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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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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크메트는 이집트 여신들 중 가장 포악했다 이집트 신화에서 세크메트Sekhmet는 태양, 전쟁, 파괴, 전염병, 치료의 신이었다. 그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신 중 하나로 멤파이트Memphite(멤피스 문화의 중심)의 일원이었다. 세크메트는 남편이자 창조와 지혜의 신인 프타Ptah, 아들이자 일출의 신인 네페르툼Nefertum과 함께 삼주신을 형성했다. 세크메트는 태양신 라Ra의 딸로 라의 눈[目]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 태어났다. 세크메트는 때로 하늘의 신 누트Nut와 대지의 신 게브Geb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 세크메트의 이름은 사크헤트Sakhet, 세크메트Sekmet, 사크메트Sachmet, 사크메트Sakhmet, 세크헤트Sekhet, 사크미스Sacmis 등으로도 표기되는데 고대 그리스어로 ‘강력한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크메트는 종..
세느강을 지키는 여신, 세쿠아나 ▲강의 여신이자 치유의 여신인 세쿠아나. 출처>구글 검색 세느(Seine, 센강)의 여신 세쿠아나(Sequana)의 주제는 소망과 젊음, 행운, 건강 그리고 치유이다. 세쿠아나 여신의 상징은 오리 배이다. 켈트 신화에서 강의 여신 세쿠아나는 4월의 소나기와 함께 흘러 들어가 모든 이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세쿠아나는 오리 모양의 배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인간들의 기도를 받을 준비를 한다. 로마 제국 지배하의 갈리아 종교에서 세쿠아나는 센강의 여신이었다. 특히 센강 발원지와 갈리아 부족의 여신이었다. 세쿠아나는 ‘빠르게 흐르는 것’을 의미하며 세쿠안나(Sequanna), 시쿠아나(Sequanna) 등으로도 불린다. 폰테스 세쿠아나라고 불리는 이 샘은 센강 발원지 근처인 디종의 샤티옹 계곡에 있..
우리와 이웃을 위한 사회적 치유의 메시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정혜신·진은영 지음/창비 펴냄 416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를 집단적인 충격과 슬픔, 분노와 무력감에 빠뜨리며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과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비단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등, 한국사회는 숱한 사회적 고통에 대한 대책 없이 새로운 피해자들만을 속속 양산하는 중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 상처들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안산에 치유공간 ‘이웃’을 마련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치유하고 있는 '거리의 의사' 정혜신과 문학을 통한 사회적 실천에 앞장서온 ‘행동하는 시인’ 진은영이 함께 만나 고민을 나눈다. 두 사람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 새겨진 상처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살피며, 재난..
현대인은 왜 탈출을 꿈꾸는가 산/이효석(1907~1942)/1936년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산업화는 섬유나 의류봉제공업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본격화되었다. 경공업이 발전하기 위한 핵심은 충분한 인력 공급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농촌은 산업화 시대 도시에 생긴 국가공단의 주요 인력 공급처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도시로 떠났다. 도시 변두리가 농촌에서 올라온 젊은이들로 넘쳐나는만큼 농촌은 노인들과 빈집들만이 늘어났다. 산업화라는 명목으로 농촌은 국가정책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더 이상 농촌 마을에 내걸린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깃발이 아니었다. 농촌경제는 그야말로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전통은 구시대 악습 취급을 받았다. 더..
희망은 절망의 생채기에 돋아나는 새살이다 노랑무늬영원/한 강/2003년 한 대학생이 조지아주 브룬스윅행 버스에서 수년간의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아내가 있는 자신의 옛집으로 가던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아내가 자신을 받아줄지 고민하던 중 교도소에서 아내에게 미리 출소 날짜를 알려주고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준다면 집 앞의 참나무에 노란색 손수건을 걸어달라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아내가 자신을 받아주길 간절히 원했지만 선택은 아내의 몫이었다. 버스가 자신의 옛집에 가까워오자 그 남자는 가슴이 떨려 볼 수 없었던지 그 대학생에게 참나무에 손수건이 걸려있는지 봐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승객들도 가슴을 조이며 차창 너머로 마을 입구를 바라보았는데, 그 남자가 말했던 참나무에는 노란색 손수건이 한가득 매어져 있었다고 한다. ..
아내의 상처를 치유한 남편의 결정적 한가지 병신 손가락/함정임/1995년 어릴 적 살았던 시골집 흙벽에는 한 눈에 봐도 대여섯 살 아이의 작품으로 보이는 그림이며 낙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위에 흙만 한 번 바르면 될걸 어찌된 일인지 사는 내내 지워지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빛만 바래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흙벽 낙서의 주인공은 내가 두 살 때 죽은 네살 터울의 형의 작품이었다. 아이들이 죽으면 동네 어른들이 나서서 부모가 모르는 곳에 돌무덤을 만들어 매장하는 풍습 때문이었던지 어머니는 그 낙서를 통해 죽은 형을 기억하려 했고 또 그 낙서 때문에 자식 잃은 슬픔이 불현듯 떠오르곤 했던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슴 깊숙한 곳에 상처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타인의 시선으로야 상처의 패인 자국이 크든 작든 당사자에게는 하루..
전쟁이 남긴 가족의 상처 그리고 치유 송기원의 /1977년 전세계에서 한국처럼 전쟁의 잔혹성과 후유증이 국민들 개개인의 사생활 깊은 곳까지 침투해 있는 곳은 드물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열강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토는 허리를 잘리게 되었고 단일민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가족의 이별, 그리고 전쟁. 형제끼리 총칼을 겨눠야만 했던 야만성과 고착화된 분단상황에 냉전적 이데올로기가 더해지면서 지금까지도 전쟁과 이념대립의 트라우마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화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데탕트 분위기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사회. 바로 한국사회의 현주소다. 벌써 분단 1세대들은 세월의 무게에 쓰러져가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남과 북의 위정자들은 그들의 이해타산에 따라 날선 대립각만을 고집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