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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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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성과 사상전환 그리고 월북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해방 전후』/「문학」1호(1946.8)/창비사 펴냄 이태준이 1946년 「문학」지를 통해 발표한 소설 『해방 전후』는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태준은 『해방 전후』를 통해 급격한 사상전환을 시도한다. 일제시대에도 순수문학만을 고집했고 경향파 작가들과도 거리를 두었던 그가 해방 이후 급작스레 사회주의자로 변신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월북한 이후 숙청 당하기까지의 과정도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 이태준이다. 『해방 전후』가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했으니 소설의 이해를 위해서도 작가 이태준에 대한 간략하나마 소개가 필요할 듯 하다. 상허(尙虛) 이태준은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했다. 1925년..
소설 '농군'이 친일논란에 휩싸인 이유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농군』/「문장」임시증간 창작32인집(1939.7)/창비사 펴냄 창권이네 가족은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들과는 동떨어져 보이게 창백한 아내 이렇게 넷뿐이다. 그들은 고향 강원도를 등지고 장춘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현재 이 가족에게는 밭 판 돈 삼백이십 원이 전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만주의 쟝쟈워푸라는 곳이다. 창권이가 다니던 보통학교 교사였던 황채심의 권유로 이곳 이역만리 만주땅에 한 가닥 희망을 일구려 하고 있다. 쟝쟈워푸는 조선 땅과 달리 산도 없고 소 등어리만한 언덕도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조선 사람들이 지금은 근 삼십 호의 조그만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아무리 중국 정부로부터 개간권을 부여 받았다지만 이곳..
서리를 밞으면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라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패강랭』/「삼천리문학」1호(1938.1)/창비사 펴냄 옛 것을 그리워하고 복원을 꿈꾼다면 우리는 흔히 ‘보수’라는 말로 그 사람의 이데올로기를 특징짓는다. 한편 ‘보수’라는 말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단 우리사회만 한정한다면. 정치지향적 특성이 강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게다가 보수와 수구의 의미를 혼동하여 사용하다 보니 건전한 의미의 보수가 수구적 이미지로 덧칠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치적으로 보수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과거 군사정권과 같은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나타냄으로써 보수의 올바른 정의가 훼손되기도 한다. 옛 것을 지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한국 근·현대 작가 중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로 꼽히는 이태준의 소설을 읽다 보..
일제시대에도 부동산투기가 있었다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복덕방』/「조광」17호(1937.3)/창비사 펴냄 한국 사람들처럼 땅에 대한 집착이 강한 국민이 있을까 싶다. 우리 사회에서 땅은 단순한 재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땅은 권력이요, 명예다. 우리 사회에 부동산 투기가 ‘망국병’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는 것도 이런 땅에 대한 무한한 집착이 가져온 자연스런 결과인지도 모른다. 내집에 대한 서민들의 꿈이 강렬할수록 부동산 투기는 더욱 악랄한 악마의 발톱이 되어 서민들의 꿈을 산산조각 내어 버리곤 한다. 불꺼진 아파트가 넘쳐나는데 왜 집없는 서민들은 내집 마련을 요원한 꿈처럼 생각해야만 하는 것일까? 부동산 투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거늘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해법들이 모색되기도 하지만 무엇보..
시한부 여자의 애인이 되어주고픈 남자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까마귀』/「조광」3호(1936.1)/창비사 펴냄 호상(好喪)이란 말이 있다.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에는 고통없이 생을 마감하는 죽음에도 호상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오래 살면서 고통없이 죽는다는 것은 인간이 지상에서 열망하는 마지막 바램인지도 모른다. 또 인간은 사후세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한다. 간혹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죽음 뒤에 오는 세상은 꽃과 빛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죽음도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세상에 아름다운 죽음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이태준의 『까마귀』는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서 찾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
"노랑수건, 네가 강자(强者)다"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달밤』/「중앙」1호(1933.11)/창비사 펴냄 강자가 살아남는다 하고 살아남는 놈이 강자라 한다. 인간이란 참 간사하다. ‘호모○○○’, ‘호모○○○’, ‘호모○○○’ 라는 난해한 말을 만들어 동물과 구분하려 들면서 정작 동물들의 세계인 ‘약육강식(弱肉强食)’을 진리인양 떠받들고 산다. 도대체 강자란 누구이며 어떤 놈이 살아남는단 말인가! 권력과 돈을 가진 자?, 뛰어난 머리와 빠른 발을 가진 자? 아니다. 약삭빠른 자가 강자다. 살아남는 자가 강자라면 분명 쥐처럼 약삭빠른 자가 강자임에 틀림없다. 약자가 만들어준 강자의 세상. 꼴찌에게 보내는 박수는 강자의 거만함인지도 모른다. 이태준의 소설 『달밤』의 주인공 황수건은 빡빡 깎은 머리지만 보통 크다는 정도 이상으로 ..
MB만 비껴간 코미디 풍자, 과연 바람직한가 20세기 한국소설05/창비사 1980년대 KBS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일번지] 중에 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비룡 그룹 임원 회의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본 설정으로 한 당대 최고의 인기 코미디 프로였다. 비룡 그룹 임원회의에는 몇 명의 정형화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김회장(故김형곤), 쥐뿔도 아는 게 없지만 회장 처남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버티고 있는 양이사(故양종철), 쓴소리만 해대는 그래서 늘 찬반신세인 엄이사(엄용수), 김회장 옆에서 딸랑딸랑 방울소리만 울려대는 영혼없는 김이사(김학래). 마치 도때기 시장 같은 비룡 그룹의 임원회의는 김회장이 주먹으로 자신의 이마를 때리며 “잘 되야 될텐데…”라는 말과 함께 끝이 났다. 이들이 쏟아내는 웃음 보따리는 힘겨운 시대를..
뺏기지 않는 놈은 도적질할 권리도 없다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명일』/「조광」12~14호(1936.10~12)/창비사 펴냄 만일 내일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무슨 색깔일까? 노란색, 파란색, 흰색…아마 검정색이나 회색으로 내일을 표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일을 의미하는 또 다른 한자인 명일의 명 자도 ‘밝다(明)’라는 뜻이다. 새 날이 밝아온다는 직접적인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옛 사람들은 내일이 가지는 속성을 희망이고 꿈이고 기대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을지 어설픈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여기 내일을 온통 회색빛으로 채색하고 있는 지식인이 있다. 그는 소위 룸펜(Lumpen) 지식인이다. 그에게 내일은 명일(明日)이 아니라 명일(冥日)이다. 채만식의 소설 『명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발표된 『레디메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