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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28 얼마나 달라졌을까? 詩 '휴일특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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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하는 형님이 침통한 얼굴을 하고 나를 불렀다. 한손에는 급여명세서가 들려 있었다. 올해 최저임금이 작년보다 10몇 퍼센트 올랐다는데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설마요?' 하면서 급여명세서 좀 볼 수 있냐고 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개별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선뜻 자신의 급여를 공개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한참 고민 끝에 보여준 급여명세서는 도통 알 수 없는 내용뿐이었다. 식비나 교통비, 직무 수당과 같은 각종 수당은 사라지고 급여총액과 공제금액뿐이었다. 아, 뉴스에서 보던 꼼수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각종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킨다더니 이런 식이었구나 싶었다. 그러니 작년 월급과 큰 차이가 없을 수밖에.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 중 90% 이상은 최저임금 노동자다. 그나마 주 6일 근무하는 야간 물류 현장이라 야간 수당과 연장 수당으로 근근이 버티고는 있지만 밤잠 설치며 일하는 고통이 그 수당으로 덜어지기 만무하다. 그것도 최저시급으로. 그런데 이런 꼼수라니 뉴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생활임금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최저임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꼼수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문득 오래 전 읽었던 시가 생각나서 시집을 뒤적여 보니 긴 한숨만 허공을 가를 뿐이다. 과연 시간이 존재하긴 하는가 싶어서다.


급여명세서. 출처>다음 검색


4시간 연장노동 끝에/서둘러 밤차를 타고/어둔 골목길을 더듬어 방문을 들어서면 귀염둥이 민주는 벌써 꿈나라 아기별이 되었다


일주일째 아빠 얼굴을 못보니/오늘 저녁엔 꼬옥 아빠를 보고 잔다고/색칠놀이 그림그리기로 밤을 쫓기에/내일은 일요일이라 아빠랑 놀러 가자고 달래 재웠다며/아내는 엷게 웃는다


올해도 임금은 오르지 않고/주인네는 전셋돈을 50만원은 더 올려달라 하고/이번 달엔 어머님이 제가가 있고/다음 달엔 명선이 결혼식이고/내년엔 우리 민주 유치원도 보내야 한다


이대로 세 몸뚱아리 아프지만 않는다면/김치에 밥만 먹고 아무 일만 없다면/매주 78시간 꾸준히 버텨 나간다면/열달 남은 100만원짜리 계는 끝낼 수 있으련만/올봄 들어 유난히 심해진 현깃증에/외줄을 타는 듯 불안하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며/빨간 숫자는 아빠 쉬는 날이라고/민주는 크레용으로 이번 달에 6개 나/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민주야/저 달력의 빨간 숫자는/아빠의 휴일이 아니란다/배부르고 능력있는 양반들의 휴일이지/곤히 잠든 민주야


너만은 훌륭하게 키우려고/네가 손꼽아 기다리며 동그라미 쳐논/빨간 휴일날 아빠는 특근을 간다/발걸음도 무거운 창백한 얼굴로/화창한 신록의 휴일을 비켜/특근을 간다


선진조국 노동자/민주 아빠는/저임금의 올마미에 모가지가 매여서/빨간 휴일날/누렇게 누렇게 찌들은 소처럼/휴일특근을 간다 민주야 -'휴일특근'.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중에서-


이 시가 그리고 있는 20세기 그것도 7,80년대 노동현실이 어쩌면 이렇게 달라진 게 없을까? 어느 정치인은 그들만의 저녁 만찬을 두고 '저녁이 있는 삶'이라며 노동자들에게 표를 구걸했다. 휴일특근에, 연장까지 불사해야 그나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이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쥐꼬리많한 월급'이라더니 어찌된 게 그놈의 쥐꼬리는 왜 시간을 잡아먹으면서 자꾸만 퇴화되는가 싶다. 


현정부 임기 내에 최저임금을 시급 1만원까지 끌어올린다고 하더니 그 약속은 믿음이 가지만 사업장 내에서 횡횡하고 있는 이런 꼼수로 과연 실질적인 임금인상 효과가 있을지 의문만 넘쳐난다.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을 갖는다면 그 공약만이라도 꼭 지켜졌으면 하는 것이다. '누렇게 찌들은 소처럼'이란 마지막 싯구가 가슴을 후벼 파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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