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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16 식민 지배의 흔적이 남아있는 풀꽃 이름들 (4)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윤옥 지음/인물과사상사 펴냄

 

우리 겨레는 오래전부터 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용해왔다. 당연히 오랫동안 불러온 우리 고유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일환으로 우리 산야의 식물들이 채집하고 이름 붙이면서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식물의 호적이라 할 수 있는 학명에는 일본 학자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큰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갈고리, 좀개갓냉이 같은 저속한 이름은 일본 이름을 번역한 것이다. 심지어 번역조차 엉터리인 것이 많다. 광복 70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우리 풀꽃 이름은 아직도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및 관련 기관은 이 문제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예전부터 써오던 이름은 바꾸면 안 된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광복 100주년이 되어도 우리 풀꽃은 일본 말에 오염된 지저분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보고 우리의 풀꽃에 우리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이다.

우리 풀꽃은 어떻게 창씨개명되었나?

우리 풀꽃 중에는 큰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갈고리, 좀개갓냉이처럼 쉽게 그 풀꽃의 이름이 연상되지도 않을뿐더러 저속하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름이 많다. 이 이름들은 일본 말을 무책임하게 번역한 결과이다. 큰개불알꽃은 오이누노후구리(大犬の陰囊)라는 일본 이름을 번역한 것이다. 이 이름을 붙인 것은 일본의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다. 마키노는 큰개불알꽃의 열매가 개의 음낭(이누노후구리, 犬陰囊)을 닮았다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 중요한 것은 큰개불알꽃 열매에서 개의 음낭을 본 것 자체가 일본인의 시각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이 이 꽃에 이름을 붙였다면 전혀 다른 이름을 붙였을지도 모른다.

며느리밑씻개는 마마코노시리누구이(繼子の尻拭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마마코노시리누구이는 ‘의붓자식의 밑씻개’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의붓자식’이 ‘며느리’로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의붓자식이 밉지만 한국에서는 며느리가 미운 것일까? 어쨌든 가시가 촘촘히 난 풀로 밑을 닦는다는 발상 자체가 불쾌하다. 일본 말에서 유래해 식물도감에 버젓이 올라 있는 며느리밑씻개는 이 땅의 며느리들을 욕보이는 이름이다.

 

 


그런가 하면 번역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엉터리 이름도 수두룩하다.

개망초의 일본 이름은 히메조온(姬女?)이다. 일본어 ‘히메(姬)’는 어리고 가냘프며 귀여운 것을 뜻하므로 애기망초나 각시망초로 옮기는 것이 적당했을 것이다. 실제로 ‘히메’가 붙은 이름은 대부분 ‘각시’나 ‘애기’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개망초 등 일부 식물은 ‘히메’를 ‘개’로 번역해놓았다.


등대풀이라는 식물이 있다. ‘등대’ 풀이기 때문에 바닷가에 높게 선 등대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식물을 바닥에 낮게 붙어서 피기 때문에, 등대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등대풀의 유래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아니라 일본의 『어원유래사전』에 나와 있다. “등대풀의 등대는 옛날 집안의 조명 기구인 등명대를 말한다”는 것이다. 등대풀이라는 한글 이름이 처음 보이는 문헌은 『조선식물향명집』으로 ‘등대풀(Dungdaepul)’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일본 말의 등대가 등잔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고 번역한 것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부르고 있는 것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이름마저 없앤, 자존심을 버린 이름들이다.

일본인들은 한반도의 식물을 채집, 조사하면서 그 가운데 상당수에 ‘조선’이나 ‘고려’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현재 조선이나 고려가 붙은 들꽃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식물 이름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조선이나 고려 등을 빼고 옮겼기 때문이다. 봄을 대표하는 꽃인 개나리의 일본 이름은 조센렌교(チョウセンレンギョ)다. 일본 말로 조선(朝鮮)을 뜻하는 조센(チョウセン)이 붙어 있으나, 번역자들은 ‘조선’ 대신 ‘개’를 붙여 개나리라고 이름 지었다. 개나리 외에도 개암나무, 개벚나무, 개비자나무 등이 ‘조선’이 ‘개’로 번역된 경우다. 저자는 최초로 식물의 한글 이름이 기록된 『조선식물향명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조사해 2,079종의 식물 중 99종에 달하는 식물 이름에서 ‘조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식민 지배의 흔적이 남아 있는 풀꽃 이름

금강초롱은 금강산 등 산지에서 자라는 꽃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특산종이다. 하지만 금강초롱은 예전엔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의 이름을 붙인 화방초(花房草)라고 불렸다. 하나부사는 초대 일본 공사로, 일제의 조선 강점 발판을 마련했던 인물 중 하나다. 하나부사에 대한 기록은 『고종실록』에도 남아 있다. 하나부사는 한반도 자연을 착취하기 위해 각종 자원을 조사했으며, 그 과정에서 나카이 다케노신을 비롯한 일본 식물학자들을 지원했다. 금강초롱은 이제는 더 이상 화방초라 불리지 않지만 학명(Hanabusaya asiatica Nakai)에는 여전히 하나부사의 이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조선화관, 또는 평양지모라 불리는 사내초(寺內草)는 악명 높은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게 바쳐진 이름이다. 데라우치에 관한 기록은 『한민족독립운동사』에서도 볼 수 있다. 데라우치는 헌병 주체 경찰을 편성해 한일병탄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완용에게 병탄 안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런 “데라우치 각하의 공을 길이 보존코자” 붙인 이름이 바로 사내초다. 사내초는 현재 조선화관이나 평양지모로 불리고 있지만, 학명은 여전히 데라우치 총독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식물의 호적이라 할 수 있는 학명에 남은 일제 잔재도 심각하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만든『한반도 고유종 총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고유 식물은 모두 33목 78과 527종이다. 이 가운데 일본 학자 이름으로 학명이 등록된 식물은 모두 327종으로 무려 62퍼센트에 달한다. 이제 와서 학명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우리 풀꽃의 호적이 일본인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아두어야 한다.

아름다운 우리 이름을 돌려주자

일제의 식민 침략은 단순한 영토 침략을 넘어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우리 고유의 이름마저도 창씨개명으로 없애버렸다. 그런 와중에 우리 땅에 나고 자라던 수많은 풀·꽃·나무도 제 이름을 잃고 일본 이름으로 굳어졌다. 잘못된 번역도 많지만 번역을 바로 잡는 것보다 좋은 것은 일본인이 붙인 이름을 고집하지 말고 우리 정서에 맞는 이름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풀꽃 이름뿐 아니라 풀꽃을 설명하는 국어사전이나 식물도감의 설명도 바뀌어야 한다.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해온 식물들에 관한 풀이가 어른도 이해하기 힘든 말로 경직되어 있는 것은 청산되지 못한 일본 말 찌꺼기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광복 7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 풀꽃 이름에 붙은 일본 말 찌꺼기는 지금껏 대대적인 수술 한 번 없이 여기까지 왔다. 내로라하는 식물학자 가운데는 예전에 부르던 이름을 조금도 바꾸면 안 된다는 사람이 있으니 개탄스럽다.

저자는 국립국어원, 산림청, 국립생물자원관 같은 기관이 유기적으로 대처해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풀꽃 이름을 대대적으로 정리할 것을 촉구한다. 식물 이름을 모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일제의 흔적이 강하게 남은 것들에 대해서는 유래라도 밝혀주는 것이 광복 70주년을 맞는 바른 자세일 것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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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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