 이어령 등 동료문인들이 피고인측 증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또 《창작과 비평》창간 편집인이기도 했던 문학 평론가 백낙청은 저자의 구속에 항의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은 6개월의 실형으로 마무리되었고 피고인이었던 이 소설의 저자는 1967년 선고유예 판결로 풀..
내가 아편쟁이 지기미 영감을 좋아하는 이유 김사량의 /1941년 지기미의 시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인 '지게미'의 경상도 지방 방언이라고 한다. 또 경북 지방에서는 '주근깨'를 지기미라고 한단다. 이런 사전적 의미 말고도 지기미는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의미가 있다. 일상에서 자주 듣는, 누구나 한번쯤은 사용해봤을 욕설이 그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보다는 습관적으로 말끝마다 '지기미'를 연발하곤 한다. 1941년 《삼천리》에 발표된 김사량의 소설 의 주인공 지기미 영감이 그랬다. 소설 전체를 보건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부두 노동자의 궁핍했던 삶과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편견에 대한 울분의 토로가 '지기미'였음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 '나'도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탐욕스런 인간들의 향연 김정한(1908~1996)의 /「문장」19호(1940.10)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 중에 팔정도(八正道)라는 것이 있다.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르게 생활하고(正命), 바르게 정진하고(正精進), 바르게 깨어있고(正念), 바르게 집중하면(正定) 누구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실천 덕목이다. 그러나 여지껏 부처가 된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말처럼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성인의 그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정신과 육체에 지니고 있는 욕심 때문이지 싶다. 죽음을 목전에 둔 추산당은 한 때 수행하는 승려였다. 아니 지금도 승려로서 속세와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추산당은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