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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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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명 민주인사의 이중생활 가면/이경자/1990년 1990년대 인기 드라마 중에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1991년 MBC에서 방영됐던 드라마였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이 드라마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 속 ‘대발이 아버지’라는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지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였다. 아무리 호랑이처럼 엄한 가부장적 아버지상이지만 결국에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이 집안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자유분방한 며느리를 들이고 나서 ‘대발이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권위는 조금씩 조금씩 도전을 받게 되는데……. 1987년 이후 달라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코믹하게 그린 이 드라마에서 ‘대발이 아버지’ 역을 맡았던 이순재는 이 인기에 힘입어 국회의원까지 당..
목적이 상실된 현대인의 초상 이상한 정열/기준영/2013년 세족식(洗足式, 카톨릭 교회 의식의 하나)이 열리고 있는 성당, 남자의 시선이 한 여성의 다리를 향하고 있다. 이 남자의 이름은 프란시스코이고 그가 그렇게 집중하고 있던 다리의 주인은 글로리아다. 그 날 이후 프란시스코는 병적일 만큼 글로리아에게 집착한다. 글로리아는 프란시스코의 친구와 결혼할 사이다. 프란시스코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글로리아에게 끊임없는 구혼을 하고 끝내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한다. 프란시스코의 의처증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짧은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프란시스코는 사제의 길을, 글로리아는 라울과 결혼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함께 프란시스코가 있는 성당을 방문한다. 헤어진 아내를 몰래 훔쳐본 프란시스코는..
부자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한 촌철살인의 한마디 섬섬옥수/황석영/1973년 드라마 속 가난한 여주인공 앞에는 늘 '실장님'이 등장한다. '실장님'의 포스는 외모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잘생긴 얼굴에 훤칠한 키, 게다가 상대가 하류인생일수록 더 깍듯해지는 매너까지. 어디 하나 빠진 구석이 없는 완벽한 남자가 드라마 속 '실장님'의 캐릭터다. 또 한가지 뻔한 사실은 '실장님'은 늘 재벌가 2세거나 속칭 잘 나가는 기업의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차세대 실력가라는 점이다. 그런 '실장님'은 꼭 한 여성의 비루한 인생을 책임진다는 게 알고도 속는 인기 드라마의 불편한 진실이다. 결국 그저그런 삶을 살아왔던 여자 주인공은 비로소 신데렐라가 되어 여성 시청자들의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란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노력이 아닌..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치킨 조립공의 비애 나는야 평생 조립공, 통닭을 시켜먹을 때마다 치킨퍼즐을 맞춰본다네 이 부품들은 정품인지 아닌지, 날개를 세고 다리를 세고 조각조각 몸통을 세어본다네 누구보다 완벽하게 조립할 수 있어 나는 평생 조립공 볼트와 너트만 있다면 조각조각 튀긴 저 통닭도 조립할 수 있고 대가리도 없고 발목도 없는 저 닭도 구구구구 깃털도 없고 내장도 없는 저 닭도 퍼덕퍼덕 거대한 전광판 위로 날아오르게 할 수 있어 나는야 평생 조립공. 저 자동차도 내가 조립했고 저 스마트폰도 내가 조립했고 저 에어컨도 내가 조립했다네 심지어는 저 아이들까지도 내가 통닭보다 못한 내가, 닭다리보다 못한 내가, 치킨 조립공이 -유홍준 시인의 '치킨 조립공'- 어제 안철수 원장의 대선 출마선언으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올해 대통령 선거는..
도시도 농촌도 아닌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다 박영한의 /1989년 시골 제비족으로 한때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쿠웨이트 박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MBC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순박한 만수 아빠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최주봉이다. 1989년 방영되었던 KBS 드라마 '왕룽일가'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쿠웨이트 박의 강렬한 인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도시와 농촌의 어정쩡한 중간지대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당시의 표현)의 삶을 그린 '왕룽일가'는 당시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로 박영한의 소설 (1988년작)가 원작이다. 박영한의 소설 은 전작 의 연작이다. 1978년 으로 제2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기도 했던 박영한은 여러 중편들을 모아 와 을 표제로 한 두 권의 연작소설을 발표했다. 각각 세 개의 중편소..
내 청춘의 갈증을 채워줬던 장편소설 5선 요즘 대학생들에게도 낭만이라는 게 있을까 궁금하다.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부모 등골 휘게 만드는 등록금, 사회에 나오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 오히려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가 더 쉬워 보이는 취업전쟁. 청춘의 대명사처럼 통용되던 낭만이 사치로 전락해 버린 현실에 낭만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괜한 미안함에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자기 계발서가 범람하는 현실도 아픈 청춘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면 내 대학시절은 그나마 낭만의 흔적들이 남아있었지 싶다. 당시 낭만이란 단순히 젊은 날의 만끽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현실과 미래의 고민을 유토피아적 상상으로 채워갔던 것도 낭만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장장 12년을 새장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청춘에게 새장 바깥에 존재하는..
그들은 왜 평화극장을 무너뜨려야만 했나 박태순의 /1968년 1960년 4월 26일 오전 11시. 라디오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로 시작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은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월 혁명의 승리를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는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고, 3.15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고, 만일 국민들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이 있기 하루 전인 4월 25일에는 전국대학교수단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평화 시위를..
그들이 분노하고 목적없는 질주를 계속하는 이유 최인호의 /1982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있는 백호빈은 조국의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미국 영주권이 필요하다. 그는 재미교포인 제인과 위장결혼을 한다. 제인도 백호빈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흑인과 결혼해 미국에 와서 지금은 이혼한 상태다. 제인은 백호빈과의 위장결혼으로 영주권을 얻어주는 대신 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둘은 이민국의 감시를 피해 위장된 동거생활을 시작하지만 남녀 사이에 움트는 사랑은 어쩔 수 없나보다. 제인은 백호빈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고...그들의 결말은 제인의 "당신이 갖는 꿈은 이 사막과도 같은 거예요"라는 한마디에 함축되고 만다. 안성기(백호빈), 장미희(제인) 주연의 (1985년)은 두 젊은 남녀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전개되는 희망과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