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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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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한국 호랑이가 유리관에 갇힌 사연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엔도 키미오 지음/이은옥 옮김/이담북스 펴냄/2009년 메이지 40년(1907년) 1,2월 무렵이었다. 한 마리의 호랑이를 짊어진 조선인들이 목포로 와서 살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리에[入江] 운송점 사장이 호랑이를 살 생각으로 교섭과 상담을 해 드디어 구매를 결정했다. 그 기념으로 모두들 기념촬영을 하려고 하자, 경찰이 오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고 하며 기념촬영이 중단되었다. 전화상으로 무슨 일인가 이유를 물어보자 “이 호랑이는 명찰 불갑사로 이름 높은 영광군의 불갑산에서, 그곳에 살고 있는 농민들이 덫으로 잡은 것이나, 화약 사용의 혐의가 있다. 따라서 잡은 본인들의 자유처분에 맡길 수 없으니 아무쪼록 영광경찰서로 반송해 주길 바라는 바이다.” 그래..
심청은 공동체 살인의 희생양이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 사실은 공동체 살인의 희생양이었단다. 고전 속 심청은 분명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나 소설 속 도화동 사람들은 눈먼 아비를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는 폭력적 이데올로기를 숭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훈육의 결과로 심청이 스스로 희생하였으니 '이념 공동체의 심청 살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념 공동체의 심청 살해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심청이 죽기 전 남긴 대사 어디에도 자신이 죽음으로써 아버지가 눈을 뜬다는 확신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희생이 결국은 아비를 죽게 하고 말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이것은 계약위반이다.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고 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