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화가

(4)
희망은 절망의 생채기에 돋아나는 새살이다 노랑무늬영원/한 강/2003년 한 대학생이 조지아주 브룬스윅행 버스에서 수년간의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아내가 있는 자신의 옛집으로 가던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아내가 자신을 받아줄지 고민하던 중 교도소에서 아내에게 미리 출소 날짜를 알려주고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준다면 집 앞의 참나무에 노란색 손수건을 걸어달라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아내가 자신을 받아주길 간절히 원했지만 선택은 아내의 몫이었다. 버스가 자신의 옛집에 가까워오자 그 남자는 가슴이 떨려 볼 수 없었던지 그 대학생에게 참나무에 손수건이 걸려있는지 봐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승객들도 가슴을 조이며 차창 너머로 마을 입구를 바라보았는데, 그 남자가 말했던 참나무에는 노란색 손수건이 한가득 매어져 있었다고 한다. ..
화가와 창녀와 현대 도시인의 공통점 도시의 향기/채영주/1993년 내가 아는 물고기들은 그런데 대체로 외롭다. 특히 아름다운 태국 버들붕어의 경우를 보라. 그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 이외의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다가 동일한 족속의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들은 온몸을 핏빛으로 물들인다. 정열의 불길이 지느러미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간다. 그들에게는 두 가지 대안이 있을 뿐이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여 상대방을 죽이느냐 혹은 화려한 사랑행위를 시작하느냐, 그러나 어느 쪽을 택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싸움으로 상대가 죽어도 그들은 혼자가 되며 사랑이 끝나도 수컷은 암컷을 쫓아버린다. 세상은 어차피 혼자라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현자들인 것이다. - 중에서- 지독하리만치 '절대고독'에 집착하는 이가 있다. 그는 해..
'방란장 주인' 마침표(.)가 단 하나뿐인 소설 [20세기 한국소설] 중 박태원의 『방란장 주인』/「시와소설」1호(1936.3)/창비사 펴냄 노래 부를 때 뿐만 아니라 책도 읽다 보면 호흡이 필요할 때가 있다. 호흡의 길이는 읽는 이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적절한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호흡은 책의 이해도를 높이고 내용의 흐름을 원활하게 연결시켜 준다. 또 호흡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호흡은 대략 한 문장이 끝나거나 길지 않은 문단이 끝났을 때가 대개는 적절한 타이밍으로 여겨진다. 여기 언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지 적절한 타이밍을 혼란스럽게 하는 소설이 있다. 박태원의 소설 『방란장 주인』이 그것이다. 『방란장 주인』은 단 한 문장으로 된 단편소설이다. 아무리 단편소설이라지만 어지간한 필력으로는 소화해 내기 힘든 5,558자에 이르는 소설..
법정스님은 왜 이 책을 평생 간직했을까?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 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중 중에서-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고 입적한 법정스님의 소박한 소망이 끝내 이루어졌다고 한다. 법정스님의 49재 3재가 치러진 지난 3월31일, 법정스님이 말하던 그 ‘꼬마’가 중년이 되어 나타나 스님이 남긴 6권의 책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이 중년의 신사처럼 행복한 이가 또 있을까? 이승에서의 빛나는 삶만큼이나 입적 후에도 각박한 세상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촉촉이 적셔준 법정스님에게 절로 옷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