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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24 아버지의 가부장적 폭력과 딸의 충격적 일탈 (15)

저녁의 게임/오정희/1979년

 

악보를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 성재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해 귀가 멀어버린 여자다. 어느 날 트럭의 경적소리를 듣지 못한 채 앞서 가다가 트럭 운전수로부터 뺨을 맞고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떠올리며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된다. 술만 취하면 폭력을 행사하곤 했던 아버지 때문에 오빠와 어머니가 죽었지만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만 있을 뿐 지금은 치매에 걸려있는 아버지를 떠나지 못한다. 제정신이 아닌 아버지이지만 자신의 건강에 욕망에는 무한한 집착을 보인다. 어느 날 탈주범이 그녀의 집을 침입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잊었던 과거를 생각해 내고는 잃어버렸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저녁 습관처럼 반복되는 아버지와의 화투놀이, 그날 밤 그녀는 다시 시작된 아버지와의 화투놀이에서 억눌렸던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킨다. 

 

2009년 당시 영화 중간에 삽입된 성기노출로 외설 논란을 일으키며 어렵사리 개봉한 최위안 감독의 '저녁의 게임'은 그해 유바리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어릴 적 받았던 가정폭력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몽환적인 판타지 장면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심리를 묘사했던 이 영화는 개봉 전 논란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영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의 원작이 바로 1979년 《문학사상》에 발표된 오정희의 소설 <저녁의 게임>이다. 등장인물의 직업이나 이야기 전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매일 밤 반복되는 아버지와의 화투놀이라든가 추가적인 등장인물들이 상상이나 회상을 통해 언급된다든지 함으로써 보여주고자 한 주제의식은 소설이나 영화나 같다고 할 수 있다.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강한 반발이자 저항" 

 

입센(Henrik Johan Ibsen, 1828~1906, 노르웨이)의 <인형의 집>으로부터 시작된 문학에서의 여성해방에 관한 주제는 이후 국내에서도 특히 여성 작가들에 의해 끊임없는 고민의 흔적들을 남겨주고 있다. 작가 오정희의 작품세계 또한 기존 사회의 규범화된 여성성을 거부하고 보다 근원적인 여성의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그의 이런 작품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소설이 <저녁의 게임>이다. 다소 충격적인 장면들은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로 대표되는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강한 반발이자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화투놀이라는 소재의 친근함이 우선 눈에 띈다. 저녁에 하는 게임이 바로 화투놀이다. 화투로 길융화복을 점쳐보기도 하니 소설에서 화투놀이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아버지와 딸의 일상적인 화투놀이를 통해 독자들은 부재한 인물들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또 화투놀이는 이 집안이 현재의 상태가 되기까지 자행된 아버지의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딸의 성토장이기도 하다. 한편 화투놀이가 매일 저녁 반복되는 이 집안의 일상이라는 점은 누군가는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하고 기존 남성중심사회의 억압구조에 대한 끈질긴 문제제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는 마치 먼 옛날부터 이렇게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 화투놀이를 해왔던 것 같다. 그 이전의 기억은 마치 유년 시절의 꿈처럼 현실과 공상이 뒤섞여 멀고 아리송했다. 패가 막히거나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일단 변소를 다녀오는 노름꾼의 풍속대로 오빠는 자기의 패를 점쳐보기 위해 슬그머니 자리를 뜬 것이 아닐까. -<저녁의 게임> 중에서-

 

그렇다면 이 집안에서는 과거에 어떤 일이 벌여졌던 것일까.

 

"어머니로서의 역할

                        즉 모성성을 박탈당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엇갈린 시선이 존재할 수도 있다. 특히 마초적이거나 포비아적이면 더 그렇다.

 

어머니는 '머리통이 물주머니처럼 무르고 크게 부풀어 오른' 기형아를 낳았다. 몸이 허약한 어머니는 정신줄을 놓게되고 갓난아기 또한 죽게 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기형아를 낳았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동자혼이 씌었다며 엉터리 기도원에 보내고 어머니는 그곳에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다 죽고만다. 오빠가 가출한 것도 이 때의 충격 때문이다.

 

어찌보면 단순해 보이는 이런 상황을 저자나 주인공 '나'가 아버지의 가부장적 폭력의 결과라고 생각한 데는 갓난아기가 죽은 원인을 어머니의 광기 탓이라는 아버지의 자기변명 때문이다. 아버지의 근거없는 독단적 판단에 의해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역할 즉 모성성을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나'의 혼담이 번번히 깨진 것도 어머니 탓으로 주장한다. 이런 독단적인 가부장적 권위 아래서 오빠는 가출이라는 방식으로 저항하지만 '나'는 결혼도 못한 채 아버지와 살고 있다는 설정 자체가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중심사회의 단편이자 가부장적 권위와 폭력의 결과인 셈이다. 

 

외려 네 엄마에겐 그곳이 편한 곳이야. 친구들도 있고 가족이란 생각하듯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너부터도 내심 네 엄마를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지 않니? 그전에 번번이 네 혼담이 깨지던 것도 어미 탓이라고 원망했을걸. 나는 이마를 찡그렸다. -<저녁의 게임> 중에서-

 

딸의 아버지의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반발은 다소 충격적인 장면으로 그려진다.

 

 

"창녀놀이와 자위행위가

상징하는 것"

 

아버지와의 화투놀이가 끝나면 주인공 '나'는 창녀가 되고 아버지가 잠들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위행위를 하는 것이다. 낯선 사내와의 성행위가 댓가없이 매일 저녁 이어진다는 점에서 보통의 성매매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화투놀이, 창녀놀이.....

 

특별할 것 없는 성적욕망을 아버지의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문화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이해한다면 저자가 굳이 이런 충격적인 장면을 도입해야만 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성문화의 단면을 남성중심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으로 보는 것이다.

 

성매매는 일반적으로 남성이라는 수요자와 여성이라는 공급자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단속과 함께 합법화 논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런 관계의 성문화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 정도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남성 수요자와 여성 공급자라는 성매매의 관계가 바뀐다면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은 그냥 악으로 규정되고 만다. 자위행위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에게 성장기 자위행위는 일종의 성장통이거나 성인이 되는 과정으로 인식되지만 여성의 그것은 불결하고 천박한 행위로 규정되기 일쑤다. 필자가 제목으로 쓴 '딸의 충격적 일탈'도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런 여성의 성적욕망에 대한 표현이 부정적인 언어로 묘사되는 현실을 가부장적 권위로 대표되는 남성중심사회가 만들어낸 모순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주인공 '나'의 창녀놀이와 자위행위는 남성중심사회의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반발과 저항의 극단적 상징이라 하겠다. 

 

여자는 침몰하는 배의 마스트에 꽂힌, 구조를 청하는 낡은 헝겊 쪼가리처럼 밤새 헛되고 헛되이 펄럭일 것이다. 나는 내리누르는 수압으로 자신이 산산이 해체되어가는 절박감에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내쉬며 문득 사내의 성냥불빛에서처럼 입을 길게 벌리고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저녁의 게임> 중에서-

 

가부장적 권위로부터 도출되는 폭력은 자신을 해체하면서까지 저항해야할만큼 절박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가출한 오빠의 소식을 기다리며 매일 편지함을 확인하는 행위도 소설의 전체 맥락과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문제를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 등은 늘 논란을 동반하곤 한다. 현실에 대한 지나친 과장이라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 또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판단 이전에 가족이라는 유대적 관계 속에서의 남성과 여성을 되돌아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과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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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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