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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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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나면 하늘에 뭐가 뜨는지 아십니까?"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윤흥길(1942~)/1979년 어린 시절 어느 동네나 '광녀' 이야기 하나쯤은 있었다. 어줍잖게 왠 한자라고 한다면 소설 속 그대로 '미친년'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래도 어감 때문에 불편해 한다면 조금 순화(?)시켜 '미친 여자' 이야기로 하겠다. 어쨌든 불쑥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내용이야 동네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때로는 사실로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미친 여자' 이야기의 배경에는 늘 '비오는 날'이 깔려 있었다. 내 어릴 적 기억 속에도 '미친 여자' 이야기가 존재한다. 아니나 다를까 비오는 날이면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온종일 빗 속을 걸어다니면서 노래(아마도 판소리 창이었을 것이다)를 불렀는데 그 수준..
'걸리버 여행기' 소인국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늘 바다를 항해하고 싶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의학도 걸리버(Gulliver)는 우연한 기회에 3년 반동안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항해에서 돌아온 후에는 런던에 병원도 차리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바다 여행에 대한 걸리버의 욕망은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결국 배의 의사가 되어 바다와 집을 오가던 어느 날 항해 도중 배가 풍랑을 만나 산산조각 났지만 걸리버는 운 좋게도 어느 섬까지 헤엄쳐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리고는 쓰러져 잠이 든다. 잠에서 깨어난 걸리버는 그야말로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은 밧줄로 꽁꽁 묶여있었고 그의 몸 위에는 벌레 같은 인간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벌레 같은 인간들에게는 밧줄이라지만 걸리버에게는 바늘에 꿰는 실에 불과했다. 팔에 힘을 주자 ..
못난 남자 손광목이 이해되는 이유 안개 너머 청진항 2/유시춘/1992년 지난 달 26일은 천안함이 침몰된 지 4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추모제가 열려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기렸지만 추모하고 싶어도 추모식에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추모식 참석을 거부당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통합진보당이 그랬다. 통합진보당은 천안함 침몰 이후 처음으로 '천안함 용사 추모식'에 참석하려 했지만 유족들의 반발로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비단 통합진보당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추모식에 참석했던 다른 야당 의원들도 유족과 여당, 보수 언론의 곱지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고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명확한(?)은 해명을 강요당했다. 왜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누구는 추모를 거부해야 하고 또 누구는 추모를 거부당..
가스통 할배들을 위한 이유있는 변명 백가흠의 /2011년 원덕씨의 쓸쓸한 죽음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원덕씨는 예순 여덟 해 인생의 절반을 살기 위해 온몸을 피가 나도록 긁어야 했고 수면제와 진통제가 같이 들어있는 약을 과다 복용해 환영이 보이고서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다. 원덕씨는 젊은 날 자신의 모습을 슬프게 바라보며 메마른 그의 눈에 마지막 눈물을 머금고는 그렇게 아픔[痛] 없는 세상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그가 숨을 내려놓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하늘에서 낮게 날아오는 C-123기였다. 오렌지 온다! … 긴 날개에서 하얀 액체가루가 뿜어져나오는 모습이 포근한 구름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 희뿌연 안개가 밀림을 뒤덮었다. 하얀 가랑비가 천지사방에 뿌려졌다. 병사들은 하늘에서 날리는 액체를 서로 더 받기 위해 아우성이었..
박원순 폭행녀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이유 문순태의 /1982년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정신 속에 되살려내는 것이다. 기억은 인간의 이성과 결합할 때 문명의 이기를 창조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기억은 학습에 의해 진화시키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과거의 기억은 현재와 미래의 희로애락을 결정하기도 한다. 특히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trauma)와 같이 되살아난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생활을 억압할 때 인간은 기억의 반대 의미인 망각을 적절히 활용하고 학습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과거의 아픈 기억을 하나쯤 안고 살아간다. 그 기억이 현재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트라우마와 같이 삶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문순태의 소설 에서 점백이라는 어느 여인의 삶은 온통 과거의 아픈 기억에만머물러 있다. 역..
태석이 빨갱이가 된 사연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도야지』/「문장」27호(1948.10)/창비사 펴냄 “1940년대의 남부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천,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XXX과 XXXX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그리고 차경석의 보천교나 전해룡의 백백교도 혹은 거기에 편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도..
[주홍글씨]를 통해 본 간통제 폐지 논란 "자기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땅히 겪어야 할 고행이려니, 참고 견디어야 할 종교려니 하고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참고 견디던 그녀가 이 괴로움을 승리로 바꾸려고 마지막으로 단 한번만 더 자진해서 고행을 맞이했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 주홍글씨와 그것을 단 사람을 마지막으로 보세요!' 사람들의 희생자요 평생의 노예로 여겼던 헤스터는 말했을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그녀는 당신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갑니다. 몇 시간 후에는 당신네들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불타게 만들었던 주홍글씨를 저 깊고 신비한 바다가 영원히 감추어버릴 겁니다.! 자신의 인생과 깊이 얽혔던 고뇌로부터 해방되려던 순간에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서운함을 느꼈으리라는 추측이 인간성에 아주 어긋나는 추측은 아니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