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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01 어느 유명 민주인사의 이중생활 (5)

가면/이경자/1990

 

1990년대 인기 드라마 중에 <사랑이 뭐길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1991 MBC에서 방영됐던 드라마였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이 드라마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 속 대발이 아버지라는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지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였다. 아무리 호랑이처럼 엄한 가부장적 아버지상이지만 결국에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이 집안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자유분방한 며느리를 들이고 나서 대발이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권위는 조금씩 조금씩 도전을 받게 되는데……. 1987년 이후 달라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코믹하게 그린 이 드라마에서 대발이 아버지역을 맡았던 이순재는 이 인기에 힘입어 국회의원까지 당선되기도 했다.

 

이 드라마가 종영된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대발이 아버지라는 캐릭터만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적잖이 언급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짐작컨대 남성들은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향수 때문에, 여성들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대발이 아버지의 캐릭터는 막 아침상을 받은 이 남편과 비슷했을 것이다.

 

시금칫국 언제 끓인 거야!”

어제……

당신이 하는 일이 뭐야! 남편하구 자식 둘, 그리고 세 사람 시중 하나 제대로 못하겠어?당신이 하는 게 뭐 있어? 집구석에서 빈둥빈둥 뭘 해? 반찬이라두 입맛에 맞게 해야 할 거 아니야. 집구석에 처박혀서…… 난 뭐 편하게 사는 줄 알어? 세상물정 하나두 모르는 게……” –소설 <가면> 중에서- 

 

 ▲ 사진>구글 이미지 검색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이경자의 소설 <가면>의 일부분이다.’빈둥거리고’ ‘세상물정 모른다는 남편 성민의 경멸에도 아내 민희는 무조건 참는 것으로 역할이 정해졌다. 그렇게 참아내면 적어도 피를 말리는 냉전이나 모욕적인 외박이나 기물·집기의 파손 따위는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남편이지만 밖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 그동안 우리 운동에서 여성문제를 소홀히 다룬 건 뭐랄까. 우리 운동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인류의 역사가 인간해방의 역사 아닙니까? 인간의 전면적 해방은 여성해방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확신해요. 체제모순·민족모순·성모순의 삼중 모순에 고통받는 여성들의 척박한 삶이 어찌 보면 우리 사회 발전의 척도일지 모릅니다……” –소설 <가면> 중에서-

 

남편 성민은 암울했던 80년대를 온몸으로 부딪치고 살았던 소위 민주인사. 소설은 87 6월 항쟁을 기점으로 국민주권시대가 도래한 1990년대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민주권시대는 단순히 국민이 정치적 선택을 직접 한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동안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자행되었던 각종 차별과 편견을 타파하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회복하게 되었다는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과연 그런 바램들은 새로운 시대에 현실이 되었을까? 소설에서 80년대 민주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정치적으로는 쟁취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구습들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할 수 있겠다.

 

남편이 밖에서는 민주인사로 행세하고 안에서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이중생활, 이중성격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지나치리만큼 극단적이다. 가정에서 여성, 아내가 받는 차별에 대해 가정부와 다른 것은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요, 매춘부와 다른 것은 남자(남편)의 아이를 낳아 호적에 올렸고 화대를 받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제목 가면은 밖에서는 여성해방론자이지만 가정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권위만 내세우는 남편(남자)의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남편 성민의 수상식장에 동행한 아내 민희가 많은 지지자들 앞에서 웃는 남편을 보고는  이제 나는 너의 거짓을 안다!’며 몸서리치는 마지막 장면은 여성인 저자가 여전히 차별과 편견을 버리지 못한 사회를 향한 소리없는 외침이다.

 

앞서 오래 전 드라마 속 대발이 아버지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는 경우에서 보듯 요즘 남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느니, 여성상위시대라느니 하는 볼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정말 남녀평등을 넘어 되레 남성을 차별하는 시대까지 오고 말았다는 것일까? 사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졌던 사람이 하나 둘 내놓으면서 하는 투정에 가깝다. 성평등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인격체로서 가지는 권리의 동등한 분배가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상징으로써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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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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