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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3 세상의 중심은 물푸레나무 위그드라실이었다 (30)

엘리스 데이비슨의 <스칸디나비아 신화>/심재훈 옮김/범우사 펴냄/2004년

신들이 거주하는 곳은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스가르드란 도시로 훨씬 큰 세계상(世界像)의 일부였다. 아스가르드의 중심에는 물푸레나무인 위그드라실이라는 세계 나무가 있어 신들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했다. 위그드라실의 뿌리는 세 개였는데 각각 신들의 왕국, 거인들의 왕국, 죽은 자의 왕국으로 뻗어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올림포스가 있었다면 스칸디나비아 신화에는 아스가르드가 있었다.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는 세상의 중심이다. 차이가 있다면 스칸디나비아 신화에서는 그 세상의 중심에 물푸레나무라는 또 하나의 세계의 축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왜 하필 세상의 중심에 위그드라실이라는 물푸레나무를 창조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 신화의 배경이 되는 지중해 연안은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로 사람들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반면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자연환경은 거칠고 춥다. 이런 자연환경 속에서 살았던 스칸디나비아인들에게 생명은 그 자체로 삶과의 투쟁이었다.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생명력을 상징하는 나무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설정은 가장 자연스런 결과인지도 모른다. 또 그리스 신화와 달리 스칸디나비아 신화가 호쾌하면서도 비극적이며 거칠면서 어둡게 그려지는 것도 바로 이런 자연환경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 와서도 신화의 생명력이 꺼지지 않는 것도 바로 신화의 이런 상징 때문이다. 신화는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신들의 세계로 빗대어 보여주는 것이다. 즉 신화는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에 관한 열쇠를 찾는 과정이다. 그래서 신화는 합리적인 사고의 영역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보충해 준다. 지금도 과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들이 부지기수인데 수만 년의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른 인류의 역사야 오죽하겠는가.

스칸디나비아 신화는 바이킹의 신앙이기도 하고 게르만 민족의 신화이기도 하다. 스칸디나비아를 지리적으로 구분하면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를 말하지만 스칸디나비아 신화는 북유럽 지역 전체를 포괄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스칸디나비아 신화는 북유럽 신화인 셈이다. 어릴 적부터 그리스 신화를 중심으로 유럽의 역사를 배워온 독자들에게 스칸디나비아 신화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 '반지의 제왕'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만 주인을 떠나면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스칸디나비아 신화의 지구르트 반지 이야기가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게임을 좋아하는 게임 마니아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모험을 주제로 한 많은 게임들의 모티브가 바로 스칸디나비아 신화이기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 신화의 신들은 그리스 신화 속 신들과 달리 전지전능하지도 불사(不死)한 존재도 아니다. 어딘가 하나쯤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하는 오딘만 봐도 그렇다. 오딘은 앞서 언급한 세계의 나무 속에서 지혜를 얻은 대신 한 쪽 눈을 잃은 외눈박이 신으로 등장한다. 스칸디나비아 신화가 게임의 모티브가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신들은 모험을 통해 완벽한 존재로 거듭나기를 열망한다. 이는 인류가 걸어온 삶의 종적과도 일치해 보인다. 또 잦은 예언의 등장과 종말도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한가닥 희망을 잡으려는 인간의 모습이며 또 타락한 인간 세상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수많은 신들을 다 언급할 수는 없고 스칸디나비아 신화를 대표하는 신을 꼽자면 아무래도 오딘과 토르일 것이다. 오딘은 스칸디나비아 신화에서 신중의 신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신이기도 하다. 영어권 국가에서 일주일 중 수요일을 오딘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고 바이킹 시대의 왕들과 전사들이 자신들을 오딘의 후손으로 생각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고 하니 그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오딘은 파란색 외투를 걸치고 테가 없는 넓은 모자를 쓴 외눈박이 신으로 등장한다. 스칸디니비아 신화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오딘이지만 그도 결국에는 죽을 운명을 타고났다. 아무리 강력한 인간이라 해도 패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겸손해지라는 신의 경고이자 상징일 것이다.   

오딘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으니 바로 슬레이프니르다. 슬레이프니르는 오딘을 죽은 자의 나라로 데리고 올 수도 있었고 반대로 죽은 자를 오딘의 영역으로 데려올 수도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딘의 준마 슬레이프니르의 탄생 비화는 신화 읽기의 흥미진진함을 더해준다.

한 거인이 신들의 나라 아스가르드의 벽을 겨울이 끝나기 전에 세우겠다고 제안하면서 만약 정해진 시간에 벽을 완성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여신 프레야와 태양 그리고 달을 받기로 약속했다. 이때 이 거인이 데려온 말이 스바딜파리였는데 3일밖에 남지 않았을 때 벽을 거의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들은 벽의 완성이 가까워지자 거인에게 약속한 보상이 탐탁치 않았나 보다. 신들은 아스가르드의 책략가 로키에게 거인과의 약속을 파기할 명분을 만들 것을 명령한다. 이에 로키는 암컷 나귀로 변신해 거인의 종마인 스바딜파리를 유혹해 기일 내에 벽을 완성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거인은 토르의 쇠망치에 맞아 죽게되지만 종마와 암컷 나귀로 변신한 로키 사이에서 다리 여덟 달린 망아지가 태어나는데 이 망아지가 나중에 오딘의 종마 슬레이프니르다. 한편 오딘은 종종 독수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서 익히 알려진 토르는 천둥의 신이다. 토르는 퉁명스럽고 붉은 머리를 가진 남자로 묘사되는데 힘이 엄청나게 세고 식욕도 왕성했으며 이글거리는 눈과 수염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가 퀴네에라고 하는 투구로 실체를 감추었듯이 토르에게는 특별한 벨트가 있었는데 이 벨트를 착용하면 힘이 강해졌다고 한다. 토르 하면 뭐니뭐니 해도 항상 들고다니는 쇠망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스칸디나비아인들에게 쇠망치는 신의 상징으로 쇠망치에 신들을 상징하는 다양한 문양들을 그려넣기도 했다. 이는 법과 정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아이슬란드의 국회인 알팅이 토르의 날인 목요일에 개원하는 것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폭풍의 신이기도 했던 토르는 다산의 상징으로 공동체의 번영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쇠망치가 많이 발굴되는 것도 토르의 이런 상징성 때문이다. 이밖에도 스칸디나비아 신화에는 요정과 난쟁이, 펠리르라는 늑대, 요르문간드라는 거대한 뱀 등이 등장한다. 

한편 우리가 알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신화는 그 지역에 수천년 동안 터를 잡고 살았던 스칸디나비아 원주민들의 기록이 아닌 개종된 후의 기독교적 시각으로 각색된 것이다. 우상숭배를 금했던 기독교에서 신들의 행적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독교적 시각으로 각색하다보니 때로는 신들이 희화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인 왕들이 십자가에 새긴 표시가 토르의 숭배자들이 쇠망치에 새긴 문양들과 비슷한 걸 보면 이교도의 전통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기독교적 시각으로 스칸디나비아 신화를 후세에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덴마크의 성직자이자 역사가인 삭소 그라마티쿠스와 아이슬란드의 시인이자 역사가였던 스노리 스툴루손이 있어 가능했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가 단군 신화의 기본 자료가 되었듯이 스칸디나비아 신화는 가요 모음집인 <에다>에서 그 출처를 찾고 있다. <에다>는 <산문 에다>와 <고(古)에다>로 나뉘는데 13세기에 씌여진 <산문 에다>의 저자가 바로 스노리 스툴루손이다. 한편 천지 창조와 신들과 거인들의 싸움, 세계의 멸망, 오딘이나 토르 등 신들에 관한 묘사는 <고에다>를 근거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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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1 : 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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