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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단일민족론의 허구, 고려는 다문화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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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의 재발견/박종기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한국사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각 왕조의 장기 지속성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700여 년간, 고려와 조선은 500여 년간 각각 존속했는데, 이러한 예는 세계사에서도 드물다. 한국인의 역사 관심은 그중에서도 고대 또는 조선시대에 편중되어 있어, 500년간 지속된 고려왕조에 대한 역사 이해는 높지 않은 편이다. <고려사의 재발견>은 그간 특정 시대와 영역에 편중되어 있던 한국사 이해의 편식증을 극복하고, 한국사 이해의 영역을 고려로 확장함으로써 고려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고려왕조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양한 사상이 공존한 다원사회였다. 문화와 사상 면에서의 다양성과 통일성, 정치와 사회 면에서 개방성과 역동성을 지닌 이 시대를 <고려사의 재발견>은 수많은 인물과 사건을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우리가 잘 몰랐던 고려 역사를 새롭게,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오랫동안 고려 역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사료에 기초한 고려의 주요 역사를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들려준다. 스토리텔링을 살린 본연의 역사 서술에 집중해 고려인, 고려 문화, 고려를 뒤흔든 수많은 사건을 통해 고려왕조의 내면과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고려사를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뿐 아니라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단편적인 역사 지식으로 접해온 고려사의 잘못된 상식을 뒤집고 정통 고려 역사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고려 다원사회의 역사 경험은 다양한 인종과 국가, 종교와 문화, 사상이 공존하면서 새로운 통합을 지향해야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고려 다원사회의 역사 경험을 한 DNA 덕분에 21세기 대한민국이 새로운 지식정보사회로 성공적으로 진입했다고 보는 저자의 해석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고려왕조의 주요 역사를 생동감 있게 들려주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 또한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해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초반은 지식정보사회라는 새로운 역사 발전 단계로 진입하는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기다. 각기 다른 이념과 세계관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다양한 인종과 국가, 종교와 문화, 사상이 공존하면서 새로운 통합을 추구해가는 시대다. 약 1,000년 전에 건국해 500년간 지속한 고려왕조의 역사에서 그러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고려왕조는 문화와 사상 면에서 다양성과 통일성이, 정치와 사회에서 개방성과 역동성이 공존한 다원사회였다. 우리 사회가 21세기 새로운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고려 다원사회의 역사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왕조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머리말 '지금 이 순간, 고려사를 다시 읽어야 할 때' 중에서-

 

이 책의 가장 특징 중 하나는 역사 본연의 스토리텔링을 살림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고려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특히 고려의 특징인 다원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사람과 사건, 문화재를 통해 입체화함으로써 역사에서의 이야기성을 복원해내고 있다. 1부 ‘천하통일, 새로운 시대를 꿈꾸다’에서는 태조 왕건이 천하를 통일한 계기를 나주 전투와 팔공산 전투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왕건이 나주의 해상 세력 도움으로 천하 경영의 싹을 틔울 수 있었으며, 팔공산 전투에서 비록 오른팔인 신숭겸을 잃지만 잔악한 견훤과 달리 신라를 정통왕조로 인정함으로써 민심을 얻어 천하를 얻은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고려 왕실의 기원을 추적하고 최근 고려왕조를 중국의 세 번째 지방정권으로 왜곡하려는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비판한 글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내용이다.


2부 ‘개혁과 개방, 고려왕조의 기틀을 마련하다’와 3부 ‘다양한 사상과 문화, 다원사회를 이루다’에서는 고려 다원사회의 특징인 개방성과 역동성, 다양성과 통일성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고려 역사에서 구현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4부 ‘영토분쟁, 고려의 실리외교로 맞서다’에서는 거란과의 100년 영토분쟁을 통해 결국 보주(의주)를 되돌려받음으로써 고려왕조의 등거리 실리외교의 백미를 확인할 수 있다. 5부 ‘무신 집권기의 고려를 다시 읽다’에서는 무신정변을 불러온 이자겸과 묘청의 난을 비롯해 무신정변과 농민 봉기, 몽골과의 항쟁을 다루고 있는데, 무신정권이 키운 이의민과 이규보의 이야기에서는 이념과 체제를 넘어서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역사의 아이러니를 읽을 수 있다. 6부 ‘원 간섭기, 암흑의 시대를 가다’에서는 고려 하층민과 지배층에 끼친 영향과 그로 인한 다원사회의 변화를 읽을 수 있으며, 공녀에서 원의 황후가 된 기황후를 통해 역동적인 고려인의 모습뿐 아니라 격동하는 동아시아 역사를 들려주며, 7부 ‘고려왕조, 500년 역사를 뒤로하다’에서는 고려의 멸망과 조선 건국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특집으로 고려의 문화재에 관한 아홉 편의 글을 싣고 있다. 석관, 고려지, 묘지명, 나전칠기, 상감청자, 대장경, 금속활자, 불화, 고려선 등의 고려 문화재에 대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읽는 주관적 이해와 감상에서 벗어나 문화재에 담긴 역사적 품격과 그 고유한 가치를 고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차원에서 읽어냄으로써 이들 문화재가 동아시아 세계에서도 인정받은 소통과 개방의 산물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주장은 고려왕조가 외국인을 관직에 적극 등용하고 귀화인을 받아들임으로써 당시 전체 인구의 약 10%가 이민족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적어도 고려왕조에서는 적합한 주장이 될 수 없으며, 고려의 국교를 불교라고 보는 ‘불교 국교론’은, 당시 사람들이 낭가사상과 풍수지리설도 받아들였으며 수신은 불교를 기반으로 했으나 통치는 유교를 바탕으로 한 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는 주장이다. 본관제가 고려시대 시작된 배경, 고려 왕실에 근친혼이 많았던 까닭, 거란의 40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기 하루 전날 개경에서 팔관회 행사를 개최한 이유, <훈요십조>를 둘러싼 위작설과 지역 차별의 진위 여부를 가린 내용 등은 다양한 고려 사회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역사 사실까지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또한 당대의 역사 서술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기록의 역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사료 읽기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무신 집권기 서술된 《의종실록》은 승자의 기록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하며, 이제현이 원 간섭기에 저술한 《김공 행군기》 또한 행간을 읽을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현재의 역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다양한 역사를 오도 또는 말살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들려준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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