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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05 나는 이미 80년대에 남북국 시대를 배웠다 (18)

내가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을 반대하는 이유

 

나는 학력고사 세대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변되는 X세대, 즉 구세대와 신세대의 낀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보다 몇 년 선배들은 같은 학력고사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선시험 후지원이었으나 X세대는 선지원 후시험 체제로 학력고사를 치렀다. 또 나보다 몇 년 아래 후배들은 수능(수학능력시험) 세대니 그야말로 낀세대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싶다.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X세대는 교복자율화 세대이기도 했고 심지어 두발 규제 또한 그리 심하지 않았다. 가끔 중학교, 고등학교 앨범 속에 긴 머리로 한껏 멋을 낸 친구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한편 X세대들에게 주목할 부분은 한가지 더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열풍을 타고 직선제 총학생회를 학생들의 힘으로 직접 쟁취했다는 것과 풍물 모임이라든가 독서 모임 등 기존 군사문화가 지배했던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생겨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대학생들처럼 학생회 연합체가 조직되기도 했다. 당시 고등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출범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밑도 끝도 없이 X세대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가능했던 특별한 경험을 소개하고자 함이다. 겨울방학을 앞둔 1988년 12월 어느날.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겨울방학 전 마지막 국사 시간에 스테플러로 묶인 몇 장의 부교재를 받았다. 우리나라 지도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던 첫 장을 보는데 국사 선생님께서 한국사의 시대 구분을 교과서에 나와있는 그것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역사학자들도 있으니 참고하라는 것이었다. 별다르게 긴 설명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만 남북국 시대라는 생소한 용어 때문에 자세히 읽어봤던 것 같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고조선, 삼한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와 같은 역사 구분 대신 고조선, 삼함시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순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당시에도 발해를 한국사로 배우기는 했지만 실제 교과서에는 한국사의 일부라기보다는 한국사의 변방국가처럼 애매하게 다뤄졌던 것도 사실이다. 다음해 뜻맞는 친구들끼리 한국사를 공부하는 독서모임을 시작한 것도 이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무슨 그게 자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남북국 시대가 교과서에 채택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수업방식이었고 역사 교육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한국사 수업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한다.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학문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1784년 유득공의 <발해고>에서부터다. 유득공은 고려의 국세가 크게 융성하지 못한 이유로 발해 역사를 편찬하지 않은 이유에서 찾았다. 즉 신라가 통일해 세운 통일신라는 한반도 남부를 차지했으니 남국으로, 고구려가 망한 뒤 그 후예들이 발해국을 세웠으니 한반도 북쪽을 마땅히 북국으로 역사체계를 세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왕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남북국 시대를 중심으로 한 역사체계가 꾸준히 연구되어 왔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식민사관에 막혀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1970년대 이후 다시 거론되기 시작해 1980년대에는 많은 역사 개설서에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가 채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편찬된 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에 '남북국 시대'가 정식으로 설정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남북국 시대 설정은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국사 수업 시간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청소년들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기 위해 방안으로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으로 청소년들에게 올바란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면야 대환영이지만 '시험 만능주의'로 한국사에 관한 흥미 유발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현정부 들어 역사교육 강화를 위한 나름의 의지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지만 동시에 기존 역사 교과서를 자학사관에 기반을 둔 서술이라며 일제 강점기와 독재 시대를 미화해온 일부 학자들의 새 교과서가 정식 교과서로 채택될 것이라는 보도는 보수정권과 뉴라이트 학자들의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우려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대한 논란은 잠시 접어두고 과연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 논란으로 다시 돌아오면 나는 기필코 반대 입장이다. 

 

우선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이 되면 우리교육 현실에서 국사 수업은 또 다시 암기교육의 장이 되고 말 것이다. 최근 삼일절이나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는 중고등 학생들이 많다는 언론보도가 회제가 되곤 했다. 그러나 올바른 역사인식이 연대별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외우는 것만으로 확립될까. 연대 암기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다. 점수를 따기 위해 역사적 사건 자체만 줄줄 외우다 보면 학생들이 한국사에 흥미를 갖지 못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또 시험을 위해 외운 내용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머릿 속에 남아있을까. 내가 남북국 시대를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지만 여태 기억하고 있는 것은 기존에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사실을 접함으로써 생긴 흥미 때문이었다. 그런 흥미 때문에 수업 시간에는 할 수 없는 역사 관련 토론을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수능과 연결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교육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찬성 쪽의 입장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학생들이 받고 있는 입시 스트레스를 생각한다면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은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부담만 안겨줄 뿐 한국사에 관한 흥미는 오히려 더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더욱이 학생들은 입시면접을, 성인들은 입사면접까지 과외로 교육받고 있는 현실에서 국·영·수처럼 한국사 과외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고로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에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진짜로 인식하고 있다면 입시 위주의 한국교육의 틀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요즘 학생들이 역사를 제대로 모른다고 하지만 사실은 현행 국사 교과서에 다 나와있는 내용들이다. 다만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를 수능과 연계하자고 하겠지만 중학교·고등학교, 아니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지만 성인이 돼서 외국인을 만나면 심장만 벌렁거릴 뿐 다문 입이 좀체 벌어지지 않는 것과 똑같은 상황만 재연될 것이다.

 

요즘 학생들이 역사를 모른다고 한탄만 하고 그래서 뚝딱 두드리면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도깨비 방망이같은 정책만 내놓을 게 아니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전시행정이나 탁상공론이 아닌 먼 미래를 바라보는 고민이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만약에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면 세계사 또한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국을 비롯한 세계의 역사는 배우지 않은 채 우리 역사만 배운다면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또한 걱정해야 할 결과가 아닐까. 다민족·다문화 시대에 말이다.


 

허접한 글이지만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강여호를 만나는 방법은 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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