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내가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을 반대하는 이유

 

나는 학력고사 세대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변되는 X세대, 즉 구세대와 신세대의 낀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보다 몇 년 선배들은 같은 학력고사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선시험 후지원이었으나 X세대는 선지원 후시험 체제로 학력고사를 치렀다. 또 나보다 몇 년 아래 후배들은 수능(수학능력시험) 세대니 그야말로 낀세대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싶다.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X세대는 교복자율화 세대이기도 했고 심지어 두발 규제 또한 그리 심하지 않았다. 가끔 중학교, 고등학교 앨범 속에 긴 머리로 한껏 멋을 낸 친구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한편 X세대들에게 주목할 부분은 한가지 더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열풍을 타고 직선제 총학생회를 학생들의 힘으로 직접 쟁취했다는 것과 풍물 모임이라든가 독서 모임 등 기존 군사문화가 지배했던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생겨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대학생들처럼 학생회 연합체가 조직되기도 했다. 당시 고등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출범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밑도 끝도 없이 X세대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가능했던 특별한 경험을 소개하고자 함이다. 겨울방학을 앞둔 1988년 12월 어느날.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겨울방학 전 마지막 국사 시간에 스테플러로 묶인 몇 장의 부교재를 받았다. 우리나라 지도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던 첫 장을 보는데 국사 선생님께서 한국사의 시대 구분을 교과서에 나와있는 그것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역사학자들도 있으니 참고하라는 것이었다. 별다르게 긴 설명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만 남북국 시대라는 생소한 용어 때문에 자세히 읽어봤던 것 같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고조선, 삼한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와 같은 역사 구분 대신 고조선, 삼함시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순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당시에도 발해를 한국사로 배우기는 했지만 실제 교과서에는 한국사의 일부라기보다는 한국사의 변방국가처럼 애매하게 다뤄졌던 것도 사실이다. 다음해 뜻맞는 친구들끼리 한국사를 공부하는 독서모임을 시작한 것도 이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무슨 그게 자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남북국 시대가 교과서에 채택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수업방식이었고 역사 교육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한국사 수업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한다.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학문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1784년 유득공의 <발해고>에서부터다. 유득공은 고려의 국세가 크게 융성하지 못한 이유로 발해 역사를 편찬하지 않은 이유에서 찾았다. 즉 신라가 통일해 세운 통일신라는 한반도 남부를 차지했으니 남국으로, 고구려가 망한 뒤 그 후예들이 발해국을 세웠으니 한반도 북쪽을 마땅히 북국으로 역사체계를 세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왕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남북국 시대를 중심으로 한 역사체계가 꾸준히 연구되어 왔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식민사관에 막혀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1970년대 이후 다시 거론되기 시작해 1980년대에는 많은 역사 개설서에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가 채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편찬된 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에 '남북국 시대'가 정식으로 설정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남북국 시대 설정은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국사 수업 시간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청소년들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기 위해 방안으로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으로 청소년들에게 올바란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면야 대환영이지만 '시험 만능주의'로 한국사에 관한 흥미 유발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현정부 들어 역사교육 강화를 위한 나름의 의지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지만 동시에 기존 역사 교과서를 자학사관에 기반을 둔 서술이라며 일제 강점기와 독재 시대를 미화해온 일부 학자들의 새 교과서가 정식 교과서로 채택될 것이라는 보도는 보수정권과 뉴라이트 학자들의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우려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대한 논란은 잠시 접어두고 과연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 논란으로 다시 돌아오면 나는 기필코 반대 입장이다. 

 

우선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이 되면 우리교육 현실에서 국사 수업은 또 다시 암기교육의 장이 되고 말 것이다. 최근 삼일절이나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는 중고등 학생들이 많다는 언론보도가 회제가 되곤 했다. 그러나 올바른 역사인식이 연대별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외우는 것만으로 확립될까. 연대 암기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다. 점수를 따기 위해 역사적 사건 자체만 줄줄 외우다 보면 학생들이 한국사에 흥미를 갖지 못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또 시험을 위해 외운 내용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머릿 속에 남아있을까. 내가 남북국 시대를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지만 여태 기억하고 있는 것은 기존에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사실을 접함으로써 생긴 흥미 때문이었다. 그런 흥미 때문에 수업 시간에는 할 수 없는 역사 관련 토론을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수능과 연결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교육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찬성 쪽의 입장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학생들이 받고 있는 입시 스트레스를 생각한다면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은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부담만 안겨줄 뿐 한국사에 관한 흥미는 오히려 더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더욱이 학생들은 입시면접을, 성인들은 입사면접까지 과외로 교육받고 있는 현실에서 국·영·수처럼 한국사 과외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고로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에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진짜로 인식하고 있다면 입시 위주의 한국교육의 틀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요즘 학생들이 역사를 제대로 모른다고 하지만 사실은 현행 국사 교과서에 다 나와있는 내용들이다. 다만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를 수능과 연계하자고 하겠지만 중학교·고등학교, 아니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지만 성인이 돼서 외국인을 만나면 심장만 벌렁거릴 뿐 다문 입이 좀체 벌어지지 않는 것과 똑같은 상황만 재연될 것이다.

 

요즘 학생들이 역사를 모른다고 한탄만 하고 그래서 뚝딱 두드리면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도깨비 방망이같은 정책만 내놓을 게 아니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전시행정이나 탁상공론이 아닌 먼 미래를 바라보는 고민이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만약에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면 세계사 또한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국을 비롯한 세계의 역사는 배우지 않은 채 우리 역사만 배운다면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또한 걱정해야 할 결과가 아닐까. 다민족·다문화 시대에 말이다.


 

허접한 글이지만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강여호를 만나는 방법은 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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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8

  • 예전에 역사를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우리의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죠
    지금에야 그 뜻을 알 듯 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건강 하시고요^^

  • 국사교육강화하자는 사람들은 뉴라이트계열 쪽입니다.
    전통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친일을 깔고 있지요. 이 사람들이 만든 교과서 대로 배우면 국수주의나 자문화중심주의 세계관으로 역사를 볼 수밖에 없겠지요.한심합니다.

  • 글을 읽으면서.. 어찌보면 공부라는 것은 자극.. 배우고자하는 의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교육.. 그 속에는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면 사실 지금의 문제들이 감소될텐데요ㅠㅠㅠ
    저는 느즈막히역사공부의 재미에 빠졌습니다.
    아이들에게 역사공부의 재미를 느낄수있게 해준다면.. 스스로 잘 찾아 배우고싶은 맘이 하늘을 찌를텐데요
    자기힘으로 배운 공부 즉 자기것이 된 공부.. 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수능의 필수교재가 되느냐 마느냐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이것을 모른는 것인지... 주먹구구식의 대책이 더 슬퍼집니다ㅠㅠ
    글 잘읽고 갑니다~~

  • 신수갑산 2013.08.05 08:49 신고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현재 우리의 어린세대들은 역사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외워서라도 어느 정도 역사를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일부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를 배포하여 역사 교육을 하려는 자들을 차단하면서 제대로 된 역사사관을 가지고 교육을 한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사실 억지로라도 외워서라도 을사조약이 무엇인지 3.1절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자연스럽게 이해를 하면서 역사를 배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서 필수과목이 아닌 과목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쓰는 학생은 거의 없을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필수 과목을 지정해야 그래도 조금이라도 역사를 공부하지 않겠습니까. 자기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데 이렇게까지라도 해야 되나라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역사에 대해 관심과 공부를 하려면 이것도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국사를 수능 필수에 찬성과 반성 논리로 가면 뉴라이트계열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하면 너는 아이들에게 역사 가르치는 것을 반대하느냐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수능필수에 찬성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암기식교육 부활은 반대합니다. 한국사를 필수로 하고, 외국어와 수리 영역 점수를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사 점수를 높이는 데, 이를 토론식 공부로 하지 않으면 풀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 저는 고등학교 때, 제일 재미있었던 수업이 국사였었지요. 물론 국사가 대입에 포함되어 있었고요. 선생님들께서 재미있게 수업을 해 주신 덕분이었지요. 입시 위주가 아니라 그야말로 수업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입시위주의 고등학교 수업부터 먼저 고쳐져야 할 것 같습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 체계적이 교육이 필요하지요.
    도깨비 방망이로 뚝딱하는 게 아닌...

    잘 보고가요

  • 좋은말씀 고맙습니다.
    즐겁고 활기찬 한주 되세요. ^^

  • 중요성을 인식이라도 하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요. 6.25나 4.19 이런 게 요즘 아이들에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쯤으로 느껴지나 봐요. 답답하여 역사와 관련된,
    특히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역사와 관련된 책들을 수시로 읽히는데
    은근히 항의하는 부모도 있어요.

  • 각자의 견해가 있는것이니까요.
    여러 의견들이 수렴되는 곳 또한 우리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역효과가 나는 부분도 있고,
    그 역효과와 더불어 예기치 않은 과정들을 겪으며 얻어지는 부분도 있을 것도 같습니다.

    개개인마다 변수가 있겠지만, 보편적인 역사의식과 정보 조차 알지 못하고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걱정 또한 큰 근심거리이지요.
    예전과는 다르게 자극적이고 깊이 없는 표피적인 즉흥거리가 너무나 많은 세상이니,
    이런 흐름속에서 강제성이 지니는 단점도 만만치 않겠지만,
    나름의 계기를 만들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서로 맞물리는 큐브처럼 과정의 불확정성을 감내하고라도
    온전하고 올바른 역사정보와 의식을 고취해
    분쟁의 요소가 아닌 민족문화의 우수성과 자주의식의 토대가
    마련되는 자리매김 속에 제자리를 찾아가길 바랄뿐입니다.


  •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는 이들이 많은데 그렇게 하지 않더라고 존재하는 우리 역사를 외면해서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발해사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 저 역시 윗분보다 몇년 앞선 선지원 후시험 첫세대이면서 까만 교복을 마지막으로 입었던 세대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역사, 세계사를 좋아해서 별도로 책을 공부 안해도 내용을 줄줄이 꿰고 있었는데, 요즘 세대 역사지식 보면 (제 아들을 포함해서) 한심할 지경입니다. 그러면서 옆나라 중국 역사는 한국역사 보다도 더 잘 아네요. 그 나라의 역사는 정말 중요합니다. 저 처럼 외국에서 살다보면 그 나라 역사를 아는것이 수학보다 도움이 더 많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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