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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뚜제체, 지구가 아름다운 별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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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제체/김여정 지음/도서출판 말 펴냄

 

이 책은 일곱 명의 외국인 활동가 이야기이자 구호단체에서 겪은 저자 자신의 눈물 젖은 경험담이다. 《뚜제체》는 한비야 같은 유명 구호활동가의 무용담은 아니다. 의욕은 있으나 서투른 초보 활동가가 현장에서 겪는 좌절과 분노, 열정과 깨달음이 담긴 책이다. 어쩌면 구호활동가가 겪는 현장의 모습은 이게 현실일 수 있다. 저자는 지구촌 공동체 활동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 영어 실력이 있다고 구호 활동가가 되는 게 아니며, 스펙 쌓으려고 구호 활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하고자 했다. 빈곤한 사람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정하지 않고, 원조단체에서 일을 시작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저자는 1996년부터 3년간 국제엠네스티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이때 만난 엠네스티 활동가 단을 지금까지 정신적 아버지로 여기며 지내고 있다. 1999년에는 유엔에 속한 비정부기구 회원 자격으로 총탄이 날아다니는 동티모르에서 선거감시단 활동을 했다.

귀국 후 정당의 국제협력 담당자로 일하던 저자는 2004년 봄, 한국을 방문한 필리핀 하원 의원단과 한국 국회의원 만찬 모임의 통역을 한 적이 있다. 이때 필리핀 의원단은 마닐라 통근열차 사업을 위한 차관을 요청했고, 저자는 필리핀 국민에게 도움 주는 일이라 여겨 최선을 다해 통역했다. 그런데 3년 후 인사동에서 마닐라 통근열차 프로젝트로 내쫒긴 필리핀 빈민들이 원정시위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데 일조한 꼴이 됐다는 생각에 분노하고 자괴감에 휩싸였다. 마포역 어두운 구석에서 우연히 히말라야 사진을 보다가 한줄기 구원의 빛과도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 필자는 곧바로 사직서를 내고 히말라야로 떠났다. 새로운 희망의 끈을 잡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히말라야의 산길을 걸으며 서울에서의 기억을 지워버리려 했지만 밤낮으로 서울에서 끌고 온 망상에 시달려야 했다. 히말라야의 아줌마 나무꾼들은 “부디 이 순간을 망칠 일을 하지 마시오”라고 노래했지만 필리핀 빈민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석 달 넘게 히말라야를 떠돌아다니다 포카라의 폐아 호수 근처에서 쓰러졌다. 이때 저자는 네팔 티베트 난민의 도움을 받아 겨우 살아났다. 티베트 난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살면서도 서로 도우며 사는 공동체 정신을 간직했다. 그들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방인을 친형제 돌보듯이 보살폈고, 달라이 라마가 하사한 환약도 구해줬다. 저자는 맘속으로 이들에게 “나메 싸메 카진체(하늘과 지구를 넘어서 고맙습니다)”라고 외쳤다.

히말라야에서 기운을 얻은 저자는 2008년 영국에서 국제개발대학원을 다닌 뒤, 구호 활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2009년부터 NGO활동가로 일하면서 캄보디아의 미용학교, 미얀마의 병원과 보육시설, 스리랑카의 직업훈련센터 등을 만드는데 참여했으며, 시민단체의 해외사업에 대한 컨설팅도 했다.

한국의 구호단체에서 일하던 저자는 아시아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직원들 모습에 실망한다. 정치권의 협잡 놀음에 절망해서 히말라야로 도망쳤고, 다시 힘을 내 구호단체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활동하고 싶었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만 느꼈다. 결정적으로는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정한 방법도 저지르는 구호 단체 간부의 행태에 항의하며 또다시 사표를 던진다.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한 저자는 정신적 아버지인 국제엠네스티의 단 존슨에게 날아갔다. 평생을 엠네스티 활동가로 일한 단의 집에는 한국의 대표적 양심수인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걸려 있고, 책도 꽂혀있었다. 그의 책 《처음처럼》에서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대상에게 스스로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라는 글을 보는 순간,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인간적인 자존심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못된 원조단체의 문화를 지적하거나 바꾸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 상처를 낸 것은 성과주의에 빠진 원조 단체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바로 나 자신이었다.”(275 쪽)

공동체 활동가로 일하려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과 눈을 맞추고,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가 생기면 히말라야로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말고 맞서서 싸워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럼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는 이제 가까운 곳에 사는 이주 노동자에게 눈을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주노동자는 거주지인 용산에도 있고, 지하철 1호선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걸어온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길에서 저자는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힘들고 지쳐서 쓰러질 때마다 뜻밖의 사람들이 저자의 손을 잡고 다시 뛰도록 응원했다. 네팔의 티베트 난민촌에서 구호 활동하는 갤포, 팔레스타인 도시농업 전문가 아마드, 인도의 빈민운동가 산타누, 평생을 엠네스티 활동가로 사는 단, 인도네시아의 인권운동가 아리프, 지구별 시민 코리, 의료 봉사 활동 벌이는 제임스가 그들이다. 그 외 네팔 소년 마르코스, 티베트 소년 텐진, 캄보디아의 아이들 덕분에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인권활동가, 구호활동가로 일한 저자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이야기라기보다는 도움을 받는 이야기, 자기 자신의 힐링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분노와 좌절 속에서 상처를 받지만,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상처를 치유한다. 그래서 이들 모두에게 필자는 말한다.

“뚜제체!”(고마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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