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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6 딩씨 마을엔 사람이 없었다 (6)

상부에서는 인간의 말초적인 욕망을 자극해 적극적인 매혈 운동을 전개한다.

"아시겠습니까?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물처럼, 피 역시 아무리 팔아도 없어지지 않아요. 피도 이 샘물과 같단 말입니다. 이게 과학이에요.
가난뱅이로 살지 부자로 살지는 여러분 스스로 결정할 일입니다. 소강으로 가는 황금빛 대로를 달릴 것인지, 아니면 알거지가 되는 외나무다리를 달릴 것인지 여러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딩씨 마을은 현 전체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입니다. 정말 형편없이 가난하지요. 부자가 될지 계속 가난뱅이로 남을지 집에 돌아가 잘들 생각해 보세요."- [딩씨 마을의 꿈] 중에서-

매혈 운동에 동참한 주민들의 피를 판 이유는 단순하다.

"샴푸를 한 병 꼭 사고 싶었어요. 우리 마을에 어떤 여자애가 샴푸로 머리를 감았는데 머리카락이 아주 매끄럽더라고요. 마치 흐르는 물결 같았아요…." -[딩씨 마을의 꿈] 중에서-

그렇게 매혈 운동은 마치 폭풍이 몰아치듯 딩씨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주동자들의 감언이설과 달리 매혈 운동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열병(AIDS)이라는 공포만이 남았을 뿐이다. 사실은 딩씨 마을에 열병이라는 공포만이 남은 건 아니었다. 타인의 피를 팔아 부를 축적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들에게 열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저 돈되는 상품일뿐이었다.

"죽은 사람은 죽은 닭이나 죽은 개와 마찬가지였다. 발에 밟혀 죽은 개미와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소리 내 울지도 않았고 흰 종이로 대련(對聯)을 써 붙이지도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그날을 넘기지 않고 내다 파묻었다. 관은 일찌감치 마련돼 있었다. 무덤 역시 사람들이 죽기 전에 다 파놓았다."-[딩씨 마을의 꿈] 중에서-

 

옌렌커의 장편소설 [딩씨 마을의 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자본주의의 거센 물결에 휩싸인 오늘날 중국 사회가 겪고 있는 인간성 파괴의 현장을 꿈과 현실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물질문명이 결국에는 인간을 문명의 주변인으로 물질의 부속품 정도로 전락시키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창작의 붕괴'라 이름붙여진 작가의 말에서 옌렌커가 [딩씨 마을의 꿈]을 통해 중국사회와 전세계인에게 호소하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두 줄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늑골을 뽑아가기라도 한 듯이 온몸이 흐느적거렸다. 고독과 절망의 강력한 압박에 무력감이 느껴졌다.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드넓은 대해에, 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 외딴 섬에 홀로 버려진 것 같았다."-작가의 말 <창작의 붕괴> 중에서-

돈의 위력을 실감한 사람들에게 공동체로의 복귀(사회주의)는 과거로의 회귀일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열병 환자들의 학교에서의 공동체 생활은 맞지 않는 옷에 불과했다.

"모두들 땅바닥에 쌓여 있는 벽돌과 돌덩이, 기왓장을 노려보면서 하나같이 큰 손해를 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고 엄청난 손해를 본 것도 아니고 단지 자기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챙기지 못했다는 데 대한 아쉬움이었다."- <딩씨마을의 꿈> 중에서 -

딩씨 마을에 없는 건 사람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도 우선돼야 할 가치로서의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자행한 피도 눈물도 없는 매혈의 대가로 마을 주민들에 의해 독이 든 과일을 먹고 학교 한귀퉁이에 묻힌 소년을 통해 보여진 딩씨 마을에는 사람이 없었다.

딩씨마을의꿈
카테고리 소설 > 중국소설 > 중국소설일반
지은이 옌롄커 (아시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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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1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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