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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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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레테의 강을 건너지 않는다. 입동/김애란(1980~)/2014년 그리스 신화에는 죽음의 신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등장한다. 인간이 죽으면 아케론, 코키토스, 플레게톤, 스틱스, 레테라는 이름의 다섯 강을 건너 영혼의 세계에 안착하게 되는데 각각의 강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케론을 건너면서 망자는 죽음의 고통을 씻어낸다. 뱃사공 카론의 배로 아케론을 건너면 코키토스라는 통곡의 강을 건너야 한다. 이승에서의 시름과 비통함을 내려놓기 위해서다. 망자가 건너야 할 세 번째 강은 불의 강 플레게톤이다. 망자는 플레게톤을 건너면서 아직도 남아있을 이승에서의 감정들을 불에 태워버릴 수 있다. 플레게톤을 건너면 무시무시한 스틱스가 기다리고 있다. 스틱스는 신들도 무서워할 정도로 위엄을 갖추고 있다. 신들..
내재된 범죄심리와 공포를 추적한 소설 검은 고양이/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 미국)/1843년 “껌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 “고양이 뇌.” 한때 이런 황당한 류의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동요로 1970년대 우리말로 번안되어 어린 여자 아이의 숨가쁜 목소리로 널리 알려지게 된 노래 ‘검은 고양이 네로’를 얼핏 들으면 ‘껌은 고양이 뇌로’로 들린다고 해서 만들어진 넌센스였을 것이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있듯 고양이는 우리와 친숙한 동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중세 서양인들은 마녀들이 희생자들에게 주문을 걸기 위해 고양이로 변신했다고 믿었다. 일종의 미신이긴 하지만 마녀사냥이 한창인 시절에는 고양이까지도 같이 학살당했다는 기..
책이 무서운 당신이 책과 친해지는 방법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김은섭/지식공간/2012년 2002 한일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인 5월 어느 날에 대전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으니 벌써 햇수로 11년이 되었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고 일 년에 몇 번 찾는 고향이 때로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낯선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음식만한 게 있을까. 대전에 내려와 1년 가까이를 맛집 탐방에 열심이었던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당시 가장 자주 찾았던 식당이 바로, 으느정이 거리가 끝나고 삼겹살 골목이 시작되는 지점 모퉁이에 자리잡은 춘천 닭갈비였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라 대전이라는 낯선 이름과 친해지기에는 딱 알맞은 장소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지 익숙함은 때로는 게으름으로 표현되기도 하나보다. 타향의..
전쟁이 남긴 가족의 상처 그리고 치유 송기원의 /1977년 전세계에서 한국처럼 전쟁의 잔혹성과 후유증이 국민들 개개인의 사생활 깊은 곳까지 침투해 있는 곳은 드물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열강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토는 허리를 잘리게 되었고 단일민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가족의 이별, 그리고 전쟁. 형제끼리 총칼을 겨눠야만 했던 야만성과 고착화된 분단상황에 냉전적 이데올로기가 더해지면서 지금까지도 전쟁과 이념대립의 트라우마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화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데탕트 분위기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사회. 바로 한국사회의 현주소다. 벌써 분단 1세대들은 세월의 무게에 쓰러져가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남과 북의 위정자들은 그들의 이해타산에 따라 날선 대립각만을 고집하고 있..
어느 전향 남편의 아내 폭행사건 전말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남천의 『처를 때리고』/「조선문단」속간11호(1937.6)/창비사 펴냄 작가 김남천은 1차 사상탄압 당시 검거되어 카프작가로는 유일하게 본심에 회부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남천이 피검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문학활동 때문이 아니었다. 1931년 있었던 ‘공산주의자 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카프 작가들 사이에서는 전향론이 제기되기에 이른다. 김남천도 얼마 후 위장 전향이니 진짜 전향이니 논란 속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는데 이 사건 이후 김남천은 임화와 함께 카프 해산계를 제출함으로써 민족주의 진영의 순수문학론에 반발해 문학의 현실참여를 주장했던 카프 작가들의 조직적인 활동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사라지게 된다. 김남천의 소설 『처를 때리고』..
타협을 거부한 지식인의 핍박, 결국 親日로 돌아서다 현상윤의 /1917년 1992년을 잊지 못한다. 그해 총선이 있었고 대선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성인이 되어 행사할 수 있는 투표라는 행위를 하게 되었다. 투표뿐만 아니라 직접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경험까지 했다. 나는 당시 백기완 대통령 후보와 민중당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물론 선배의 권유도 있었지만 소위 전교조 1세대인 나로서는 이미 고등학교 때 희미하게나마 현실에 눈을 떴던 것 같다. 그 당시 선거운동 참여도 나름대로는 자발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이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기까지는 고민도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당시 선배들은 민중세력의 정치세력화를 두고 직접 참여하자는 쪽과 보수야당의 비판적지지를 통해 때를 기다리자는 쪽으로 나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