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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문화유산을 되찾아 지키는 것의 진정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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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마블스, 조각난 문화유산/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김영배·안희정 옮김/시대의창 펴냄

 

2012년 설립되어 문화재 환수를 전담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201510월 현재, 국외에 소재한 우리 문화재 현황은 총 20개국에 걸쳐 16342점에 이른다. 그중에는 약탈당한 것도 있고 공식/비공식 절차를 통해 매매된 것도 있다. 일본이 67,708점으로 전체의 42%를 갖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본으로부터 1,400여 점을 반환받은 이후 되돌려받은 국보급 문화재는 2006조선왕조실록2011조선왕실의궤등에 불과하다. 20115월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부터 반환받은 직지는 해당 국가에 있지 않은데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유일한 예라고 한다. 영국 왕립박물관에 있는 세종대왕 측우기, 일본 덴리(天理) 대학 중앙도서관에 있는 몽유도원도, 일본 어딘가에 있을 다보탑 돌사자3, 도쿄박물관에서 용도를 몰라 뒤집힌 채 보관되었던 금산사향로등 아직 우리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문화재가 너무 많다.

 
201575일 일본의 하시마 섬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일본 근대산업을 일군 하시마 섬의 탄광에는 산업 역군으로 참여한 일본인 말고도 조선인 다수가 강제 징용되어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한 채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그런 까닭에 지옥섬으로 불렸다. 그런데 등재 이유에 조선인이 강제 징용되었다는 사실은 철저히 은폐되었다. 등재 취소움직임이 이는 등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것은 두 달여가 지나 TV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생존자의 입을 통해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이렇듯 문화재와 문화유산에 대한 왜곡도 심각한 상황이다.

 

 


<파르테논 마블스, 조각난 문화유산>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 어떻게 쪼개져 그리스와 영국 두 나라서 보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리스가 요청하는데도 왜 오랫동안 반환되지 않는지의 전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먼저 인류가 파르테논에 저지른 만행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역사 속의 파르테논]), 보존이라는 미명에 숨겨진 인간의 탐욕으로 이루어진 약탈과 훼손 과정을 연대기순으로 훑어본다. 그리고 영국으로 대표되는 반환하지 않으려는 입장과 그에 대한 변명, 이에 맞서 인류 유산을 온전히 지키려는 그리스의 입장을 논쟁 중심으로 탐사한다([엘긴 마블스]). 마지막으로 현재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에서 4대 신전이 복원되고 있는 과정([아크로폴리스 유적 복원 사업])도 다룬다.


저자들은 모두 일관되게 파르테논의 반환과 환수, 보수, 재결합 과정이 필요한 데는 윤리적, 법적, 미학적,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마치 한 편의 역사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긴박하고 촘촘하다. 대표 저자 히친스가 인용한 여러 서신, 회의록, 문학 작품과 그의 해설을 쫓다보면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한눈에 그려진다. 때로는 저자와 함께 분노하고 때로는 저자처럼 냉철하게 이 책의 주제에 다가갈 수 있다. 이로써 문화와 문화유산이란 무엇이며, 이것들을 지킨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판에는 이미지 70여 컷을 추가했다.

2500년 전, 민주주의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 페리클레스와 천재 조각가 페이디아스에 의해 건설된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 파르테논. 3세기경의 대화재로 내부 일부가 손실되었고, 그 뒤 기독교 교회, 아테네 그리스정교회의 대성당, 가톨릭교회, 이슬람 모스크로 쓰이며 건축 요소가 추가되거나 뜯겼다. 모리시니가 주둔한 동안 포격으로 지붕이 날아가고 나치의 신질서를 상징하는 만자 깃발이 펄럭이는 등 신성모독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신전을 가장 심각하게 약탈하고 훼손한 사람은 투르크 주재 영국 대사 엘긴이다. 그는 대리석 조각 일부를 톱으로 잘라 영국으로 가져가 빚을 갚기 위해 정부에 팔았고 그 조각들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는 파르테논 절반에 해당한다.

 

 

엘긴이 투르크 술탄으로부터 받은 칙령은 “‘우상들의 성전현장에서 조각의 모형을 뜨고, 스케치를 할 수 있고, 신전 주변에서 파편을 발굴할 수 있고, 글자나 형상이 새겨진 돌 조각을 떼어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60)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엘긴이 고용한 루시에리는 본뜨고 스케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20년간 조각을 뜯어내 영국으로 날랐다. 톱으로 대리석을 뜯어내다 두 토막을 내기도 하고, 나르기 너무 큰 조각은 일부러 잘라냈다. 조각을 싣고 영국으로 향하던 멘토르호가 바다로 침몰해 일부 조각을 영원히 잃었다. 이 대리석 조각들로 집을 꾸미려던 엘긴은 파산해 영국 재무부와 흥정을 시작했다. 과연 칙령은 정확히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 엘긴은 대사의 특권과 지위를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는가, 정말 이 일에 62,440파운드나 들었는가, 영국 정부는 얼마에 구입하는 게 합당한가진짜 주인은 따로 있는데 도굴꾼과 장물아비의 흥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보존과 반환의 입장은 역사적으로 날선 공방을 펼쳐왔다. 보존을 주장하는 입장은 현대의 그리스인은 진짜 그리스인이 아니며, 대기오염이 심하고 보존 능력이 떨어지는 그리스보다 영국이 더 안전하고 온전히 보존할 수 있고, 파르테논 조각을 반환하면 영국의 박물관과 갤러리가 텅 빌 것이므로 선례를 남기면 안 된다는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반환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에 맞선 반환 입장은 파르테논이 곧 그리스이며, 그리스의 것이므로 파르테논은 그리스에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파르테논을 둘러싸고 벌어진, 의회를 포함한 영국 내 논쟁의 역사에서 그리스에 반환하자는 주장은 일관되었던 반면, 영국에 보유하자는 주장은 그때그때 다른 논거를 늘어놓으며 일관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대략 6가지로 압축된 명제의 몇 가지 또는 전부를 돌아가며 썼다는 것이다(189~190). 이에 대해 네이딘 고디머는 [서문]에서 음침한 변명이라고 일축했다(21). 히친스는 영국의 바이런, 토머스 하디, 존 키츠,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인용해 이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복원한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보유하고 있으니 우리 것이라는 쩨쩨한 고집을 버릴 수 있는 길은 법령 하나만들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화유산을 환수하고 복원하는 일은 단지 유형의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을 보유한 인류의 에토스와 역사, 종교, 신화, 도덕성, 국민성을 복원하는 일이다. 문화유산을 되찾아 지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볼 시점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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