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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메르스와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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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말단 교정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문자는 사십을 바라보는 노처녀로 알려져 있다. 주위에서 안스럽게 여길만큼 더러는 짜증이 날만큼 비루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문자에게는 사랑하는 남자도 있고 심지어 딸까지 낳은 적이 있다. 서영은의 소설 <먼 그대>(1983)에 등장하는 문자라는 주인공은 분명 일상에서 흔히 보는 그런 캐릭터는 아니다. 유부남인 한수를 사랑하고 자식까지 빼앗겼지만 그녀의 한수에 대한 사랑은 처절하리만큼 절대적이다. 이런 문자에게 한수는 돈까지 요구하지만 문자는 거절하는 법이 없다. 한수가 먼 곳에 있을수록 문자의 한수에 대한 열망은 더욱 더 불타오른다. 한수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끊임없이 문자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그녀의 대응 방식은 늘 '절대 긍정'이다. 마치 구도자의 고행을 보는 듯 하다. 도대체 왜 문자는 자신을 학대하면서까지 '절대 긍정'의 삶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가엾은 자식, 엄마가 네게 지운 짐이 너무 가혹하지? 하지만 너도 네 힘으로 네 속에서 낙타를 끌어내야 한다. 엄마가 너의 삶을 안락한 강변도 있는데 굳이 고통의 늪가에 던져놓은 이유를 그 낙타가 알게 해줄 거야. 그것이 사랑이란 것을 알게 해줄 거야.' -서영은의 소설 <먼 그대> 중에서-

 

▲사진> 구글 검색 

 

저자가 이 시점에서 등장시키는 이미지가 바로 '낙타'다. 어떤 가혹한 삶에도 '절대 긍정'의 태도를 고수하는 이런 문자를 저자는 '불사의 낙타'로 표현한다. 사실 문자의 생존 방식에는 도달할 수 없는 상황이 더 처절하고 가혹할수록 문자 자신의 열망은 극대화되는 역설이 숨어있다. 사막이라는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운 삶의 조건 속에서도 등의 혹에 저장된 지방을 물로 바꿔가며 생존한다는 점에서 '낙타'의 이미지가 형상화된 인물이 바로 문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낙타는 문학이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생경한 동물이다. 기껏해야 동물원에서 보는 게 전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옛 문학 속에 낙타가 등장한다면 선뜻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동물로써의 낙타는 아니다. 어쨌든 옛 글 속에 낙타를 살펴보기 전에 낙타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등에 난 혹이 먼저 연상되는 낙타는 중앙 아시아와 아시아 남서부에 분포한다. 낙타가 태양이 이글거리는 사막에서 오랫동안 먹이를 섭취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등에 난 혹 때문이라고 한다. 혹 속의 지방을 분해시켜 필요한 수분을 얻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22년 창경원 동물원 개원 당시 처음 수입했으나 전쟁 중에 죽었다고 한다. 이후 1955년 다시 한 쌍을 수입해 현재는 각 동물원에서 관람용으로 사육하고 있다.

 

조선 초기 김시습의 한문소설집 《금오신화》 에 <만복사저포기>와 함께 전해지고 있는 <이생규장전>은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애정소설인데 주인공 이생은 노변에 있는 양반집 딸 최씨녀를 알게 되고 밤마다 그 집 담을 넘어 밀애를 즐겼는데 이 이생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낙타교' 옆이었다. 설마 이 낙타교가 동물 이름 '낙타'에서 따온 다리 이름일까 싶을 것이다. 지금도 생경한 동물인데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동물이었을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생규장전>에 등장하는 낙타교는 실제로 개성에 있는 다리 이름이었고 동물 '낙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진> 구글 검색 

 

고려 태조 25년인 942년에 거란이 사신과 함께 낙타 50필을 고려에 보내왔다.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중국까지 넘보고 있었다. 거란 태종은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 고려와 연합해 중국을 침략할 목적으로 고려 태조에게 사신과 함께 낙타를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고려 태조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과 연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거란이 보낸 사신은 모두 섬으로 귀양보내고 사신과 함께 보내온 낙타 50필은 개성 만부교 아래 매달아 굶어죽게 했다고 한다. 일명 '만부교 사건'으로 이후 사람들은 만부교를 '낙타교'로 불렀다고 한다.

 

그야말로 낙타 수난 시대다. 낙타를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태반인데  낙타 고기와 낙타유를 먹지 말란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대책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예방책이라고 발표한 황당한 사건 때문이다. 낙타 고기와 낙타유가 유통된 적도 없는데 이런 대책을 메르스 예방법이라고 발표한 정부를 보고 있자니 황당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이런 안이한 대책 때문에 메르스는 어느덧 전국은 메르스 공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더니 중도 지역에서 낙타가 감염 매개원이라고 알려진 메르스는 그 좁은 바늘 구멍을 유유자적 통과하고 있다. 메르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의 안이함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불과 1년 남짓한 시점에 발생한 메르스 공포는 대한민국 정부가 여전히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소극적인 정부를 보면서 메르스는 이미 예견된 공포가 아니었을까? 국민 안전에 무관심한 정부가 국민들의 일상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또 애먼 낙타는 무슨 죄냐 말이다. 서영은의 또 다른 소설에 <사막을 건너는 법>이 있다. 국민을 외면한 정부가 존재하는 한 이 혹독한 사막과 같은 현실을 우리는 내 안의 낙타를 타고 건널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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