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즉흥 환상곡으로 유명한 쇼팽(Fryderyk Franciszek Szopen, 1810~1849)은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했던 음악가 중에 한 명으로 폴란드 태생이었지만 주 활동무대는 프랑스였다. 폴란드 출신이었지만 폴란드 오페라를 단 한 곡도 작곡하지 못했다. 또 그가 조국을 떠나 활동했던 시기는 러시아에 대항해 폴란드인들의 저항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때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쇼팽이 죽었을 때 폴란드 망명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는 그에게 깊은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쇼팽은 1849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파리의 페르 라세즈 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쇼팽의 시신에는 심장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영화 '쇼팽, 사랑의 열망'(2002) 중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쇼팽에게는 생전에 두 명의 애인이 있었다. 1830년 폴란드 바르샤바는 혁명의 불길에 휩싸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고 있던 쇼팽은 조국으로 돌아가 혁명에 동참하고 싶었다. 하지만 쇼팽의 부모는 적극 만류했다. 총칼이 아닌 예술로 조국에 봉사하라는 것이었다. 죽을 때까지 조국에 대한 죄의식을 안고 살았던 쇼팽은 그의 심정을 '혁명 에튀드'에 적나라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쇼팽이 조국을 떠나기 어려웠던 이유는 또 있었다. 첫사랑 콘스탄차 때문이었다.

 

폴란드 성악가였던 콘스탄차는 쇼팽의 연인이기도 했지만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가 그토록 조국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도 혁명과 함께 그의 연인 콘스탄차 때문이었다. 쇼팽의 콘스탄차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그가 친구들에게 남긴 편지에도 절절하게 남아있다. 쇼팽이 바르샤바를 떠나기 전 마지막 연주회에서 선보인 피아노 협주곡 1E단조의 2악장 로만체는 콘스탄차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한다. 또 이 콘서트에는 콘스탄차가 직접 출연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파리에서 활동하면서도 쇼팽은 콘스탄차를 잊지 못했다. 하지만 콘스탄차를 폴란드 대부호였던 요제프 그라보스키와 결혼했고 아이도 다섯 명이나 낳았다. 사실 콘스탄차는 쇼팽이 자기를 그토록 열렬하게 사랑했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다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도 않았다. 쇼팽도 이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남녀의 사랑이 어디 무 자르듯 그렇게 단칼에 잊혀질 리 없었다. 이런 쇼팽의 마음을 달래준 이가 바로 <콩쉬엘로>, <악마의 늪>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Georges Sand, 1804~1876)였다. 상드의 사랑은 헌신적이었다. 결핵에 걸린 쇼팽을 위해 매년 여름 휴양지인 노앙을 찾았고 그녀의 절친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관계에 냉담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영화 '쇼팽, 사랑의 열망'(2002) 중에서

 

쇼팽의 건강은 악화되어만 갔고 상드와의 긴장된 관계는 쇼팽에게 우울증까지 가져다 주었다. 그렇다고 상드의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상드는 쇼팽이 사랑한 여인은 오직 그의 어머니뿐이었다.’며 조국 폴란드를 그리워하던 쇼팽을 이해하고 있었고 폴란드 혁명을 지지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 사이 쇼팽의 성격은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있었고 끝내 상드와 결별할 수 밖에 없었다.

 

상드와 헤어진 후 파리로 돌아온 쇼팽은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지인들이 보는 가운데 1849년 숨을 거두었다. 쇼팽을 유언을 통해 미완성 악보를 모두 파기할 것과 자신의 장례식 때는 모짜르트의 진혼곡을 연주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의 유언대로 모짜르트의 진혼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프랑스 마들렌 성당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고 페르라세즈 공동묘지에 묻혔다. 1년 후 쇼팽의 무덤에는 조국 폴란드에서 가져온 흙이 뿌려졌다. 그런데 쇼팽의 시신에는 심장이 없었다. 쇼팽의 심장만 따로 조국 폴란드에 묻혔기 때문이다.

 

흔히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조르주 상드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쇼팽의 마음에는 늘 조국과 바르샤바에 있는 첫사랑 콘스탄차가 있었다. 쇼팽은 결핵 악화로 죽기 직전 누나 루드비카에게 폴란드에 돌아가고 싶다고 유언 아닌 유언을 했으며 친구 마친스키에게 쓴 편지에서는 죽고 난 뒤 뼛가루는 콘스탄차의 발 밑에 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유언대로 쇼팽의 심장은 조국 폴란드로 돌아왔고 바르샤바의 성십자 성당에 안치되었다2002년 개봉된 영화 예르치 안차크 감독의 쇼팽, 사랑의 열망은 당시 조국과 첫사랑을 그리워하던 쇼팽의 마음을 그렸다. 이 영화의 주제곡은 가장 단순해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왈츠 A단조였다. 비록 조국을 위해 총을 들지는 못했지만 첫사랑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쇼팽의 심장은 조국 폴란드와 첫사랑 콘스탄차에게 바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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