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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6.11 에레보스와 다섯 개의 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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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도포를 입고 핏기 없는 흰 분장을 한 남자가 다짜고짜 어느 사내의 방에 들어와 명부를 펼쳐 신분을 확인하고는 같이 대동할 것을 명령한다. 사내는 절대 따라가지 않겠다고 버텨 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이내 말없이 남자를 뒤따른다. 한참을 걸어 안개가 자욱한 강가에 이르러 흰 분장을 한 남자는 사내에게 마음을 다잡을 것을 충고하고는 사내를 데리고 조용히 강을 건너면서 화면이 바뀐다.


어릴 적 이불을 뒤집어 쓰고 보았던 '전설의 고향'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다. 저승사자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데려가는 장면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모든 살아있는 자들이 느끼는 인지상정의 감정이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인간은 사후세계에 대한 많은 상상을 쏟아내 왔다. 우리네 그 상상이 저승사자였다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에레보스와 타나토스였다. 에레보스(Erebus)는 어둠의 신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에레보스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암흑세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저승 혹은 무한 지옥은 타르타로스(Tartarus)였다. 이 모두를 관장하는 신이 하데스(Hades)였다. 그리고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 즉 우리의 저승사자에 해당하는 신이 바로 타나토스(Thanatos)다. 


에레보스(암흑). 출처>구글 검색


에레보스는 카오스에서 바로 생겨난 태초의 신 중 한 명이다. 밤의 여신 닉스와 결혼해 아이테르(공기)와 헤메라(낮)를 낳았다. 사실 신이라는 의미보다는 암흑을 지칭하는 말로 의인화된 신으로도, 저승의 일부로도 언급되기도 한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가이아(대지), 타르타로스(무한지옥), 에로스(사랑), 에레보스(어둠), 닉스(밤)은 어떠한 결합도 없이 태초부터 존재했던 신이라고 한다. 


태초의 신 에레보스와 닉스의 결합으로 태어난 신은 아이테르와 헤메라 뿐만이 아니었다. 모로스(운명), 케레스(죽음), 타나토스(죽음), 히프노스(잠), 모모스(비난), 오이지스(재앙)  등으로 많았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건너야 할 강의 뱃사공 카론도 에레보스와 닉스의 자식이었다. 하지만 죽은 자들의 영혼이 건너야 할 강은 단 하나만이 아니었다. 이승과의 완전한 결별을 위해서는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했다. 이 때 죽은 영혼들을 인도하는 신이 타나토스였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처음으로 건너야 할 강은 아케론(Acheron)이었다. 이 강의 뱃사공이 바로 카론이었다. 이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노잣돈이 필요했다. 그래서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체의 입에 동전 하나를 넣었다고 한다. 아케론은 '슬픔의 강'이다. 이승과 이별의 첫 단계는 바로 슬픔을 버리는 것이다.


두번째 건너야 할 강은 일명 '통곡의 강'이라는 코퀴토스(Cocytos)다. 슬픔을 버렸다고 해서 죽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까? 한바탕 크게 울어보는 것도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이다. 코퀴토스를 건너면 세번째 강 플레게톤(Phlegethon)을 건너야 한다. '불의 강'이다. 이전의 강에서 버리지 못했던 슬픔, 시름을 불로 깨끗이 정화하는 과정이다. 비로소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셈이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련이 있다면 아니 죽은 자의 영혼은 꼭 네번째 강 스틱스(Styx)를 건너야 한다. 스틱스는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강이라고 한다. '증오의 강'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스틱스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스틱스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는 신 중의 신 제우스도 어길 수 없없다. 어쩌면 '죽음을 걸고 한 맹세'가 바로 스틱스의 이름을 걸고 한 그것일 것이다. 스틱스 강을 건너야 비로스 저승에 안착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구차한 이승에의 미련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마지막 강을 건너야 비로소 이승과의 완전한 이별이 마무리된다. 


'망각의 강' 레테(Lethe)를 건너야 영원한 평온의 안식처로 들어가게 된다. 레테의 물을 마셔야 비로소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잊게 된다고 한다. 비로소 이승에서의 그것이 아닌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즉 에레보스는 다섯 개의 강이 있는 곳 즉 이승과 저승의 사이의 암흑세계이며 타나토스는 다섯 개의 강, 암흑세계를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저승사자인 셈이다. 인간은 그렇게도 삶에 대해 미련도 집착도 많다는 메타포가 아닐까? 그 미련과 집착 때문에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것이고. 삶의 인지상정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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