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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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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도 떨게 만든 동장군의 위세 겨울 추위를 표현하는 우리말 한여름 숨쉬는 것조차 힘들게 했던 햇살이 어느덧 기다림과 갈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번 힘을 잃은 더위는 빠른 속도로 추위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푸릇푸릇해지는 봄날 담벼락 아래 앉아 봄볕을 벗삼아 망중한을 즐기는 병아리마냥 틈만 나면 햇살이 비치는 양지로 양지로 빼꼼히 고개를 들이미는 요즘이다. 사막을 방불케 했던 여름만큼이나 올 겨울은 한파에 눈까지 많이 내린다고 하니 일찌감치 월동 준비라도 해야지 싶다. 지난주에 이미 대관령에는 얼음이 얼었다고 하니 오색 찬란한 가을을 즐기려는 인간을 향해 동장군(冬將軍)의 질투가 시작되었나 보다. 올 겨울도 어김없이 동장군의 위세가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게 될 것이다. 겨울을 맞이하는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이미 예상되긴 했지만 그래..
책이 무서운 당신이 책과 친해지는 방법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김은섭/지식공간/2012년 2002 한일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인 5월 어느 날에 대전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으니 벌써 햇수로 11년이 되었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고 일 년에 몇 번 찾는 고향이 때로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낯선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음식만한 게 있을까. 대전에 내려와 1년 가까이를 맛집 탐방에 열심이었던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당시 가장 자주 찾았던 식당이 바로, 으느정이 거리가 끝나고 삼겹살 골목이 시작되는 지점 모퉁이에 자리잡은 춘천 닭갈비였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라 대전이라는 낯선 이름과 친해지기에는 딱 알맞은 장소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지 익숙함은 때로는 게으름으로 표현되기도 하나보다. 타향의..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나의 하루는 어둠이 내리고서야 시작된다. 벌써 2년째다. 토요일을 제외하곤 늘상 다른 사람들이 하루의 노곤함을 풀 시간에 나는 출근 준비를 한다. 어김없이 저녁 여덟 시가 되면 버스에 몸을 싣는다. 특히 일주일의 피로를 풀기 위해 둔산동 일대가 왁자지껄해지는 금요일 밤의 출근은 여간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먹고 사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 것을. 어쨌든 가방에는 늘 두 권의 책을 넣는 게 출근준비의 전부다. 버스는 항상 맨 뒤에 자리를 잡는다. 직장이 40분 정도 되는 거리의 종점에 가까워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으면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 좋다. 다행히 둔산동에서 신탄진간 버스노선은 이용객이 거의 없어 서서 가는 경우는 드물다. 40분 동안은 책과 벗할 수 있는..
도진개진 인생들의 도토리 키재기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치숙』/「동아일보」(1938.3.7~14)/창비사 펴냄 ‘도진개진’이라는 말이 있다. 윷놀이에서 도가 나오나 개가 나오나 거기서 거기란 뜻일 게다. 표준어인지 사투리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 중 하나다. 한자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와 같은 말이다. 도토리가 제 아무리 크다 해도 재보면 다 고만고만하다는 뜻이다. 도진개진 인생들, 도토리들만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채만식의 『치숙(痴叔)』은 폼나는(?) 인생들이 너 잘났냐, 나 잘났다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채만식은 이들을 고만고만한 도토리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들이 채만식에게 밉보인 이유를 들어보자. 채만식의 풍자는 전방위적이다. 『치숙』에서는 등장인물 모두가 풍자의 대상이 된다. 등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