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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28 아파트, 그 편리함 뒤에 숨은 탐욕과 슬픔 (17)

한국 최초로 지어진 고층 돌 상자. 내 이름은 뭐였을까. 한국의 기관과 업체가 1957년에 지은 최초의 돌 상자는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에 세운 '종암아파트'였다. 해방 이후 '한국 최초의 아파트'(논란은 있지만), 처음으로 '아파트먼트'라는 이름이 붙은 아파트, 대한민국 회사가 독자적인 기술로 처음 시공한 아파트, 그리고 최초로 수세식 변기를 설치한 아파트다. 그 당시 사기꾼, 협잡꾼인 대통령 이승만은 아파트 완공식에 참석해 아파트의 현대성과 수세식 화장실의 편리함을 선전하기도 했다. 이 돌 상자는 1993년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지금 '종암선경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중략>

 

이제 서울에서 나는, 살고 있는 사람의 계급이 무엇인지 그 지위를 명확히 드러내 주는 상징이 됐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줍니다."

아파트 건설사 롯데캐슬의 광고 카피다. 그만큼 나도 이젠 명품으로 불리는 시대가 됐다. '래미안', '푸르지오', '자이', '힐스테이트', 'e-편한세상', '아이파트', '롯데캐슬', '더샵' 등등 건설 회사 치고 브랜드 없는 회사가 없다. 최근 들어서는 '타워팰리스'라는 초호화 초고층 '닫힌 공간'이 생겨나기도 했다.

 

▲초호화 초고층 닫힌 공간 '타워팰리스'. 사진>머니투데이 

 

그런데 그런 명품은 얼마나 튼튼할까. 현재 짓고 있는 100층이 넘는 제2롯데월드를 보자. 들레에 있는 석촌호수 물이 사라지고 있고 '싱크홀' 같은 구덩이가 나타나고 있다. 싱크홀은 땅속의 지하수가 사라지는 순간 땅속 공간이 압력을 버텨 내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롯데월드는 지하수 유출이 공사 과정에서 발생됐다는 의혹을 사 왔다. 주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하 6층까지 파는 과정에서 지하수가 유출됐다는 것이다. 더불어 지하수가 빠져나간 자리를 바로 옆에 있는 석촌호수 물이 흘러 들어와 채우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실제로 석촌호수는 제2롯데월드 공사 이후 15만 톤의 물이 사라졌다. <중략>

 

내 수명도 마찬가지다. 겨우 20~30년, 기껏해야 40년이다. 1980년대에 세워진 아파트는 이제 하나둘씩 무너뜨리고 새로 지어야 한다. 앞으로는 늘 공사하는 소음이 들린다는 말이다. 재건축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공사 중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어 내고 있다. <중략>

 

인간들아, 그렇게 높은 돌 상자 집을 만들어 한번 꼭대기 층까지 걸어 다녀 봐라. 아니 전기가 없으면 물도 안 나올텐데 화장실 똥은 어떻게 하지? 인간들은 그런 것도 생각 못 하나? 참 알 수 없는 동물이다. 나는 아파트다. 곧 사라질 아파트다. -《작은책》8월호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들|아파트' 중에서-

 


 

 

파편화된 현대인에게 적합한 아파트가 생겨난 것일까? 아파트에 맞춰 현대인들은 끝없이 비밀스런 공간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일까? 이리도 궁합이 잘 맞는 생물과 무생물의 짝도 드물 것이다. 어쨌든 아파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거공간이 됐고, 이웃사촌도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도 옛말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를 추억하듯, 아파트라는 욕망과 슬픔이 커질수록 아파트가 세워지기 전 먼 옛날의 향수에 가슴이 저미어 올지도 모른다.

 

산을 깎아내리고 있는 중장비 기계들의 소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흙더미 사이에서 먼지가 피어오르고 채 자라지 못한 나무들이 기우뚱거리며 스러졌다. 산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 이제 정말 누구도 그 자리에 산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산 속에서 정연한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왔을 수없이 많은 초록의 생명체들도. 그러나 어쩌면 문득 아파트가 들어선 곳들마다 혹은 베란다와 마루 들 사이로 봄이면 초록색 비듬나물이나 엉겅퀴 같은 것들이 보도블록을 밀쳐내고 올라오는 나무의 뿌리처럼 솟아날지도 몰랐다. 그때 사람들은 사라져버린 민둥산과 그 앞의 밝은 집들과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고 있던 길고 오랜 기억에 관해 이야기할지도 몰랐다. -조경란의 소설 <망원경> 중에서-

 

수명이 다한 아파트는 헐릴 것이고 그 자리는 또 무엇인가로 대체될 것이다. 설마 아담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이 들어서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적 인간이라면 기존의 아파트보다 더 높은 바벨탑을 쌓아 올릴 것이다. 높이 더 높이, 인간은 신의 영역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밀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신이지만 인간은 결코 신을 넘어본 적이 없었다. 자연을 끊임없이 인간의 영역으로 흡수해 왔지만 인간은 결코 자연을 넘어설 수 없었다. 되레 인간은 신과 자연의 선물(?), 재앙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탐욕과 슬픔은 정비례한다. 탐욕에 제동장치를 걸어두지 않으면 과거의 현대인들이 그랬듯이, 미래의 현대인들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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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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