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립운동

(6)
민족문제연구소, 문창극 조부 대한독립단 대원설 확증 없어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23일 국가보훈처 관계자가 “대한독립단 대원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이 문창극 후보자의 조부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보훈처 관계자가 “문창극 후보는 총리 후보가 된 이후 보훈처에 조부의 독립운동 사실을 문의해 왔다”며 “한자 이름이 동일하고, 원적지가 같은 점, 문 후보자의 부친 증언 등을 미뤄 문 후보자의 조부를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으로 판단했다”고 그 근거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문창극 후보자의 아버지인 문기석(1989년 사망) 씨는 1931년 호주 상속을 받았으며, 생전에 “7세(1921년)때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숨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이같은 보도 직후 국가보훈처의 발표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애국지사..
용龍은 드래곤Dragon이 아니다 문무왕이 승려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겠노라.” 승려는 죽으면 용이 되겠다는 문무왕의 말에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용은 비록 상서로운 동물이지만 그래도 짐승이거늘, 어째서 용이 되겠다고 하십니까?” 문무왕이 대답했다. “만약 내가 업보를 받아 짐승으로 태어난다면 이 또한 내 뜻에 맞느니라.” 대왕암이라고도 불리는 경주 문무대왕릉에 얽힌 설화 한 토막이다. 문무왕의 애국충절과 지극히 인간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설화라고 하겠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것은 용은 상상 속의 동물로 늘 상서로운 존재로만 생각했었는데 문무왕은 인간 세상에서의 업보 때문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게 바로 용이라고 했다. 우리 조상들의 용에 대한 인식은 신성한 상상 속의 동물이면서 친숙한 동물이..
체 게바라 티셔츠 징계, 천박하고 부끄럽다 1951년 아르헨티나의 젊은이 두 명이 모터싸이클을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스물세 살의 체 게바라와 여섯 살 많은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장장 8개월 동안 남미 대륙을 종단한다. 참 '컴백'이라는 강아지와 함께. 그러나 그들이 오토바이로 남미 대륙을 종단하면서 본 것은 낭만이 아니었다. 헐벗고 기본적인 의료혜택도 못받고 있는 남미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난한 남미 민중들의 삶을 체험하며 그들이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상상하고 고민한다.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체 게바라가 사망한 1967년, 당시의 오토바이 여행을 그린 책 을 출간한다. 한 영웅, 체 게바라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여행을 그린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바로 이 ..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했던 작가의 생생한 현장 기록 김학철의 /1946년 1938년 중국 우한에서 조직된 항일무장투쟁 부대인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옌안[延安] 지역으로 이동해 중국공산당과 연합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는데 이 부대가 훗날 조선의용군의 모태가 되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무장단체인 조선의용군은 치열했던 항일 투쟁사만큼이나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고발해 주고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북한에서는 소위 말하는 '연안파 숙청'의 당사자가 조선의용군 출신들이었고 남한에서는 '반공'이라는 국시 아래 철저하게 외면당한 독립운동단체가 바로 조선의용군이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조선의용군을 비롯한 중국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무장투쟁단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세월과 시대의 외면 속에 당시의 기록들이 온..
판타지로 읽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꿈 신채호(1880~1936)의 /1928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씨가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땅 찾기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하고 있는 현실과 반대로 남편은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신채호 선생의 아들임을 밝히기 위해 기나긴 법정투쟁을 벌여야만 했던 현실을 개탄하며 한 말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국이 광복된 지 64년이나 지난 2009년에야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다. 앞서 1986년 호적을 취득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부심에 살았어야 할 신채호 선생 후손이 자부심 대신 사치를 얘기한 현실에 가슴 아플 뿐이다. 20세기 초 1,2차 세계대전..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자 인도 고전 “저 신문쟁이들을 몰아내라. 잡지쟁이, 연극쟁이, 라디오, 텔레비전쟁이들을 모두 몰아내라. 그놈들 우리 울음 울어 달라고 내세웠더니 도리어 우리 입 틀어막고, 우리 눈에 독약 넣고, 우리 팔다리에 마취약 놓아버렸다. 그놈들 소리한댔자 사냥꾼의 개처럼 짖고, 행동한댔자 개의 꼬리 치듯이 할 뿐이다. 쫓아내라. 돌로 부수란 말 아니다. 해가 올라오면 도깨비는 도망가는 법이다. 우리가 울어야 한다. 우리가 울면 우리 소리에 깰 것이다. 힘도 우리 것이요 지혜도 우리 것이다. 그것은 참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함석헌 선생이 1970년 창간한 에 실린 글 중 일부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새 단장을 한 오늘에도 선생의 외침을 쉬 잊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비정하게 느껴진다. 바가바드 기타(오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