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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21 뉴턴도 피해가지 못한 촌철살인의 풍자 (9)

걸리버 여행기/조나단 스위프트/1726년/박정미 옮김/청목 펴냄

 

그는 내가 야후의 힘과 민첩성을 지니지 못하고 손톱과 발톱을 잘 사용하지 못하며 그 나라의 야후처럼 빨리 나무에 기어오르거나 내려올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야후와 닮았기 때문에 인간의 기질에 있어서도 야후들과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주인은 야후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종족이 다른 동물보다 더 미워하는 것으로 서로의 모습이 보기 싫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말들의 나라에서 야후들이 다투는 이유가, 내가 설명한 영국 사람들의 행동과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다섯 마리 야후들에게 50마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음식을 던져 준다면, 그들은 서로 독차지 하겠다고 고집하면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들에서 야후에게 먹이를 줄 때 하인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암소가 죽었을 경우 야후들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떼지어 몰려와 싸운다. 우리가 쓰는 것과 같은 살인 무기가 없기 때문에 죽는 일은 없지만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 들판에는 여러 형태로 빛나는 돌이 있는데 야후들은 그 돌을 미친 듯이 좋아한다. 빛나는 돌이 땅 속에 묻힌 것을 발견하면, 그들은 여러 날 발톱으로 땅을 파서 꺼내 가지고 집에 무더기로 숨겨 놓는다. 그들의 동료들이 빛나는 돌을 훔쳐 갈까 봐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살핀다. 주인은 이런 돌들이 야후들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야후들이 빛나는 돌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인은 이제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시험삼아 야후가 숨겨 놓은 빛나는 돌을 옮겼는데 야후는 울부짖으며 다른 야후를 불러 그 장소로 데려갔다. 그 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일도 하지 않았다. 다시 빛나는 돌을 원래의 위치에 옮겨 놓자 다시 말을 잘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 제4부 '말들의 나라' 중에서-


 

흉칙하고 더러운 야후(yahoo)지만 그들은 최소한 살인은 하지 않았다. '호모'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진화 단계를 자화자찬하지만 인간이 진화의 단계에서 흉칙한 채로 멈춰버린 야후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 영국)의 인간 세상을 향한 촌철살인도 지나친 겸손의 표현인지도 모를 일이다. 전쟁과 살인으로 탐욕을 채웠던 인간은 어느 순간부턴가 '인권'을 부르짖으며 물리적 학대를 가급적 자제하지만 오히려 전쟁과 살인보다 더한 제도로 인간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라지지 않는 탐욕의 전쟁은 둘째 치고라도 말이다. 걸리버가 '말들의 나라'에서 본 휴이넘(Houyhnhnm)은 탐욕에 가득 찬 인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보통의 인간이었던 걸리버를 거인으로 만들어버린 '작은 사람들의 나라'인 릴리퍼트(Lilliput)에서 본 국가와 제도의 실체는 그저 우스꽝스럽게 여기저기 널린 소꿉놀이 속 인형들에 불과했을 것이다. 반면 인형처럼 목이 돌아가도록 쳐다본 거대한 인간들의 세상인 '큰 사람들의 나라'였던 브롭딩낵(Brobdingnag)에서는 그만 오만에 찬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관찰하고 만다.

 

여기까지였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걸리버의 신비한 여행은 릴리퍼트와 브롭딩낵으로 끝났을 것으로 아는 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린 시절 재미있는 동화로만 알았던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과 대인국 이야기만이 존재했으니까. 그리도 보여주기 싫었던 인간과 인간이 만든 국가, 제도, 관습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살짝 동화로 각색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조나단 스위프트가 걸리버를 내세워 인간 세상의 진짜 모습을 릴리퍼트와 브롭딩낵 여행만으로 보여주기에는 외치고 싶은 말들이 아직도 더 많이 남았었나보다. 걸리버가 여행했던 세상은 릴리퍼트와 브롭딩낵과 앞서 언급한 '말들의 나라' 말고도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가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인류 종말을 배경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천공의 섬 라퓨타'는 걸리버가 여행했던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 라퓨타(Laputa)를 차용한 것이다. 라퓨타는 지적 숨결이 가득한 곳이다. 아마도 인간이 이룩한 문명을 빗댄 것이리라. 그러나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이룩한 지적 성취를 다름아닌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데 사용하고 만다. 리퓨타의 식민지 중 하나인 린달리노(Lindalino) 사람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없어지지 않을 인류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당시 과학문명을 이끌었던 아이작 뉴턴의 지적 성취를 풍자한 대목이라고 한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20세기에 살았다면 아인슈타인이나 노벨도 촌철살인의 풍자에서 빗겨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릴 적 TV 앞에서 눈을 못 떼게 만들었던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의 배경이 아마도 인류종말의 날, 서기 2008년이었을 것이다. 걸리버가 여행한 '작은 사람들의 나라', '큰 사람들의 나라',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 '말들의 나라'에서 보았던 추악한 인간의 모습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2014년 오늘도 결국은 만화 속 '서기 2008년' 의 어느날 쯤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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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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