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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천재 과학자 뉴턴이 범죄 수사관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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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과 화폐위조범/토머스 레벤슨 지음/박유진 옮김/뿌리와이파리 펴냄

 

1695년, 53살의 아이작 뉴턴은 이미 당대 최고의 지성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상태에서 뜻밖의 전직을 했다. 연금술을 평생 은밀히 연구해오다 신경 쇠약에 걸린 후 위안을 찾던 뉴턴은 대학 생활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간 혁신적인 발견을 수차례 해낸 곳 케임브리지를 뒤로하고 런던으로 가서 영국 조폐국 감사직을 맡았다. 그런 뉴턴보다 먼저 런던으로 간 또 다른 천재가 있었으니 바로 범죄자 윌리엄 챌로너였다. 화폐 위조에 비상한 재주를 갖춘 덕분에 챌로너는 런던 암흑가에서 급부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챌로너는 만만찮은 신임 조폐국 감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현대적 의미의 화폐가 막 등장하고 있던 17세기 런던의 법정과 거리에서 두 사람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아이작 뉴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람들이 대부분 유일하게 기억하는 그의 첫 경력, 그러니까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생, 특별연구원, 루커스 수학 석좌 교수로 보낸 경력은 35년간 지속됐다. 하지만 1695년에 뉴턴은 런던으로 와서 영국 조폐국 감사직을 맡았다. 그는 사람이나 상황을 관리하는 일에 학식도 경험도 별 관심도 없었지만 조폐국 감사로서는 탁월했다. 그는 4년간 재임하면서(이후 그는 조폐국장으로 27년간 근무했다) 화폐 위변조자 몇십 명을 추적하고 체포하고 기소했다. 그는 증거, 부주의한 대화, 밀고로 촘촘히 짠 그물에 적이 걸려들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아주 빨리 배웠다. 런던의 암흑가는 뉴턴과 같은 인물과 맞닥뜨린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 바닥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가장 주도면밀한 지성인과 싸울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독특한 관점에서 쓴 뉴턴 전기다. 뉴턴의 과학적 업적은 최소한만 언급하고, 뉴턴이 어쩌다 조폐국에서 탐정 노릇을 하게 됐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한다.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저자는 각종 뉴턴 전기는 물론이고, 뉴턴과 지인 간의 편지, 그의 경쟁자인 윌리엄 챌로너의 전기, 당시 조폐국 문서와 재판 기록 등을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자는 기존의 뉴턴 전기에서 소홀하게 또는 왜곡해서 서술된 부분을 보완하고 반박한다. 예컨대 일부 전기 작가들은 뉴턴이 위폐범들을 추적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무자비함을 보여줬으며, 그것을 정신에 문제가 있는 냉혹한 인간의 증거로 간주했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이는 필시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오히려 뉴턴은 그냥 자기 일을 하던 일반적인 인물, 당시 통용된 방법을 이용하던 관료”였을 뿐이다.

뉴턴의 행적만큼이나,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 챌로너의 인생사를 살펴보는 일도 흥미롭다. 뉴턴은 챌로너에게서 자신의 만만찮은 지성에 도전할 만한 적수의 기운을 감지했다. 챌로너는 잡범이 아니었다. 그가 만들었다고 주장한 위조화폐 3만 파운드는 실로 거액이었다. 오늘날 통화로 환산하면 무려 400만 파운드(약 68억 원)에 상당했다. 챌로너는 재정과 주화 제조술에 대한 소논문을 의회에 제출할 만큼 박식했고, 6년간 야심차게 범죄를 일삼으면서 기소를 피할 만큼 교활했다. 그는 실수에 무자비해 적어도 두 사람을 죽였고, 그러면서 매번 이익을 챙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챌로너는 대담했다. 그는 신임 조폐국 감사가 무능하다고 비난했고, 심지어 감사가 조폐국을 운영하면서 사기를 쳤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뉴턴과 챌로너 각각의 행적을 주축으로 하여 두 줄기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둘의 대결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저자는 17세기에 만들어진 옛날 문서들의 행간을 읽고 추리력과 상상력으로 그 여백을 메우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결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어느 시골의 한 과학 신동과 또 다른 시골의 한 명민한 악동이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런던에서 수사관 대 범죄자로 맞대결하게 되는가. 그렇게 시작돼 2년 넘게 맹렬히 계속된 두 사람의 추격전 속에서 그들은 각자 어떤 놀라운 면모를 보여주는가. 이런 주제들을 놓고 저자와 함께 두 사람의 자취와 당시 사회적 정황을 돋보기 들여다보듯 꼼꼼히 살피며 퍼즐 조각을 맞춰보는 것, 이것이 바로 추리소설 형식을 가미해 읽는 재미를 높인 이 책의 독자가 하게 될 일이다.

뉴턴과 챌로너가 활동했던 1690년대 중반은 영국 화폐위조의 황금기였다. 뉴턴이 1696년에 기록한 바에 따르면, 유통 중이던 주화 열 닢당 한 닢 이상이 가짜였다. 이는 전쟁 비용, 은화 유출, 통화제도 붕괴 등 정부 재정에 문제가 생긴 결과로, 영국은 말 그대로 돈이 바닥난 상태였다. 이런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 뉴턴만은 아니어서, 저명한 정치철학자 존 로크와 유력한 경제사상가 찰스 대버넌트 등도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여러 번 내놓았다. 세계 무역이 부상하고 있던 그 시대에 런던 시장의 텅 빈 돈궤는 실로 새로운 현상이었다. 여러 필자가 갖가지 소견과 해결책을 내놓았는데, 그런 논쟁과 비판의 홍수는 화폐제도 붕괴로 인한 사회적 불안을 반영했을 뿐 아니라, 너무 좁게 ‘과학혁명’이라 불러온, 당시 영국을 주름잡았던 변혁의 일상적 경험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공한다.


화폐를 둘러싼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려는 여러 복잡한 과정 속에서 현대적 의미의 화폐, 곧 종이돈이 발명됐다. 챌로너는 금속화폐가 더 이상 돈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가 아님을 누구보다도 빨리 파악했다. 학계 밖에서, 과학혁명은 새로운 돈의 세계가 성립해감에 따라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종이돈, 교환 가능한 약속, 채권, 융자는 모두 추상적 개념이었다. 그런 개념을 이해하려면 수학적 추론 능력이 필요했다. 챌로너는 주변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사상과 실제의 그런 급진적 변화로 생겨난 기회를 붙잡을 만큼 충분히 재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범죄는 불행하게도 뉴턴의 내밀한 신앙심을 건드렸다. 모든 화폐위조에는 종교적 의미가 담겼기 때문이다. 금속 원반을 법정 통화로 탈바꿈시키는 마법은 주화 앞면의 국왕 두상 이미지에서 비롯됐다. 국왕은 신의 은총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런 왕의 초상을 도용하는 행위는 불경죄, 곧 군주라는 신성한 사람에게 맞서는 범죄에 해당했다. 챌로너를 쫓던 뉴턴의 태도는 지나치게 결연했는데, 그 동기에는 국가적 이유 말고도 다른 동기, 곧 신앙적 이유가 섞여 들어가 있었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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