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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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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보다 더 짜증나는 것 윤흥길의 소설 는 이렇게 시작된다. ‘밭에서 완두를 거둬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그렇다. 소설 속 표현처럼 장마는 늘 음침하고 스산하다. 하지만 올 장마는 비도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고 평년보다 늦게까지 장마가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어야 할 소나기가 오히려 습도만 높여 불쾌지수가 상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어젯밤 일할 때도 그랬다. 낮 동안 덮혀진 땅을 채 식히기도 전에 한바탕 쏟아지고 만 소나기 때문에 땅에서는 연기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몸뚱이는..
장마와 나 회칠된 벽 안에는 그 흔하디 흔한 에어컨 한 대 없다. 땀은 흐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줄 샌다. 더위를 이기는 갖가지 묘안을 생각해 내지만 사실은 뾰족한 수가 없다. 책이라도 읽어볼까? 말이 좋아 독서삼매경이지 당장 불이라도 붙일 태세로 달려드는 태양에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습한 기운은 그나마 남아있는 삶의 열정마저 깊은 무기력의 수렁 속으로 한없이 침전시킨다. 어제 읽었던 자리에 꽂혀있는 책갈피는 오늘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내일도 어쩌면 당분간 쪽과 쪽 사이에서 곰팡이가 슬지도 모른다. 그래도 와야 할 책이 오지 않는 오늘,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애써 참아낸다. 아, 짜증의 원인이 그뿐이었던가! 그렇다. 나는 장마 한복판에 서 있다. 장마는 늘 음침하고 음울하다. 내 느낌만은 아니지싶다. 옛 사람들이 ..
1953년 부산과 2011년 대한민국의 끝의 끝 닮은꼴 손창섭의 /1953년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찌하여 그들은 출찰구를 빠져나오자 마자 그렇게 쓱쓱 찾아갈 곳이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그들은 한 순간에 동지에서 벗어나 그렇게 용감하게 자유를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이 부산의 끝의 끝, 막다른 끝이란 것을 모른단 말인가. 이 끝의 끝, 막다른 끝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옮기면 바다에 빠지거나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그렇지도 않다면 정녕 이 끝의 끝, 막다른 끝까지 온 사람은 중구 자신 뿐이란 말인가. 김동리는 그의 소설 (1955년)에서 한국전쟁 당시 최후의 피난처 부산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끝의 끝. 김동리는 전쟁의 상흔이 남긴 극한의 절망적 상황을 '끝의 끝'이라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단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