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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1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없는 우리에겐 경작할 뜰이 없다 (20)

절대군주정치(앙시앙레짐)을 무너뜨린 볼떼르의 대표적인 철학소설

깡디드·볼떼르 지음·1759년 펴냄

높으신 분(?)들의 특채 채용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자격미달의 장관 딸이 외교부에 특채 채용되더니, 농협 별정직 채용 합격자의 50% 이상이 농협 지점장급 이상 자녀들이라고 한다. 게다가 국회의원들까지 자신의 자녀를 포함한 친인척들을 비서관으로 채용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잇따르고 있다. '돈없고 빽없으면' 출세하기 힘들다는 저잣거리의 말들이 헛소문만은 아니었나보다. 희망을 품고 시작해야 할 우리 청년들의 첫 사회진출이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로 결정되는 세상이 진정한 '공정한 사회'의 모습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볼떼르의 [깡디드]는 이처럼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다. 볼떼르는 '지금 우린 우리의 뜰을 경작해야 합니다'라는 결말을 제시하면서 인간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호소해 이상적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볼떼르가 얘기한 대로 우리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18세기 인물인 볼떼르는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현실은 최선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낙천주의에 대한 각성으로 계몽주의 철학을 확립시킨 인물이다. 1759년작 [깡디드]는 그의 철학을 모든 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쓴 철학소설이다. 그러나 21세기인 지금 지금 우리는 18세기의 낙천주의니 계몽주의니 하는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깡디드]를 책장 한 구석에 먼지만 먹고 살도록 방치해 둔다는 것은 고전을 읽는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 것이다. 21세기에 맞게 재구성하고 재해석 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깡디드, 고난의 여행을 떠나다

볼떼르는 자신의 철학을 확립하는 방법으로 '순진한 청년'을 깡디드를 고난의 여정길로 내몬다. 깡디드의 여행은 출발부터 뿌리깊은 사회적 병폐의 희생양이었다. 그는 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툰더 텐 트롱크성의 공주 뀌네공드를 사랑한 죄로 성에서 쫓겨난 것이다. 깡디드는 '모든 것이 보다 좋게 되어간다'는 스승 빵그로스의 가르침을 굳게 믿고 있는 '순진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성에서 쫓겨난 깡디드가 발을 내딛는 곳 어디에도 스승에게 배웠던 그런 사회는 없었다. 그는 친절을 가장한 사기꾼들의 꾀임에 빠져 불가리아 군대에 입대하기도 했고, 황금향 엘도라도에서 얻은 황금을 도둑맞기도 했으며 성직자의 위선적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깡디드는 세상은 '최선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빵그로스의 가르침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심지어 빵그로스는 뀌네공드의 시녀 빠께뜨와의 부적절한 관계의 결과물인 매독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의 철학을 결코 놓는 법이 없었다.

"만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의 섬에서 대를 잇기 위한 행위에 해를 끼치고, 종종 대잇기를 막기도 하며, 명백히 자연의 위대한 목표이기도 한 이 병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여기에서 편안히 초콜릿이나 양홍을 먹을 수 없을 것이네" -[깡디드] 중에서 -

"우린 우리의 뜰을 경작해야 합니다."

끝까지 지키려 했던 깡디드의 믿음은 스승의 사형을 목격하면서 조금씩 회의적 시각으로 변하게 된다. 종교재판소 간수장은 빵그로스 교수가 인간의 원죄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잡아가 사형시키고 만 것이다. 게다가 여행중 만난 또 한 명의 스승 마르땡은 빵그로스의 가르침에 혼란스러워하던 깡디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말았다. 마르땡은 '세상은 인간을 못살게 굴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신념을 가진 지독한 염세주의자였다.

깡디드가 부조리와 불합리로 가득찬 세상, 그러나 낙천주의만 창궐하고 있는 세상의 모순을 깨닫게 된 계기는 우여곡절 끝에 뀌네공드와 결혼해서 콘스탄티노플 교외에서 따분한 삶을 살아가던 중 만난 한 노인의 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나는 단지 내가 경작한 뜰에서 수확한 과일을팔려고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데에 만족할 뿐입니다." - [깡디드] 중에서 -

그러나 여전히 빵그로스 교수는 그동안 깡디드가 겪었던 고난의 시간들을 '최선의 세계'로 가는 과정이이라는 기존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빵그로스 교수의 말을 들은 깡디드는 마지막 한 마디로 그의 변화된 신념을 아니 볼떼르의 계몽주의 철학을 설파하게 된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지금 우린 우리의 뜰을 경작해야 합니다." - [깡디드] 중에서 -

지나친 염세주의는 삶을 무료하게 만들지만 지나친 낙천주의는 인간을 타성에 젖게 만든다. 볼떼르가 낙천주의를 부정했다고 해서 염세주의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뿌리깊은 병폐로 가득찬 세상을 헤쳐나갈 방법으로 묵묵히 자신의 의지대로 뜰을 경작해 나가듯이 세상을 개척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250년전 볼떼르가 21세기 대한민국을 방문한다면 경작할 뜰마저 잃어 버린 현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나도 마르땡처럼 지나친 염세주의에 빠진 것일까?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없는 우리에겐 경작할 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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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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