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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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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신과 프로스트의 '길'을 통해 본 희망의 본질 고향/루신(魯迅, 1881~1936, 중국)/1921년 고향의 이미지는 흡사 어머니를 떠올린다. 생명의 근원이면서 끝없는 회귀 본능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고향은 늘 그립고 애틋하다. 오죽했으면 수구초심(首丘初心)이나 호마망북(胡馬望北)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면 제 살던 언덕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고, 호나라의 말도 호나라에서 북풍이 불어올 때마다 그리움에 북쪽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하물며 미물인 여우나 말도 이럴진대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평생을 외지에 떠돌다가도 나이가 들고 죽을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것이 인지상정이다. 타향에서 화려한 사후를 맞느니 고향 땅 어딘가에 한 줌의 흙이 되고픈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한편 누구든 태어난 곳이 따로 있지만 누구나 ..
새끼를 잡아먹는 어미 금붕어가 상징하는 것 옥천 가는 날/김 숨/2011년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언덕 쪽에 머리를 둔다는 뜻이다. 비단 동물뿐일까. 아니 동물도 이럴진대 인간이야 오죽하겠는가. 인간은 늘 고향이라는 대상을 그리워한다. 나이가 들어 세상과 이별해야 할 때 누구나 할 것 없이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는 나의 흔적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존재가 한낱 기계 부속품화 되어 자기 정체성이라곤 작은 바람에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현대사회에서 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향의 존재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단 하나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나의 존재가 비롯되는 곳, 고향은 바로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다. 김 숨의 소설 은 인간의 회귀본능, 즉 근원으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현대인의 자화..
기름 보일러 때문에 불효자의 겨울은 더디더디 김종광의 /2011년 어느 시골 농가 주름이 깊게 패인 아버지가 소를 몰고 들어온다. 어머니는 맨손으로 두껍게 언 얼음을 깨느라 분주하다. 방에 들어온 노부부는 아랫목에 손을 녹이고는 짧은 대화를 나눈다. “에이그, 방이 왜 이래” “이 추운데 애들 고생이나 안하는지, 원” 다시 눈쌓인 농가가 화면에 잡히고 자막과 함께 며느리로 보이는 어느 여인의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여보, 아버님 댁에 XX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1990년대 어느 보일러 전문기업의 TV광고는 이렇게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카피로 인기를 끌었다. 이 광고는 ‘따뜻한 사회 만들기’라는 공익적 성격을 띠면서 다양하게 진화해갔다. 자사 제품의 홍보 대신 전통적 윤리의식을 강조한 카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광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
고향을 버려야 하지만 버릴 수 없는 사람들 이호철의 /1955년 작가 이호철은 원산이 고향인 실향민이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으로 동원되었다가 국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단신으로 월남해 부산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때 그는 부산항 부두 노동자로 일하면서 김동리의 소설 배경이 된 밀다원 다방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호철의 데뷔작 은 당시 부산항 부두 노동자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 이호철의 단편소설 은 전쟁의 충격으로 허무주의와 패배주의로 점철된 당시 전후소설들과는 사뭇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이는 실향민으로서 낯선 타향에서 홀로 서야만 했던 저자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고..
금지된 사랑과 실천하지 못했던 지식인의 고민 이효석(1907~1942)의 /「춘추」4호(1941.5) 혹자는 이효석의 작품 중 세 편을 골라 ‘영서 삼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묶기도 한다. 이효석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을 비롯해 영서지방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일컫는 말일 게다. ‘영서 삼부작’은 (1936), (1937), (1941)으로 이 소설들에는 공통적인 주제가 있다. 고향과 핏줄과 근대화를 수용하지 못한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일제의 사상탄압과 위선적 문화정책이 시작되던 시기라는 점과 동시에 이효석의 말년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효석은 말년에 왜 그토록 향토적 묘사에 집착하였을까? 사실 이효석은 대학 졸업 후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조선총독부 검열계에 취직할 만큼 현실인식이 투철하지는 못했다. 한..
고향에는 슬픈 신작로가 있었다 현진건의 /1926년 우리네 길은 꼬불꼬불 지루함이 없다. 굽이돌아 해가 드는 모퉁이에는 느티나무를 그늘삼은 큼직한 돌멩이가 있어 나그네의 쉼터가 되었다. 불쑥 튀어나온 어릴 적 벗이 더없이 반가웠다. 모퉁이를 돌아 마주친 낯선 이와도 엷은 미소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런 길이 어느 날 논을 가로지른 아지랑이 너머로 끝이 가물가물한 지루한 길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길을 ‘신작로’라 불렀다. 누구나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고향에는 신작로 하나쯤은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신작로를 60,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생겨난 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신작로는 그 이전부터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수탈한 식량을 원활하고 신속하게 운송하기 위해 우리네 꼬불꼬불했던 길을 쭉 잡아 늘어뜨린 길이 신작로였다. 신작로에는..
21세기에 20세기 소월이 더욱 그리운 이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많은 이들은 주저없이 소월 김정식을 꼽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1세기가 가까워 오지만 소월의 시 마디마디에는 여전히 수천년간 심장 깊숙이 새겨진 한국인의 정서가 오롯이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소월이 남긴 많은 시들은 노래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부모', '진달래꽃', '산유화',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초혼', '엄마야 누나야' ... 그러함에도 소월이 20세기 과거 인물임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소월이 떠난 후 우리 사회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격언이 무색할 정도의 변화를 거듭해 왔다. 이 변화는 빛의 속도로 미래를 압도할 것이다. 변화와 더불어 한민족이라는 순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