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태풍이 있다면 북대서양이나 카리브해, 멕시코만 등에서는 해마다 허리케인(Hurricane) 때문에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보곤 한다. 허리케인은 대서양 서부에서 발생하는 열대저기압을 일컫는데 마야 신화의 우라칸(Huracan)에서 유래했다. ‘하늘의 심장’이라고도 부르는 우라칸은 폭풍의 신으로 구쿠마츠(Gucumatz)와 함께 마야의 창조신으로 알려져 있다.

 

<포폴 부>에 따르면 태초에 세계는 고요하고 적막한 거대한 빈 공간이었다. 오직 땅에는 물살에 휩싸이고 반짝이는 초록, 파랑 깃털로 둘러싸인 뱀 구쿠마츠와 하늘에는 ‘하늘의 심장’ 우라칸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구쿠마츠와 우라칸은 거대한 빈 공간이었던 세계에 산과 땅, 나무와 숲 등 각종 자연을 창조해 냈다. 하지만 자연만으로는 허전했다. 구쿠마츠와 우라칸은 새로운 세상에 걸맞는 새 생명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새, 사슴, 재규어, 뱀…하지만 신들은 동물들의 지위를 인간의 먹이로 격하시키고 말았다. 구쿠마츠와 우라칸이 동물들을 만든 이유가 자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늘 찬양해 주길 기대했지만 동물들은 말을 할 줄도 몰랐고 신들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신들은 인간을 만들기로 하고 진흙으로 한 명의 인간을 빚었다.

 

“그들은 그저 꽥꽥거리고, 짹짹거리고, 그르렁대기만 했다. 모두 제각각 다른 소리로 떠드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포폴 부> 중에서-

 

하지만 신들이 만든 최초의 인간도 그들의 뜻에 부합하지 못했다. 말을 하긴 했지만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고 진흙으로 만든 탓인지 너무 쉽게 부서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구쿠마츠와 우라칸은 점쟁이 부부인 스피야콕(Xpiyacoc)과 스무카네(Xmucane)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스피야콕과 스무카네는 나무로 인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괘를 주었다. 신들은 즉시 나무로 인간을 만들었다. 다만 남자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여자는 골풀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 신들이 원하던 대로 나무 인간들은 제물을 바치고 그들을 찬양했을까?

 

오히려 나무 인간들은 진흙 인간들보다 더 형편 없었다. 말할 수는 있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창조자들에게 제물을 바치기는커녕 섬기려 들지도 않았다. 게다가 신들의 걱정은 나무 인간들이 자신들을 모욕하고 파멸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무 인간들도 파멸시키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구쿠마츠와 우라칸은 송진 비로 대홍수를 일으켜 나무 인간들을 쓸어버렸다. 뿐만 아니었다. 나무 인간들이 사용하던 도구와 다른 동물들도 그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결국 나무 인간들이 숨을 곳은 없었다. 홍수를 피해 살아남은 나무 인간들은 깊은 숲 속에 자신들의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마야 신화에 따르면 숲 속의 원숭이들이 바로 나무 인간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신들의 신중치 못했던 창조 행위를 기억하려는 의미에서 남겨둔 것이라고 한다.

 

마야 신화에 따르면 이 일이 있은 후 당분간 세상에는 인간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위대한 쌍둥이 영웅 스발란케(Xbalanque)와 우나푸(Hunaphu)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