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1030 Page)

제목 없음

미안합니다.

삶의 무게가 너무도 힘겨웠을까요? 아니면 벌써 형의 빈자리가 채워졌을요? 하얀 목련이 지기만을 기다리다 1주일을 놓치고 뒤늦게 형을 찾았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생들도 형들도 형과 헤어지던 날을 넘기고서야 부랴부랴 전화기를 들었으니 우리는 너무도 이기적인가 봅니다. 어머니도 형을 찾아주지 못한 우리들이 무척이나 서운했을 겁니다.


올해로 벌써 3년째군요. 조금 늦긴 했지만 올해도 형이 떠난 자리에서 소주 한 잔들 들이키며 무심하게 먼저 간 형을 안주로 대신했습니다. 형은 먼저 갔지만 남아있는 우리는 아직도 형으로 인해 소원해질만 하면 만나서 서로 부대끼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올해도 형이 떠난 그 자리에는 겨우내 동면하던 수정이 녹아 계곡 바위 틈 사이를 흘러 봄기운에 취한 푸른 이끼만 무성하더이다!

3년 전 그날. 봄빛을 가리던 눈부신 목련이 다시 태어날 생명의 기약을 간직한 채 하나 둘 흙으로 귀향하고 있었습니다. 하필 그 날 한달째 전화기 속에서 컬러링만 들려주던 형은 우리와의 이별 소식을 안고 나타났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던 옛 사람들의 신앙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 사이 투병중이었다니! 나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습니다. 형은 작별의 시간을 미리 알았는지 마지막으로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며 그렇게 연락을 끊었습니다. 형의 마음을 알기에 우리도 형이 무슨 질병과 사투를 벌였는지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저 한 달 전 술자리를 같이 했던 형의 웃음 띤 얼굴만 영원히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늦게 찾은 염치불구하고 남아있는 우리들은 형에게 작은 소원을 하나씩 얘기했습니다. 너무 뻔뻔하죠? 그래도 다들 오랫만에 형을 추억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꽃 위를 걷듯 가벼워 보였습니다. 형이 떠난 자리에 생명들의 향연으로 가득 찰 때 다시 찾을 것을 약속하면서......


내려오는 길, 부드러운 봄바람이 흔들어주는 산사(山寺)의 풍경에 형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제목 없음

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