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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3 노부부가 수몰지구 오두막집에 사는 이유 (17)

당제/송기숙/1983년

 

정부는 지난 8일 대한적십자사 총재 명의로 북측 조선적십자중앙위원회에 통지문을 보내 올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재개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실무접촉을 17일 개성이나 문산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5.24조치(2010년 3월26일 발생한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발표한 대북경제제재로 남북교역 중단, 방북 중단, 북한선박 운행 금지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조건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체적 부실정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5년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다. 단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던 이명박 정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독선과 오만, 불통이라는 부정적 단어들을 빼면 딱히 설명할 게 없다.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4대강 사업은 '녹차 라떼'라는 신조어(?)와 함께 재앙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떠들어댔던 자원외교는 대부분 거짓이거나 실제보다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도덕적인(?) 정권이라던 자화자찬은 수족들을 죄다 감방에 보내고 대통령 자신만 독야청청(?) 하고 있다. 급기야 '독도 깜짝쇼'로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해보려 하지만 오히려 그 진정성만 의심받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정권을 잡자마자 시작된 대북강경책은 5년 내내 남북을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으로 만들었고 이산가족들에게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앗아가고 말았다. 어렵사리 성사된 남북화해 무드는 일순간에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말았으니 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역사가 후퇴할 수도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대부분 고령이 된 이산가족들에게 지난 5년은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만나야 한다'는 당위성은 정치와 이념 논리에 철저하게 종속되고 말았다. 그들의 응어러진 한(恨)은 이제 시간을 기약할 수 없다. '만나 지금 당장 만나'자던 누구의 노랫말처럼 이들에게 가족의 상봉은 절박함 그 이상이다. 여기 그 절박함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노부부가 있다.

 

 

송기숙의 소설 <당제(堂祭)>는 설화적 모티브를 통해 실향의 아픔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송기숙 소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소설 <당제>도 분단으로 인한 가족의 파괴와 혈연의식의 훼손을 문제삼고 있는 작품이다. 분단으로 인한 실향의 아픔은 개발에 떠밀려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하는 또 다른 실향의 아픔을 겪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짠한 마음을 들게 한다.

 

당산제, 당고사, 당마제라고도 불리는 당제는 제당신을 모시면서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의 하나로 지역마다 각기 다른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해마다 섣달 그믐이면 당제를 올리고 있는 감내골 사람들에게 금년 세모는 아주 특별한 날이다. 이번 설을 쇠고 나면 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마을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부터 시작한 댐 공사가 마무리되어 오는 봄부터 물을 싣게 된다. 전답도, 동네 앞에 5백 년 묵었다는 당산나무도 모두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된다.

 

저자는 댐 공사로 인해 수몰지구가 될 감내골 사람들의 마지막 당제를 통해 개발로 인한 공동체 파괴와 분단이 가져다준 아픈 현실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그 중심에는 수자원공사의 피해보상을 거부하고 있는 한몰 영감 내외가 있다. 한몰 영감은 개발의 광풍으로 수백 년 이어져온 공동체가 파괴되는 현장의 증인이면서 파괴된 현장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거대한 힘 앞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어렵다는 현실을 알고 있는 한몰 영감은 감내골 마지막 당제의 제주를 자처한다.

 

며칠 뒤 보상금 이야기가 들려오자 동네 사람들은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처럼 보상을 하면 어떻게 하며, 땅값이나 집값은 얼마씩이나 매긴다더냐고 눈을 밝히기 시작했다. 동네 운수는 이미 뒈진 놈 인중 틀어지듯 글러버린 것, 물에 빠질 것은 빠지더라도 보따리나 제대로 챙기자는 심들인 것 같았다. -<당제> 중에서-

 

한몰 영감이 제주를 자처하면서까지 감내골에 애착을 보인 것은 단순히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다는 허탈감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끌려간 후 소식이 끊긴 아들 때문이다. 한몰 영감 내외에게 아들은 생존의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몰 영감 내외는 전근대적인 인물의 표상이다. 아들과 같이 의용군에 나갔다가 돌아온 이웃 동네 친구에게서 아들이 지리산 전투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들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한몰댁 꿈에 아들이 미륵바위 곁에 서 있었다는 것 때문이다. 한몰 영감이 일제 강점기 징용에 끌려갔을 때도 한몰댁은 남편이 미륵바위 곁에 서 있는 꿈을 꿨었다. 이들 내외는 이런 속신적, 미신적 믿음을 진리인 양 지키며 살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부부를 비난할 수만도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노부부에게 아들은 생존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몰 영감이 도깨비와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밥을 먹게 해주었다는 근대화의 본질에 대해서도 칼날같은 비판을 가한다. 당시 피폐해지고 소외된 농촌현실에 대한 비판이자 공동체적 윤리가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일갈일 것이다.

 

"이 작자들이 농촌 사람들하고는 무슨 웬수가 졌는가 으쨌는가. 즈그덜이 맨드는 텔레비, 냉장고, 전기다마, 농약, 이런 것은 즈그들 기분 내키는대로 값을 매김시로 말이여, 으째서 촌놈들 쌀값은 농사 짓는 사람 따로, 값 매기는 사람 따로냐 이 말이여?…중략…즈그들이 맨드는 그런 물건들은 수출까지 해서 재미를 보고, 또 다른 나라 것을 수입을 못하게 해놓고 즈그들 것만 풀어서 두 벌 시 벌로 재미를 보거든. 그런디 으째서 쌀값이나 쇠고기값은 그것이 쪼깐 올라서 촌놈들이 재미를 볼라고 하면 그런 것은 수입을 하냐 이 말이여?" -<당제> 중에서-

 

개발이 가져온 공동체의 파괴는 당제를 준비하는 과정과 당제 의례를 통해 일정 부분 봉합되어간다. 당제가 마을 공동체에서 했던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한몰 영감이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도깨비를 불러내어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은 당제의 의미가 단순히 개인의 안녕과 행복이 아닌 공동체의 터전과 구성원들에 대한 그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댐 건설로 인해 수장되는 것이 단순히 마을만이 아닌 공동체의 역사가 수장되는 것이다. 또 아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만남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묻어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파괴에 분단으로 인한 이산과 실향의 아픔은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비록 속신적 믿음에 귀의해 살고 있지만 한몰 영감 내외가 보여주는 생존력은 민초들의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몰 영감 내외는 미륵보살이 아들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제는 물에 잠겨버린 감내골 가는 장구목재 잿길에 오두막집을 지어 살고 있다. 그리고는 언젠가 아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며 안내판 하나를 세워두었다.

 

"이 재 너매 잇뜬 감내골 동내는 저수지 땜으 마거서 한 집도 업씨 모두 다 업써저 불고, 거그 살든 부님이 어매 한몰댁하고 아배 한몰 영감은 이 집서 산다. 부님이 아배 이름 김진구다." -<당제> 중에서-

 

훗날 아들이 이 안내판을 읽고 찾아올지 결코 기약할 수는 없다. 다만 이 희망마저 없으면 이 노부부에게 삶은 그저 허망한 한낮의 꿈이고 말 것이다. 못된 권력자의 무지함으로 북으로 이어진 길이 꽁꽁 막혀버린 현실을 바라보는 이산가족들의 삶이 바로 이런 것일게고 하루하루 각박해진 현실을 버티어내야만 하는 민초들의 삶이 바로 이런 것일게다. 결코 놓칠 수 없는 희망의 끈은 강인한 생존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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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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