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1590년에서 1596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

그리스 신화에 에로스(로마 신화의 큐피드) 는 종종 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늘 어깨에 활과 화살을 메고 다닌다. 에로스의 화살은 납과 황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 화살들은 특별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납화살을 맞으면 처음 본 상대를 끔찍하리만큼 싫어하게 되고 황금화살을 맞으면 반대로 사랑의 열병에 걸리게 된다. 장난기가 심한 것으로 알려진 에로스이기에 이 화살에 얽힌 많은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폴론과 다프네는 에로스가 쏜 화살의 가장 큰 피해자로 알려져 있다. 에로스가 각기 다른 화살을 아폴론과 다프네에게 명중시킨 것이다. 결국 이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한편 에로스는 화살통에 화살 말고도 쓴물과 단물을 넣어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납화살과 황금화살처럼 쓴물과 단물은 있는 것을 없게 하기도 하고 없는 것을 있게 하기도 한다. 에로스와 프쉬케 사이에 벌어졌던 스캔들도 이 쓴물과 단물 때문이었다.

진실한 사랑에 관한 환상적인 이야기로 유명한 세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밤의 꿈>은 바로 에로스가 가지고 다녔다는 납화살과 황금화살, 쓴물과 단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에로스의 화살이 작은 꽃 위에 떨어졌는데 우유처럼 하얗던 그 꽃이 사랑의 상처로 자주색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 꽃을 '사랑에 취한 야생 비올라'라고 불렀는데 이 꽃의 꽃즙을 잠자는 남자나 여자의 눈꺼풀에 떨어뜨리면 잠을 깨는 순간 눈에 띄는 최초의 창조물을 미친듯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의 동화같은 사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뒤바뀐 사랑의 삼각관계

결혼은 진실한 사랑의 결정체다. 그러나 결혼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때로는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고 또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지나친 애정표현이 상대를 부담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반면 도를 넘은 자기절제는 상대에게 애정결핍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면부지의 두 인격체는 사랑이라는 끈으로 비로소 하나가 된다.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은 이런 사랑의 과정을 환상적이고 동화같은 이야기로 풀어낸다.

허미아는 라이샌더라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이지어스는 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디미트리어스에게 강제로 결혼시키려고 한다. 한편 디미트리어스는 허미아를 사랑하지만 헬레나라는 그를 짝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결국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아테네 근교의 숲으로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된다. 그렇다고 디미트리어스가 허미아를 포기할 리 없다. 디미트리어스도 이들을 따라 숲으로 따라가고 디미트리어스를 짝사랑하는 헬레나도 그들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들은 이 숲 속에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이 숲 속에 살고 있는 요정들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매우 장난스럽고 난잡스런 것처럼 이 숲속에 사는 요정들도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갖추고 있다. 이 숲을 지배하고 있는 왕 오베론은 아내인 타이테니아와 부부싸움을 하고 있다. 오베론은 로빈 굿펠로라고도 불리는 요정인 퍽에게 명령해 아내 자고 있는 타이테니아의 눈에 꽃즙을 떨어뜨려 잠에서 깨면 처음 보이는 창조물에게 사랑에 빠지도록 하는 심술을 부린다. 그런데 퍽이 실수로 라이샌더와 디미트리어스의 눈에 꽃즙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하게 된다. 이때부터 뒤바뀐 삼각관계가 만들어진다. 둘이 깨어난 처음 본 창조물이 바로 헬레나였던 것이다. 쫓고 쫓기는 삼각관계는 결국 퍽의 꽃즙으로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오면서 이들은 마치 꿈을 꾼듯한 착각을 하고는 라이샌더는 허미아와 드미트리어스는 헬레나와 결혼을 함으로써 연극은 막을 내린다. 

여기서 한여름 밤이란 낮이 가장 긴 하지 무렵의 성 요한제(6월24일)의 전야라고 한다. 영국 사람들에게는 이날 밤에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와 성 요한제 전야의 미신을 결합시켜 환상적이고 동화같은 러브 스토리를 창작해낸 것이다. 일반적인 몽자류 소설들이 꿈을 통해 인생무상과 허무주의를 표현한 것과는 달리 꿈을 통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각성시키고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을 도출해 낸 것은 이 희극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멘델스존 결혼 행진곡의 모티브가 되다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은 한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어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음악이라는 장르를 통해 한 편의 러브 스토리를 은연중에 경함하게 하고 있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년)은 이 이야기에 감흥을 받아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동명의 실내음악을 작곡했다.

결혼식에 자주 가본 독자라면 결혼식 때 연주되는 음악의 앞과 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신부가 입장할 때 연주되는 음악과 신부와 신랑이 손을 맞잡고 퇴장할 때 음악은 비슷한 듯 하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두 곡 모두 제목은 <결혼 행진곡>이다. 신부가 입장할 때 연주되는 <결혼 행진곡>은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년)의 것이고 신랑 신부가 퇴장할 때 연주되는 음악이 바로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제5막에 수록된 <결혼 행진곡>이다. 허미아와 라이샌더, 헬레나와 디미트리어스가 우여곡절을 겪고 끝내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에 골인하는 것처럼 경쾌하고 밝은 선율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사랑과 결혼이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의미가 복잡해진 문명에 밀려 퇴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혼 적령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결혼하지 않는 일인 가정이 급작스레 늘고 있다.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국가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의 성공과 실패는 단순히 국가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점은 새삼 고민해 볼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년)의 결혼에 관한 아름다운 시 한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에 구속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에 일렁이는 바다를 두라.
서로의 잔을 넘치게 하되 한쪽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가 자기의 빵을 주되 한쪽 것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되 그대들 각자가 따로 있게 하라.
비록 같은 음악을 울릴지라도 기타 줄이 따로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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