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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08 윤동주의 '봄' 그리고 우리의 '봄' (4)

저녁 출근길 촉촉이 젖은 길가에 흐드러진 벚꽃이 터널을 만들었다. 벚나무 허리 아래로는 개나리가 질세라 노란 빛깔을 연신 뿜어내고 있다. 저만치 목련은 이미 작별 인사를 할 모양인지 고개를 숙인다. 멋없는 자동차들은 벚꽃 터널을 무심하게 씽씽 내달리고 있다. 연신 하늘만 쳐다보며 걷다보니 목이 다 아프다. 이런 나를 노란 달이 벚꽃 사이로 빼꼼이 엿보며 웃고 있다. 


아! 드디어 봄이 왔나 보다. 유난히 길었던 올 겨울도 끝내는 봄빛에 길을 내주고 마는구나.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자연의 봄은 왔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았을 뿐이다. 4년이 그랬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마음의 봄은 늘 잿빛 꽃으로 물들었다. 봄놀이 간 아이들은 겨울에 갇혔고 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4년만의 봄에 아이들도 돌아왔다. 아이들을 맞으러 남도 끝 바닷가는 온통 노란 슬픔으로 물들었다. 아직은 마음의 봄과 자연의 봄이 하나가 되지 못해서다. 개나리, 진달래 사이로 종달새가 노니는 시인의 봄도 그랬을 것이다. 시인의 '봄'도 우리의 '봄'도 아직은 노란 슬픔이다.   


 ▲벚꽃. 사진>구글 검색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까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윤동주 시인의 '봄'-


 ▲노란 리본으로 물든 목포신항. 사진>한국일보


시인에게도 우리에게도 봄이 왔으나 여전히 봄 같지 않은 이유는 지난 겨울이 너무 혹독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무려 30년 넘게 기다려왔던 봄이다. 시인에 비하면 우리의 4년은 부끄러운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본디 노랑은 희망이다. 더불어 봄도 아이의 웃는 얼굴이다. 아직 노랑이 슬프다면, 여전히 봄빛이 시리다면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윤동주 시인이 여전히 우리의 옷깃을 여미는 이유는 늘 새로운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노란색 봄을 기다리며. 하지만 시인은 끝내 마음의 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 시인에게는 안타깝지만 우리의 끊임없이 걸어야 할 새로운 길 끝에는 온몸으로 느끼게 될 마음의 봄이 기다리고 있다. 봄을 내주지 않았던 동장군을 단죄하는 날, 다시는 동장군이 활개치지 못하도록 세상을 바꾸는 날, 봄놀이 갔다 세월에 갇혔던 아이들이 비로소 엄마 품에 안기는 날, 그 날 바로 노란 슬픔은 진짜 색깔을 찾을 것이다. 어제도 새로운 길을 걸었다. 오늘도 새로운 길을 걸을 것이다. 넘어져 살이 까지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내일도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


*윤동주 시인: 1917~1945년. 만주 북간도 출생. 연희 전문학교를 거쳐 일본 유학. 1942년 봄 일본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가을에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편입학함. 릿쿄대학 시절 마지막 시 5편을 남김. 1943년 7월 귀국하기 직전 교토 국제대학에 재학 중이던 송몽규와 함께 독립 운동 혐의로 검거되어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함. 주요 작품으로는 '자화상', '별 헤는 밤' 등 수십 편의 수작이 있고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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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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