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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05 수이전, 여왕을 사모했던 말단관리의 운명은? (4)

수이전/작자 미상(신라 시대로 추정, 57~935년)/이대형 편역/소명출판 펴냄


나무 목[木]자 둘을 합치면 수풀 림[林]자가 된다는 것은 한자 문외한이 아닌 이상 누구나 다 아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물 수[水]자 셋을 합치면 어떤 글자가 될까? 아니 그런 한자가 있기나 할까? 나무가 둘 모여 수풀을 이루니 물이 셋 모이면 어떤 의미일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묘[淼]자란다. 수면이 아득할 정도로 '물이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조선시대 궁궐 전각에는 화재예방을 위해 수[水]자를 새긴 육각형 은판을 봉안했다고 한다. 물론 '드므'라는 커다란 물항아리를 건물 곳곳에 배치했다고는 하나 건축물 대부분이 나무로 지어져서 한 번 불이 나면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주술적 힘이라도 빌리려 했던 것이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불조심이긴 하나보다. 한편 신라시대에도 화재예방을 위한 이런 부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풍속에 화재를 막기 위해 다음과 같은 주문을 문과 벽에 붙였다고 한다.

 

지귀 마음에서 일어난 불이

몸을 태우고 불귀신으로 변했네

창해 밖으로 흘러 옮겨가

보이지도 말고 가까이 하지도 말지라


<수이전>에 따르면 신라인들이 이런 부적을 건물에 붙인 데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요즘말로 하면 러브스토리다. 그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활리의 역인에 불과했던 지귀가 마음 속에 품었던 이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선덕여왕이었다. 선덕여왕의 단아하고 수려함을 사모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근심하고 눈물을 흘려 모습이 초췌해졌는데 이 소식을 선덕여왕이 듣고 불러 말하길 '짐이 내일 영묘사에 가서 향을 피울 것이다. 너는 그 절에서 짐을 기다려라' 하였다.

 


 지귀는 다음날 영묘사 탑 아래에 가서 왕의 행차를 기다리다가 홀연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왕이 절에 도착하여 향을 피우고는 지귀가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팔찌를 빼어 지귀 가슴에 놓고 다시 궁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잠에서 깬 지귀는 가슴에 왕의 팔찌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는 왕을 기다리지 못한 자신을 한탄했다. 지귀는 그 안타까움에 오래도록 기절해 있다가 마음의 불이 일어나서 그 탑을 불태우고 말았다. 지귀가 불귀신으로 변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주술사에게 명하여 위와 같은 주문을 짓게 했다고 한다. 어떻게 일개 역졸이 왕을 사모할 수 있었을까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수이전> 제목 그대로 아주 '기이한 이야기'에 불과하니까. 다만 신분의 벽에 부딪쳐 번민해야만 했던 한 남자의 사랑이 예나 지금이나 안타깝기는 똑같다는 것이다.

 

<수이전>은 신라 사회를 배경으로 한 최초의 설화집이다. 저작 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되지만 현존하지는 않고 <삼국유사>, <대동운부군옥>, <해동고승전>, <필원잡기> 등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문인 박인량이 <수이전>의 저자라는 주장도 있지만 개작의 대표적인 인물로 추정될 뿐 확실한 근거는 없다.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에 총 13편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등장 인물도 최치원, 선덕여왕, 김유신, 원광법사에서 일반 백성들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짤막한 이야기들이지만 최치원에 관한 이야기는 '선녀홍대', '최치원전'이라는 제목으로 그 분량이 상당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선덕여왕과 모란에 관한 이야기,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등도 모두 <수이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사랑 이야기가 많은 걸로 봐서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랑이 갖는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지귀의 러브스토리만큼이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한다.

 

신라시대 최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항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는데 부모의 반대로 끝내 만나지 못하고 갑자기 죽고 말았다. 분명 죽었건만 항은 여드레가 지난 후 머리에 석남 가지를 꽂고 여인의 집을 방문해서는 석남 가지를 나누어 주면서 부모님이 결혼을 허락하셨다며 여인과 함께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항은 담을 넘어 집에 들어갔고 여인은 날이 새도록 그 집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 때 그 집 사람이 나와 밤새 문 앞에 서있는 연유를 물으니 여인은 밤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그 집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 팔 일 전에 죽어 장사까지 치렀는데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여인이 말하기를 석남 가지를 보여주며 항이 나누어 꽂아 주었다면서 이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관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최항의 시신 머리에 석남 가지가 꽂혀 있었고 옷마저 이슬에 젖어 있었다. 여인은 그때서야 항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통곡했다. 그때 항이 다시 살아나서 20년을 해로했다고 한다.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었다도 아니고 다시 살아나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니 이보다 더한 해피엔딩이 있을까?


일연의 <삼국유사>가 삼국 시대의 문학 유산을 전해주고 있는 매우 소중한 문헌이듯이 <수이전>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비록 사실이 아닐지언정 당시 서민들의 고단했던 일상과 꿈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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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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