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우리가 흔히 아는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주인으로 근엄함과 권위의 상징이다. 그런 제우스가 사실은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바람둥이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부인은 물론 자식만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다. 그렇다고 제우스의 바람 상대와 자식들이 모두 생소한 이름들은 아니다. 대부분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급이자 최소한 조연급 이상은 된다. 물론 헤라 여신이 제우스의 공식적인 아내로 알려져 있지만 첫번 째 부인은 아니었다. 제우스의 첫 바람 상대는 티탄족인 메티스로 지혜와 기술과 술수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는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메티스에게 구애한 끝에 바람둥이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한편 제우스가 메티스를 일방적으로 사랑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메티스, 제우스의 형제들을 구하다


크로노스는 자신도 아버지 우라노스처럼 훗날 자식에 의해 폐위당할 것이라는 가이아의 예언을 듣고 아내 레아가 자식들을 낳자마자 집어삼키는 엽기적인 행각을 일삼았다.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사라진 자식들이 포세이돈, 하데스,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였다. 다행히 어머니 레아의 기지로 막내 제우스만은 살아남았는데 제우스가 태어나자 돌을 보자기에 싸서 남편 크로노스에게 건넸던 것이다. 레아는 여섯 자식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우스를 아이가이온산의 깊은 숲 속으로 데려가 아말테이아라는 염소에게 맡겼다. 또 숲 속의 정령들은 칼을 부딪치고 방패를 요란하게 두드리면서 크로노스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아말테이아와 숲 속 정령들의 보호를 받은 제우스는 무사하게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제우스는 신탁대로 아버지 크로노스를 폐위하고 자신이 신들의 왕이 되기로 결심했다. 제우스가 우선 해야 할 일은 크로노스가 삼킨 형들과 누이들을 찾는 일이었다. 이 때 제우스를 도왔던 신이 바로 메티스였다. 메티스는 제우스에게 구토제를 건넸다. 제우스로부터 구토제를 받은 레아는 남편 크로노스에게 술로 속여 구토제를 마시게 했다. 구토제를 술로 알고 마신 크로노스는 예전에 삼켰던 자식들과 돌을 토해냈다. 제우스가 비록 막내였지만 나머지 형제들이 태어나자마자 크로노스의 뱃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바람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제우스에게 크로노스의 후계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제우스는 메티스를 일방적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첫 번째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낳다

 ▲아테나의 탄생.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완전무장한 채로 태어나는 순간 


메티스는 1세대 티탄족인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로 '지혜의 신'으로 불린다. 아마 헤시오도스의 언급 때문일 것이다. 헤시오도스는 그의 저서 <신들의 계보>에서 메티스를 "인간과 신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묘사했다. 제우스가 왜 메티스에게 그렇게 집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형제들과 누이들을 구출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주인으로 등극하는데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제우스의 메티스에 대한 구애는 그야말로 처절했나 보다. 그럼에도 메티스는 한 번 져줄만도 한데 왜 끝까지 제우스를 거부했을까?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메티스는 제우스의 자식을 임신하게 되었다.

집안 내력이었을까? 아버지 크로노스가 그랬듯이 제우스도 엽기적인 행각을 이어갔다. 메티스가 제우스의 자식을 임신하자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린 것이다. 제우스의 대를 이은 이해할 수 없는 행각은 바로 신탁 때문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자 숙명이었다. 크로노스의 어머니 즉 제우스의 할머니인 가이아의 신탁은 이랬다. 제우스가 딸을 낳게 되면 그 딸은 제우스와 대등한 힘을 갖게 될 것이며,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은 제우스를 능가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권력욕에 사로잡혔다 치더라도 어떻게 자신의 자식을 임신한 아내를 삼켜버릴 수가 있을까? 신화 속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제우스가 메티스를 삼켜버린 후 제우스의 몸에서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메티스가 밴 아기는 제우스의 몸 속에서 계속 자라나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제우스는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자신의 이마를 찍어 머리를 열었다. 이 때 제우스의 갈라진 머리에서는 완전무장한 여신이 튀어나왔는데 바로 지혜의 여신 아테나였다. 즉 아테나는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이었다. 훗날 가이아의 신탁대로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제우스를 능가한다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아테나를 임신한 직후 메티스를 삼켜버렸으니 또 다른 자식을 임신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제우스가 메티스를 통째로 삼켜버린 사건은 제우스에게는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강력한 힘에 메티스의 지혜까지 섭렵함으로써 진정한 신 중의 신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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