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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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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부산과 2011년 대한민국의 끝의 끝 닮은꼴 손창섭의 /1953년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찌하여 그들은 출찰구를 빠져나오자 마자 그렇게 쓱쓱 찾아갈 곳이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그들은 한 순간에 동지에서 벗어나 그렇게 용감하게 자유를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이 부산의 끝의 끝, 막다른 끝이란 것을 모른단 말인가. 이 끝의 끝, 막다른 끝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옮기면 바다에 빠지거나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그렇지도 않다면 정녕 이 끝의 끝, 막다른 끝까지 온 사람은 중구 자신 뿐이란 말인가. 김동리는 그의 소설 (1955년)에서 한국전쟁 당시 최후의 피난처 부산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끝의 끝. 김동리는 전쟁의 상흔이 남긴 극한의 절망적 상황을 '끝의 끝'이라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단어로 ..
80년 5월과 87년 5월의 단상 그리고 오늘 홍희담의 /1988년 그해 5월은 뜨거웠다. 여름의 문턱을 넘어가는 태양이 뜨거웠고 태양의 열기를 온전히 담아내는 아스팔트가 뜨거웠고 그 아스팔트를 채운 사람들의 열정은 계절을 앞지르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87년 5월은 그렇게 뜨거운 공기를 호흡하며 시작되었다. 거리는 온통 시위대로 가득찼다. 거리에 넘쳐나는 시위대의 숫자만큼 수업도 오전에 마치는 날이 늘어났다. 아마도 야간에 있을 시위에 합류하지 못하게 하기위한 궁여지책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오전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았다. 누구랄 것도 없이 가톨릭 회관으로 모였다. 우리의 목적지는 가톨릭 회관 4층이었다. 험난한 길이었다.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땀냄새로 가득했고 가톨릭 회관 바깥 인도에는 사람들의 행렬로..
Adieu!! 2010 ① 책 블로거로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 그리스 신화에서 신중의 신으로 알고 있는 제우스는 6남매 중 막내다. 하데스(지옥의 신), 포세이돈(바다의 신), 헤스티아(가정의 신), 데메테르(곡식의 신), 헤라(사랑의 신, 제우스의 아내) 등이 바로 제우스의 형이요, 누이가 되는 신들이다. 그럼 막내인 제우스는 어떻게 신들의 왕이 되었을까?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식이 태어나면 삼켜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는 제우스가 태어나자 돌덩이와 아들을 바꿔치기해서 크로노스가 제우스를 삼켜버릴 위기에서 구한다. 어머니 레아의 지혜로 목숨을 건진 제우스는 훗날 건장한 청년이 되어 그동안 아버지 제우스가 삼켜버렸던 형과 누이들을 아버지의 뱃속에서 꺼내어 주는데 비록 태어난 날은 늦었지만 아버지의 뱃 속에서 나온 형과 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