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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07 잔혹한 출근 (2)

찬바람 부는 계절이 오면 뭐가 그리도 급한지 해는 서둘러 서산을 넘는다. 여름이었다면 한창 마지막 열기를 내뿜고 있을 시간인데 말이다. 초봄인 양 따사로왔던 낮의 열기는 에레보스(그리스 신화, 카오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암흑의 신)의 방문과 동시에 급격히 시들해지기 시작한다. 때를 놓칠세라 동장군은 도둑처럼 찾아오고야 만다.

 

낮 동안 텅 비었던 아파트 주차장은 크고 작은 차들이 제자리를 찾기위해 분주하다. 아기새에게 먹일 먹이를 물고 둥지로 돌아온 새들이 누르는 초인종 소리가 아파트 복도를 가득 채운다. 뉘 집에서 새어나오는지 청국장 냄새가 스멀스멀 콧끝을 자극한다. 언젠가 본 적 있는 윗층의 젊은 부부와 아이들은 한나절만의 상봉이 그리도 즐거운지 쿵쾅쿵쾅 요란스럽다. 이 부부는 뉴스도 안보다보다. 층간소음이 살인까지 부른다는데. 하지만 한 번도 항의해 본 적은 없다. 실컷 뛰고 놀 시간도 장소도 없는 요즘 아이들인데 이 시간만이라도 왁자지껄 아파트를 한 번 흔들어 보겠다는데 괜시리 속좁은 어른이 되고싶진 않다. 그래도 이 부부가 단 한 번도 내려와 양해를 구하지 않은 것은 못내 서운하다. 결국 나도 속좁은 놈이구나! 층간소음을 방관하는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잔혹한 출근

 

이제 나는 집을 비워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대문을 열자마자 밥 짓는 냄새며, 만찬을 준비하는 향기가 잡탕이 되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대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복도식 아파트는 이래서 안좋다. 어쨌든 나의 잔혹한 출근은 이렇게 시작된다. 

 

 

퇴근하는 자동차들이 연신 쏟아내는 불빛들을 온몸으로 받아서 찡그린 눈을 하고 암흑에 암흑이 더해진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삼겹살집 테이블마다 술잔을 부딪치느라 분주하다.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벌써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거리를 느리게 걷는 사람도 있다. 어느 자상한 아빠는 겨울 바람에 식을세라 두툼한 봉투를 옷춤에 넣고 햄버거집을 나오자마자 뛰기 시작한다. 저녁 풍경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 어느덧 공단 길로 접어들었다.

 

불꺼진 공단은 그나마 오색찬란하게 춤을 추는 길 건너 모텔의 네온싸인으로 질흑같은 어둠은 피했다. 가끔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서로 멈칫 하는 게 보인다. 지나치고는 서로 뒤를 돌아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무서운 세상이니 한없이 착한(?) 나도 범죄자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나뿐이겠는가. 방금 지나쳤던 그 사람를 나도 혹시나 하고 경계했는지도 모른다. 들릴 듯 말 듯 했던 지게차 소음이 요란해지고 드디어 나는 출근을 완료했다는 증거로 내 신체 비밀 중 하나를 내보이고 만다. 검지를 기계에 갔다대자 얼굴없는 아가씨가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이 아가씨야! 난 그리 반갑지 않다네. 물류노동자 대부분은 아침까지 졸지않고 버티는 강철 체력(?)의 이 아가씨와 함께 밤에 일하지 싶다. 그래야 누군가는 신선한 식품으로 아침을 준비할 수 있고, 낮 동안에는 반가운 선물 꾸러미라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야간물류노동자의 잔혹한 출근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노동자들이여! 그대들은 안녕한가?

 

뻔히 알면서 물어보는 괜한 질문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안녕하지 못한 노동자가 부지기수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서로 안부라도 물어볼 상대가 있으니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겠지 하고 자위해 본다. 나는 지금 내가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하소연하기 위해 너스레를 떨고 있다. 최저임금도 못받는 노동자가 수백 만이라는 요즘 나는 그나마 최저임금을 가까스로 채우고 있으니 이 또한 불행하지 않은 이유(?)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그저 웃지요.

 

힘들기로 치면 야간물류노동자만한 직업이 없지 싶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휘프노스(그리스 신화, 잠의 신으로 밤의 신 닉스와 암흑의 신 에레보스 사이에서 태어났다)의 방문을 거절하느라 밤새 비빈 눈은 아침이면 벌겋게 변해있다. 슬프다. 잠의 신 휘프노스가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형제지간이란다. 그렇다고 임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비정규직에 시급으로 버티는 하루살이 인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하청업체 직원으로 등록되어 4대 보험이라도 가입되어 있는 야간물류노동자는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작업환경 또한 열악하기 그지 없다. 밤새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을 하다보니 코라도 풀면 휴지는 금새 새까맣게 변하고 만다. 휴식공간이라곤 일하다 털썩 주저앉은 그곳이 전부다.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의 사각지대가 다름아닌 야간노동현장이지만 정부도 정치권도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기야 고상한 님네들은 이런 현장이 있다는 현실을 알기나 할까 싶다.

 

야간에 일해야만 하는 이유만으로 아니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난 이유만으로도 안녕하지 못한데 나는 요즘 안녕하지 못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일터에 화장실이 없다. 무슨 외계에서 온 이야기겠지 싶을 정도로 황당할 수도 있게지만 사실이다. 30~40명의 노동자들이 밤새 일하는 곳에 화장실이 없다. 참, 있기는 하다. 2층에. 하지만 물류센터라는 곳의 크기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알 것이다. 2층이지만 실제로는 3층 이상의 높이다. 매번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도 일 아닌 일이다. 원청업체에서 더럽게 쓴다며 1층 화장실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무임승차로 손해가 크다며 지하철 운행을 중단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몇 번이나 항의해 봤지만 개방과 폐쇄를 반복하는 탓에 지금은 고까워서 사용하지 않고 만다. 

 

큰볼일이야 어쩔 수 없이 2층(3층 높이)까지 올라가지만 작은볼일은 직장 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에서 해결한다. 참 희한하다. 공단을 가로지르는 이 개울에 해마다 겨울만 되면 북녘 어디에선가 철새가 날아오니 말이다.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갈대숲 사이에서 퍼드득 날아오르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너희들도 참 안됐다. 공단 폐수만으로도 목이 텁텁할텐데 나까지 합세했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다 큰 어른들이 민망하기 그지 없다. 사람이 지나가나 보기 위해 좌우를 살피고는 덥썩 바지춤을 내리는 꼴이라니. 일을 보다가 갑작스레 자동차라도 휙 지나가면 흘리지 말아야 할 곳에 흘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시대가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노동자는 아스팔트 위의 껌딱지만도 못한 존재다. 어쩌면 야간물류노동자에게 이 정도는 안녕하지 못한 이유축에 끼지도 못할지 모른다. 그만큼 열악한 곳이 야간현장이다. 한낮 골목골목 도심을 질주하는 배송트럭 안에는 야간물류노동자의 땀방울이 이슬처럼 알알이 맺혀 있을 것이다. 

 

어김없이 돌아가는 것은 국방부 시계만이 아니다. 야간노동현장에도 어김없이 에오스(그리스 신화, 새벽의 여신으로 히페리온과 테이아의 딸로 태양의 신 헬리오스, 달의 여신 셀레네와는 남매지간이다.)는 찾아오고야 만다. 그나마 남아있던 기력도 아침이면 퀭한 눈만 멀뚱멀뚱 촛점없이 흔들린다. 밤샘의 노곤함을 풀기 위해 누구는 찜질방으로 향하고, 누구는 고깃집으로 가서 소주 한 잔으로 목구멍에 가득 찬 먼지를 씻어낸다. 출근 준비에 한창인 도시를 거슬러 퇴근하고 뜨거운 물로 온몸을 씻어내면 비로소 휘프노스(잠의 신)를 맞을 준비를 한다. 지난 밤도 하얗게 세웠는데 내가 자야 할 시간도 지난 밤보다도 더 하얗다. 신이 본디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은 탓인지 휘프노스(잠의 신)도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한나절이 지나면 또 잔혹한 출근을 해야 할 것을. 억지로라도 눈을 감는 수밖에. 어설픈 잠에 제발 악몽만이라도 꾸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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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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