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너는 나다/손아람·이창현·유희·조성주·임승수·하종강 지음/레디앙·후마니타스·삶이보이는창·철수와영희 펴냄

 

한동안 뜸 하더니 오랫만에 수능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안 그래도 떨고 있을 수험생들인데 날씨마저 이 모양이니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떨지 마시라. 젊음이 있고 열정이 있는데 이 비루한 세상 어떻게든 헤쳐나가지 못하겠는가 말이다. 가슴에는 꿈을 품고 눈은 문제에만 집중하시라. 세월이 흘러 그대들이 이 땅의 자랑스런 노동자가 되는 날에도 세상이 여전히 비겁하겠느냐 말이다. 맞다. 오늘은 수험생 그대들의 날이기도 하지만 그대들의 미래,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몸을 불사른 지 44년이 되는 날이다.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그것이 바로 윤회의 사회적 의미이다. 우리는 앞선 시대로부터 비롯된 사소하거나 중요한 변화들을 완전하게 상속했다. 전태일은 모든 전태일의 적자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가진 이름이 전태일과 다를 뿐이다. 이 이야기는 '전태일씨, 지금 잘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 질문을 올바르게 고쳐 써야 할 차례다. 내가 원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습니까? -<너는 나다> 중에서-

 

▲ <너는 나다> 

 

감각적인 색으로 도배된 미디어와 위정자들의 '선진국' 타령으로 우리는 지금 심각한 착시 현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현실인 기사 한 편이 작은 충격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오늘자 경향신문은 전태일 열사가 몸 담았던 의류 업계 노동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의류 노동자 인턴 월급이 30~60만원으로 일당으로 치면 1만~2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게다가 하루 14~16시간 노동하며 휴일도 한 달에 이틀 정도 뿐이란다. 복지 여건도 열악해서 인턴 노동자 대다수는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4대 보험을 들어준 회사도 거의 없으니 산재가 나도 고스란히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처지다. 게다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나 업체들도 드물다고 하니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44년 전과 지금의 노동자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백화점을 화려하게 장식한 100만원짜리 옷을 만들어도 일당은 고작 2만원에도 못 미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비단 의류 노동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24시간을 뜬 눈으로 근무해야 하는 경비 노동자들의 급여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는 보도는 수도 없이 흘러나오고, 인간적인 모욕까지 감내하며 생계의 끈을 이어가다 끝내 자살을 선택한 경비 노동자도 있다. 알바(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떤가? 그야말로 노동법의 사각지대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최저 시급은 물론 주휴 수당까지 착복당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다들 집에서는 사랑스런 아들이고 딸인데 사회에 정식으로 첫 발을 내디디기도 전에 불신을 배우고 증오를 배워야 하는 현실이다.

 

태일이는 참 사람을 좋아했어야. 이 말 하니까 생각난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열사님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게 말이냐?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열사겠냐. 그냥 아들이다. 태일이는 열사도 투사도 아닌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야. -<너는 나다> 중에서- 

 

사진> 한겨레 

 

아직도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은 둘째 치고라도 노동 취약계층을 보호다는 명목으로 만든 최저임금이 이제는 노동자를 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1988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니 벌써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기업의 저임금 구조를 정당화시켜 주는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모자라지만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니 기업들은 최저임금 노동자만 양산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최저임금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생활임금제다. 

 

학벌이 좋든 아니든 다 그런 고민을 해요. 몇 명은 지금 외국으로 떠난 친구들도 있고, 친구 한 명은 이번에 모 대학 언론학부를 졸업했고 인터넷 관련 업체에 붙었어요. 그래서 정규직으로 입사하기 전에 회사에 연락해서 사원에게 제공하는 복지 혜택 같은 것을 물어봤대요. 월급이 얼마고, 뭐 이런 식으로 물어봤더니 두 시간 만에 다시 전화가 와서는, '귀하는 되게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했으므로 탈락'이라고 하더래요. 복리후생이 어떻고, 휴가는 어떻고, 이런 식으로 그냥 물어봤을 뿐인데 회사에서는 '붙여 줬으면 잔말 말고 일이나 하지 왜 그런 걸 물어보냐' 그런 식으로 나오면서 그만두라고 했대요. -<너는 나다> 중에서-

 

현재 4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63만원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108만원으로 최저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생활임금제는 '주거·교육·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임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부천시를 필두로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생활임금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보수 신문과 경제지들은 경제도 어려운데 생활임금 타령이냐고 타박한다.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 실질임금이 이미 마이너스가 된 시대인데도 권력과 언론은 한통속이 되어 전방위적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해 온다. 게다가 대통령의 허무맹랑한 '좋은 일자리' 공약은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공약空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고용률 70%라는 의미없는 통계를 만들고 싶었나 보다.

 

계약직 여자애들이 하는 그런 일이 있나 봐요. '빠른 텔러'라고 하는 모양인데……. 안정직인 계약직이 말이 되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꾸준히 2년 동안 안정적으로 옮겨 다니고 싶다고 그래요. 자신이 정규직이 될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에……. -<너는 나다> 중에서-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라는 부제가 붙은 <너는 나다>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한 책이다. 책은 고유명사 '열사 전태일'을 이웃을 사랑한 형, 오빠' 같은 보통명사로 만들려는 시도가 담겨있다. 40년 전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삶은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다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반세기가 다 되도록 이런 전태일 열사의 꿈은 요원해 지고만 있다. 오히려 권력과 자본과 언론의 3자 공동기획으로 노동자를 탄압하는 수법만 교묘해 지고 있을 뿐이다. 이 시대 전태일들이 또 다른 전태일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딱 하나일 것이다. 한때 유행가처럼 망각의 늪으로 빠져 버렸지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고, 사람다운 삶에 대한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미래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질문이 될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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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에 변명하지 말라'라는 자기계발서는 일하는데 있어 복지나 휴가 등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그런걸 따지는 사람은 일 열심히 하지도 않을 똥개라고 비하하던데, 전 그런 책의 이야기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진짜 일이 필요한 사람은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인데 그들에게 복지가 중요하지 않다는건 말도 안되거든요. 제가 이 책 리뷰하면서도 아주 혹평했지만 이런 책이 우리나라에서 인기 자기계발서로 버젓이 팔리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 제 주위에도 형편없는 월급으로 생활 하시는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중소기업 사장님 한분은 4대보험 넣고 급여 제대로 주면
    회사 운영하기가 힘이 든다고 합니다
    원청 업체에서 납품가격을 계속 깎아서..
    결국 대기업의 횡포아래 ...
    아래로 아래로 내려 가는 현실입니다

  • 아...오늘이..벌써 44년이나 되었네요..
    영화카트보고나온길인데.. 그때나 지금이나..여전이 일하는사람들에게 공평한세상은 아니여요..
    그래서 더 아픈 오늘인듯해요..

  • '너'가 '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린 이렇게 서로서로 외롭겠지요?
    너와 나, 그리고 우주만물 모두가 공생공존하며 살아가는 인생이어야 한다던
    친정아버지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건이 좋아진건 없어 보이네요..
    삶의 질은 더 떨어진듯 하고요..ㅠㅠ

  • 해바라기 2014.11.13 20:14 신고

    "너는 나다'우리시대 응원을 한다. 책을 읽어봐야겠네요.
    전태일 열사 44주기가 되었군요. 이 땅에 억압받는이 없이 평등한 임금을 받고
    사는 세상을 염원해 봅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

  • 전태일은 큰 별이었습니다.
    잠자는 이기주의 기득권의 양심을 깨운....

  • 전태일씨가 있던 시대나 현 시대나 달라질게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뿐입니다..
    오히려 더 진화했다고 해야하나...

  • 자본은 '탐욕'을 삶의 1원리 삼습니다. 그 자본에 길들여진 우리네 인생은 자본을 비판하면서 자본이 되기를 바랍니다.

  • 대한민국 노동현실은 전태일 이전과 전태일 이후로 나뉘지요.
    그만큼 큰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전태일 정신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절이거늘...
    휴우...
    아직 갈 길이 멉니다....

  • 참 답답하고 속상한 현실이죠...
    저 역시 그런 구조 속에서 절대 예외이지 않고요....
    이 책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 그의 뜨거운 희생도 지금 현실은 비웃듯이 쓰디씁니다.
    노동자들의 삶은 철저히 잔인하게도 자기노예화가 될 수 밖에 없을 사회의 부패와 도둑 정치와 썩은 윤리에 짓밟히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소리쳐야 할 때 소리치지 않은 대가로 되돌아온 부메랑은 현재 그리고 내일의 우리 모두의 목을 겨누고 옵니다. 그것이 슬픕니다.

  • 여강여호님, 안녕하세요 박노해 시인 책을 만드는 느린걸음 출판입니다. '40년 전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삶은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다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라는 글이 오래도록 마음을 울리네요.. 올해는 노동의 새벽이 출간된지 30년째 되는 해이군요. 여강여호님의 지난 '노동의 새벽'관련 글이 참 좋아서 저희 블로그에 허락도 없이 그 중 한 문장을 옮겨갔습니다(http://blog.naver.com/slow_foot/220179578012). 올리기 전에 먼저 연락드렸어야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난 후에야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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