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2018/03/01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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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01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양산백과 축영대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아니 우주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사는 한 삶의 영원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분명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인류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다. 좁게는 남녀간의 사랑에서부터 가족간의 사랑, 동료간의 사랑 더 나아가 나라간 사랑까지. 그렇다고 사랑이 이름 그대로 아름다울 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때로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랑 때문에 웃기도 하고 사랑 때문에 울기도 한다. 사랑에는 희극과 비극이 공존한다. 오히려 비극적인 사랑에 카타르시스를 더 느끼기도 한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렇다. 사실 세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기 전부터 또 그 이후에도 사랑의 비극은 결코 드물지 않은 삶의 풍경 중 하나다. 세익스피어가 문학적으로 승화시켰을 뿐. 중국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에 필적할만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중국 동진 시대 축영대라는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축영대(祝英台)는 외모뿐만 아니라 시문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는데 그녀는 좋은 스승을 찾아 항저우에서 계속 공부하길 원했다. 하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는 여성이 학문을 계속 한다는 것 특히나 외지까지 나거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축영대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공부가 계속하고 싶었던 축영대는 꾀를 하나 냈다. 점쟁이로 가장한 뒤 아버지를 찾아가 딸(축영대 자신)의 점괘가 항저우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점괘를 믿은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축영대를 항저우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축영대와 양산백. 출처>바이두 검색


여성 신분으로 공부할 수 없었던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축영대는 남장을 하고 항저우로 떠났다. 항저우로 가는 길에 양산백()이라는 사내와 만나 서로 뜻이 통했는지 의형제를 맺었다. 두 사람이 학문의 뜻을 펼치기로 한 곳은 항저우의 만송서원으로 축영대와 양산백은 이곳에서 3년을 동문수학했다. 물론 양산백은 여전히 축영대의 비밀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축영대는 아버지의 호출을 받았다. 마씨 가문의 자제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였다. 길을 떠나기 전 축영대는 양산백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양산백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깊은 우정에 대한 표현으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축영대도 할 수 없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동생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말을 하고 길을 떠났다. 물론 자기와 똑같이 생긴 여동생은 축영대 자신이었다.


동성(?)으로부터의 사랑 고백에 당황했던 양산백은 축영대와 헤어진 후에야 의형제를 맺을만큼 각별했던 그가 사실은 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양산백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녀를 향한 그리움으로 마음의 병을 앓게 되었다. 축영대를 잊을 수 없었던 양산백은 그녀를 찾아가 청혼하기로 마음먹고 길을 떠났다. 하지만 축영대의 혼사가 결정되었을뿐더러 가난했던 집안 때문에 제대로 청혼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양산백은 이런 현실을 뒤로 하고 축영대를 찾아가 비록 살아서는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지만 죽어서라도 함께 묻히자고 약속했다. 


고향으로 돌아간 양산백은 현령이 되었지만 끝내 축영대를 잊지 못하고 상사병으로 고생하다 죽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축영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뒤로 하고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만 했던 축영대는 양산백의 무덤을 찾아가 장례를 치렀다. 이 때 갑자기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양산백의 무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축영대는 죽어서라도 함께 하자던 약속대로 양산백의 무덤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무덤이 닫히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천둥과 비바람이 그치며 무덤 위에 무지개가 떠올랐다. 동시에 무덤 밖으로 나비 한 쌍이 나오더니 무지개가 뜬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 나비 한 쌍이 바로 축영대와 양산백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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