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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11 금연10일째, 몸이 먼저 느끼는 작은 변화들 (33)
경험이란 인간의 위대한 유산임에 틀림없다. 경험이 축적된 삶의 법칙들은 과학으로는 도통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니 과학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관찰과 통계의 미학은 실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옛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결심하고 그 성패가 또는 절체절명의 갈림길이 3일째 되는 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면 우리는 무의식 중에 옛 사람들이 정의해 놓은 경험의 법칙들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20년 흡연 인생에 최소 10년 이상은 해마다 반복했을 금연 '작심삼일'은 그렇게 넘기 힘든 벽처럼 견고해 보였다. 

올해는 꼭 했던게 삼일을 넘기지 못했고 그래도 작심삼일은 해야지 했던게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어느덧 작심삼일의 공포는 금연 시도마저 창피하게 만들고 말았다. 담배를 끊기 위해 실제로 허리를 싹뚝 끊어 버렸던 담배가 몇 천개비일 거며, 그 담배를 다시 이으려는 추하디 추한 내 모습에 치를 떨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20살 시절 임어당 이 양반의 말을 젊은 객기로 곡해하고 말았던 어리석음을 바로잡기가 이리 어려울 줄 알았다면 <생활의 발견>은 이미 버렸어야 했을텐데 여전히 빛바랜 책들 사이에서 유난히 변치 않는 색을 뽐내며 나를 부라리고 있다.

담배는 몸에는 안 좋으나 생활에는 좋다나 어쩐다나……추억을 더 더듬어 보니 주윤발의 폼나는 담배피는 장면은 반항기 가득했던 시절 영화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늘이 벌써 10일째다. 금연10일째다. 작심삼일의 올가미를 헤어나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하도 대견스러워 거울에 비친 내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어쩌면 나에게도 이런 멋진 모습이 있었는데 그동안 지레짐작으로 겁부터 먹고 나를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직장동료들끼리 어느날 다음 달부터 금연합시다! 했던게 그다지 굳은 맹세도 아니었건만 담배없는 날이 하루 이틀 늘어가고 있다. 서로에게 말은 안했지만 금연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던 것일까. 그랬을 것이다.

아직은 담배의 흔적들을 지워버리기가 쉽지 않다. 직장에서도 쉬는 시간에 담배가 없으니 동료들끼리 살가운 대화가 없다. 없다기보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이 안된 탓이다. 커피가 있고 담배가 있어야 형성된다고 믿었던 '○○의 장'들이 중요한 그것이 사라진 지금에는 여간 어색하지가 않다. 서로 정신나간 사람마냥 얼굴만 쳐다보며 웃고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구장창 일만 할 수도 없고……아직은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들의 휴식시간이나 여가시간이 미스테리한 문제로 남아있다. 

뿐인가!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담배 흔적들....적어도 1년 이상은 씻고씻어야 비로소 없어질 것 같은-누렇게 바랜 벽지하며, 아무리 깊숙이 숨겨놔도 몇번을 빨아도 없어지지 않을 것같은 담배냄새 찌든 옷들, 한두번의 환기로는 어림도 없는 깨재재한 방안 공기들-무심코 입술로 향하는 중지와 검지에서는 20년 묵은 냄새가 여전히 코를 자극한다.

금연10일째, 아직은 어색하고 두려운 환경들이지만 내 몸에서는 작은 변화들이 조금씩 감지되는 것같은 희소식도 있다. 자도 자는 것같지 않았던 그저 피곤해서 그려려니 했던 자고 일어나서의 찌뿌등함. 며칠째부턴가 기지개 켜는 게 시나브로 상쾌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커피와 담배의 악순환 탓이었을까. 쉬 잠들지 못했던 만성 불면증.....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긴 하지만 전보다 한결 깊어진 숙면의 시간. 믿거나 말거나, 집중력도 전보다 나아진듯 하다. 금연10일의 총평을 내리자면 한결 가벼워진 내 몸(?)

지난 20년 동안 살을 녹이고 뼛 속까지 파고들어 나를 지배했던 담배의 흔적들이 불과 10일만에 얼마나 지워버릴 수 있겠냐마는 소소하게 불어오는 내 몸의 변화들은 성공적인 금연을 위한 희미한 촛불임에는 틀림없다. 그게 비과학적이고 비의학적이며 심지어 나만의 착각일지라도…… 캐나다 정부가 내년부터 담배갑 경고문구로 추진중이라는 폐암에 걸린 여성의 사진이 비로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제부터 걱정이다. 담배를 끊고나면 다들 금단현상이 온다는데, 아직까지는 별다른 어려움없이 10일을 버텨왔는데 그 고비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앞으로 펼쳐질 담배없는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도전의 나날이 될 것 같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라는 진부한 이 말을 촌스럽게도 연신 되뇌고 또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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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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