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963 Page)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장례식이나 제사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가 날 것이다." - <미리 쓰는 유서>중에서 -

법정스님이 입적하던 날 그에게는 그 흔한 나무관도 없었다. 그의 유언대로 세속에 티끌만한 자취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밝히는 불꽃으로 산화했다. 비록 그는 '무소유'를 실천했지만 중생들에게는 작은 가슴으로는 채우고도 넘칠 많은 '소유'를 남겨주고 떠났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은 그가 입적한 후 '무소유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주요 서점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고 심지어 1993년판 『무소유』는 100만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고 하니 열풍을 넘어서 광풍이랄 만하다. 밤하늘 별이 되어 이 광경을 바라보는 법정의 심정은 어떨까? 가히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가 남긴 가치보다는 그가 남긴 책의 상업적 가치만을 쫓아가는 중생들이 안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런 삐뚤어진 열풍을 비판하고 있는 나도 어리석은 중생인지라 오래 전부터 보관해 오던 『무소유』를 펼치면서 왠종일 들판을 뒤져 네잎 클로버를 발견한 것 마냥 가슴이 설레인다. 대학 새내기때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주 이사를 다니다보니 어느 순간 책꽂이에서 『무소유』거 보이지 않길래 몇해 전에 재구입했던 게 지금의 행운(?)을 가져왔다.


『무소유』는 그렇게 길지 않은 수필집이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새롭고 가슴 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는 빈 공간을 채워주는 듯한 충만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여대는 어리석은 중생들과 달리 그의 글은 실천이 담보되었기 때문에 무한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법정이 설파한 '무소유'의 철학은 단지 종교적인 무욕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무소유'가 가치를 갖는 것은 자연과 사회에 대한, 더불어 타종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가 입적하기 전 현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했던 것도 '무소유' 철학의 연장선이라고 하겠다. 개발에 대한 집착, 권력에 대한 집착, 자신의 믿음에 대한 집착이 결국에는 환경파괴로 이어지고 위정자를 생산해 내며 종교간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무소유』에 실린 대부분의 수필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집필된 글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는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였음이 틀림없다. 개발이 최고의 가치였고 시민의 목소리가 권력자의 총부리에 모기 날개짓만도 못했던 시대에 그는 분명 21세기를 미리 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세상의 사물과 현상을 허투루 보지 않는 그의 따뜻함 때문이었을 게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서운해 하는 것은, 그렇다, 못내 안타깝고 서운해 하는 것은 이제껏 길들여진 그 불국사가 사라져 버린 일이다. 천 년 묵은 가람의 그 분위기가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복원된 불국사에서는 그윽한 풍경 소리 대신 씩씩하고 우렁한 새마을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복원 불국사> 중에서-


"지방과 달리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힘이 집중 투하되기 때문에 특별시로는 모자라 서울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빌어먹더라도 서울로 가야 살 수 있다는 집념으로 인해 서울은 날로 비대해 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이라고 해서 다 살기 좋고 편리하게만 되어 있지는 않다. 넓혀지고 치솟는 중심가와 근대화와는 상관없이 구태의연한 소외 지대가 얼마든지 있다." -<너무 일찍 나왔군> 중에서-

"이러한 안목으로 기독교와 불교를 볼 때 털끝만치도 이질감이 생길 것 같지 않다. 기독교나 불교가 발상된 그 시대와 사회적인 배경으로 인해서 종교적인 형태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질의 것이다. 종교는 인간이 보다 지혜롭고 자비스럽게 살기 위해 사람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길'이다." -<진리는 하나인데> 중에서-


법정은 '무소유'의 가르침을 주고자 이 세상에 올 때처럼 그렇게 한 푼의 노잣돈도 없이 머나먼 길을 떠났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그만한 부자가 있을까? 그만큼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그는 공수래공수거했지만 남아있는 우리들의 가슴에는 차고도 넘칠 많은 것들을 채워주고 갔으니 말이다.

법정스님은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스무 번도 넘게 읽었다고 한다. 또 사람들이 자신과 치수가 잘 맞는지 여부도 『어린왕자』를 읽고 난 그 반응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법정의 호수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이 어린왕자와 닿아있는 건 아닐까? 항시 자신과 함께 있다던 어린왕자, 이제 그는 하늘의 별이 되어 어린왕자와 못다한 얘기들로 기나긴 밤을 하앟게 지새우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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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1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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