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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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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소인국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늘 바다를 항해하고 싶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의학도 걸리버(Gulliver)는 우연한 기회에 3년 반동안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항해에서 돌아온 후에는 런던에 병원도 차리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바다 여행에 대한 걸리버의 욕망은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결국 배의 의사가 되어 바다와 집을 오가던 어느 날 항해 도중 배가 풍랑을 만나 산산조각 났지만 걸리버는 운 좋게도 어느 섬까지 헤엄쳐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리고는 쓰러져 잠이 든다. 잠에서 깨어난 걸리버는 그야말로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은 밧줄로 꽁꽁 묶여있었고 그의 몸 위에는 벌레 같은 인간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벌레 같은 인간들에게는 밧줄이라지만 걸리버에게는 바늘에 꿰는 실에 불과했다. 팔에 힘을 주자 ..
'가만히 있으라'던 세월호, '가만히 있으라'는 정부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자유란 닭장 속의 여우가 제멋대로 누리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1948년 세계 인권 선언이 구체적으로 실천방안까지 명시한 이 권리는 보편적인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어느 누구라도 이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가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세월호 발언 논란 박승춘, 망언의 정점을 찍다 정부, 여당 인사들의 세월호 참사로 추락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걱적이 도를 넘고 있다. 박승춘 보훈처장이 세월호 참사를 미국 9·11테러와 비교하며 우리 국민성을 비판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탐사보도전문매체 뉴스타파에 따르면 박승춘 보훈처장은 지난 2일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가 아주 곤욕을 치르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무슨 큰 사건만 나면 우선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성격 자체가 다른 세월호 참사와 9·11테러를 비교하며 우리나라 국민성을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사진>경향신문 박 처장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어려울 때면 미국은 단결하지만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정부와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이 관례가 돼 ..
못난 남자 손광목이 이해되는 이유 안개 너머 청진항 2/유시춘/1992년 지난 달 26일은 천안함이 침몰된 지 4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추모제가 열려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기렸지만 추모하고 싶어도 추모식에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추모식 참석을 거부당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통합진보당이 그랬다. 통합진보당은 천안함 침몰 이후 처음으로 '천안함 용사 추모식'에 참석하려 했지만 유족들의 반발로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비단 통합진보당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추모식에 참석했던 다른 야당 의원들도 유족과 여당, 보수 언론의 곱지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고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명확한(?)은 해명을 강요당했다. 왜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누구는 추모를 거부해야 하고 또 누구는 추모를 거부당..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의 기억이 불안한 이유 김성동(1947년~)/민들레꽃반지/2012년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낭월리 뼈잿골. 현재는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 이곳 골령골(뼈잿골)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합동 위령제가 열린다. 한국전쟁 당시 집단학살된 민간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다. 가족이 어디에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성묘조차 할 수 없었던 유가족들은 2000년이 돼서야 그 비극의 장소가 골령골이라는 것을 알았고, 2011년에 비로소 국가인정 하에 합동 위령제를 열고 있다. 도대체 한국전쟁 당시 산내 골령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들은 가족의 죽음을 쉬쉬하고 변변한 제사조차 지내지 못했을까. 1992년 한 시사 월간지를 통해 최초로 세상에 알려진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후 남한지역에서 단일지역으로는 최대 학살지로 꼽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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