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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12 발치의 고통으로 탄생한 주옥같은 시 한 수 (10)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조류 중에 가장 활공을 잘한다고 새다. 오래 전부터 서양에서는 알바트로스에 관한 미신이 전해 내려온다. 선원들이 항해 중에 가장 두려워하는 새가 알바트로스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알바트로스를 죽이면 재수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알바트로스를 잡아 먹었다고 한다.

 

"뱃사람들은 종종 장난 삼아/ 거대한 알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동행자인 것처럼 뒤쫓는 이 바다 새를/ 갑판 위에 내려놓은 이 창공의 왕자는 서툴고 어색하다/ 가엾게도 긴 날개를 노처럼 질질 끈다/……/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던/ 구름의 왕자를 닮은 시인/ 땅 위의 소용돌이에 내몰리니/ 거창한 날개조차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평생 단 한 권의 시집만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년~1867년)는 소위 '악마주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단 한 권의 시집인 <악의 꽃> 때문이다. 그의 시는 원죄의식과 이상주의적 순수미가 혼재되어 있다. 그러나 그만의 시적 표현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다느니, 세상의 미풍양속을 해쳤다느니 따위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위에서 언급된 보들레르의 시에서 알바트로스는 보들레르 자신을 얘기한 듯 하다. 이상을 꿈꾸지만 그래서 늘 비주류밖에 될 수 없는 현실. 그러나 보들레르가 '악의 꽃'으로 비유한 유럽의 실상은 어땠는가. 보들레르가 죽은 후 20세기 유럽은 세계대전의 진앙지가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추악한 세상, 내가 일어서기 위해 타인을 밟아야만 하는 현실, 정의보다는 불의에 아부해야 온전히 살 수 있는 세상, 하루가 멀다하게 신기술이 삶의 편리성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지만 그 반대편에는 전쟁과 기아로 오늘만을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문득 이 세상이 시인들로 가득하다면 늘 아름다운 꿈만 꾸고, 더러운 우물에서는 단물이 쏟아지고, 희뿌연 하늘에는 낮에도 별들이 반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불타는 가뭄 뒤에 내리는 단비를 보며 홍수를 걱정해야 하듯 일상이 비루하고 팍팍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들로 넘쳐나는 세상을 꿈꾸며......
 

세계적인 자연유산 금강산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 한편이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뒷이야기에는 살벌한 사연이 숨어있다고 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이다.

팔도를 유람하며 수많은 아름다운 글을 남겼던 김삿갓은 어느날 금강산 입석봉 아래 암자에 시를 잘 짓는 승려가 있는데 패자의 이빨을 뽑는 조건으로 시 짓기 내기를 즐긴다는 얘기를 듣고 그 승려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동안 이 승려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한다. 김삿갓과 승려는 서로 되받는 형식으로 시 짓기 내기를 시작했는데 마침내 김삿갓이 이겨서 그 승려의 이빨을 뽑았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발치의 고통이 잉태한 아름다운 시 한 편. 

살벌한 뒷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입석봉에서 두 호걸이 쏟아내는 싯구는 감히 주옥같다는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찾아내지 못한 내 어휘력에 한탄할 뿐이다. 

검정색 부분은 승려, 파란색 부분은 김삿갓이 읊어가면서 서로 댓구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달리 불리는 금강산,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의 사진과 함께 감상해 보시길...

 

아침에 입석봉에 오르니 구름이 발 아래 일고

저녁에 샘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리는구나

시냇가의 소나무 남쪽으로 누우니 북풍이 부는 줄 알겠고

난간의 대나무 기둥 동쪽으로 기우니 해 저문 것을 알겠구나

 

절별이 제아무리 위태로와도 꽃은 웃으며 서 있고

봄볕이 제아무리 좋아도 새는 울며 돌아가도다

 


하늘에 하얀 구름 흐르니 내일은 비가 오겠고
바위틈에 나뭇잎 지니 올 가을도 지남을 알겠네

남녀가 짝짓는 덴 기유일(己酉日)이 가장 좋고
밤중에 아이 낳은 덴 해자시(亥子時)가 최고로다

그림자 녹수에 잠겼으되 옷은 젖지 않고

꿈속에 청산을 걸었지만 다리는 아프지 않도다

 


까마귀 떼 나는 그림자에 온 집안이 저물고

외기러기 우는 소리에 온 세상은 가을일세

가죽나무 부러지니 달 그림자 난간에 어리고

참미나리나물 맛 좋으니 만산에 봄빛이라

돌은 천년을 굴러야 땅에 떨어지고

산봉우리는 한 자만 자라면 하늘에 닿겠구나

 


청산을 얻었으니 구름은 거저 얻고

맑은 물에 이르니 고기가 절로 오누나

가을 구름 만리에 펼치니 고기 비늘 하얗고

마른 나무 천년을 묵으니 녹각이 높도다

구름은 나무하는 아이 머리 위에서 일고

산은 빨래하는 아낙네 손안에서 울리누나

산에 오르니 산새가 쑥국쑥국 울고

바다에 이르니 물로기가 풀떡풀떡 뛰노누나

 


물은 은절굿공이가 되어 절벽을 찧고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 되어 청산을 재도다

달빛도 희고 눈도 희니 온 천지가 희고

산도 깊고 물도 깊으니 객수 아니 깊으리오

등을 켜고 끔으로써 낮과 밤을 구분하고

산 남쪽과 북쪽으로 음지 양지 가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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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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