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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만들어낸 세계,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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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포의 유토피아 기행/엘포 지음/우현주 옮김/서해문집 펴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2009년, 이탈리아의 만화가 엘포(본명 잔카를로 아스카리)는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를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다. 무한경쟁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1880년대 라파르그의 글은 마치 지금 이 시대를 위한 것만 같았고, 이에 영감을 얻은 그는 인류 역사상 더 나은 미래, 즉 유토피아를 꿈꿨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엘포의 관점은 이제까지의 유토피아 이야기와는 그 결이 다르다. 플라톤의 《국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비롯한 유토피아 소설들, 20세기 공산주의 국가들의 ‘이상으로서의 유토피아’가 기존의 유토피아 담론을 지배하고 있었다면, 엘포는 낙원, 자유주의, 정보 기술의 공유, 환경 보호 등 인간의 좀더 근본적이면서도 다양한 욕망이 만들어낸 유토피아까지 그 영역을 확장시킨다.

그는 다시 구성한 유토피아의 역사를 자신이 14년 동안 만화를 기고했던 [디아리오]지에 연재했고, 그 단편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엘포의 유토피아 기행》은 진보를 꿈꾼 한 만화가가 더 넓은 관점에서 유토피아를 재조망하고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를 찾아보려 한 인문학적 그래픽노블이다.

 

 


엘포가 새롭게 제시하는 인류의 유토피아 여행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된다. 여행의 주인공은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이들은 먼저 모세가 사람들을 인도했던 약속의 땅과 코카인 나라로 향한다. 굶주림을 해결하는 게 가장 큰 과제였던 이 시대 유토피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 즉 ‘배고픔이 없는 낙원’이었다.

15세기에 이르면 ‘유토피아’(utopia, 그리스어로 ou-topos[없는 장소]와 eu-topos[행복한 장소]를 조합하여 만든 말)라는 말의 어원이 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섬에 다다른다. 이어 라블레의 텔렘 수도원, 로빈슨 크루소의 무인도, 다니엘 디포의 리베르탈리아를 여행한다. 왕과 귀족을 비롯한 지배계급의 횡포가 심했던 이 시대 유토피아의 모습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이상 사회’였다.

19세기 들어 유토피아는 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현실에서 실험에 옮겨진다. 샤를 푸리에가 제시했던 팔랑스테르에서 영감을 얻은 뉴욕의 사회주의 공동체 실험, 파리코뮌과 누아지엘 초콜릿 공장, 체칠리아 공동체 등이 그것이다.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유토피아의 모습은 다양해진다. 엄격한 프로테스탄트적 생활방식과 평화를 외치며 세계대전 참전을 거부했던 아미시(Amish) 공동체, 지중해 지역에 제방을 쌓아 유럽 국가들을 연결시키고 평화적 관계를 구축하려 했던 건축가 헬만 죄르겔의 아틀란트로파 프로젝트, 19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랑의 여름’ 축제를 열였던 히피들, 빵을 구워 팔며 길거리에서 대형 인형극을 통해 반전·환경운동을 펼쳤던 브레드 앤 퍼펫 시어터(Bread & Puppet Theatre), 급기야 바다 한가운데에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워버린 장미섬 공화국, 무료 전화망을 만들어 대중에게 ‘전화할 자유’를 허한 존 드래퍼, 1973년 뉴욕·런던·코펜하겐·밀라노 등 도시의 버려진 땅에 ‘씨앗 폭탄’ 테러를 벌여 꽃과 나무를 가꾸었던 게릴라 가드닝……. 평화와 협력, 반전, 환경 보호, 자유 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현대이기에 유토피아의 모습도 그만큼 다채롭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드디어 유토피아에 도착한다. 수많은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반짝이는 사막 한가운데,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유토피아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기쁜 마음으로 들어가려는 두 사람을 문지기가 막아선다. “너희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자들인가? 무엇을 가져왔는가?” 성심껏 대답을 했건만, 돌아오는 건 문지기의 똑같은 물음이다. 하염없이 되풀이되는 문지기의 동문서답. 유토피아를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한다. 왜?

신이 선물한 에덴동산과 약속의 땅을 제외하고는 엘포가 소개한 유토피아에 거저 들어간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이 아니라 그곳을 ‘만들어낸’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인류는 원하는 바를 상상하고 글로 표현하고 실천에 옮겨왔다. 결국 모두 실패에 그쳤지만, 현실은 변화했다. 대다수의 인류가 굶주림에서 벗어났고 계급이 사라졌다. 전쟁과 환경 파괴는 분명히 막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 유토피아 담론에는 이렇듯 현실을 바꾸는 힘이 있다.

모두가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 그 욕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퇴색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현실이 개선되기를 원한다. 공동육아, 대안학교 등 대안적 삶을 찾는 최근의 움직임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필요한 건 오직 우리의 보다 적극적인 행동뿐인지도 모른다. 엘포 역시 서문에서 이 같은 이야기로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자유주의냐, 아니면 신자유주의냐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향연(饗宴)이 아니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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